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존께서는 경문 《정진요지》 <법 중에 용해되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의 한마디가 있다.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 오늘날 인류는 그 함의를 진정하게 아는 사람이 이미 없다. 당신들은 아는가? 한 사람의 사상 속에 이미 법을 담았다면, 법을 담은 그 일부분은 법에 동화(同化)된 것이 아닌가? 도(道)를 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 그 한 부분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집착심을 많이 제거하여 사람의 각종 관념을 내려놓으라고 함은, 당신들에게 일부분만 갖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 원만하라는 것이다.”
사존께서 이 법을 막 설하셨을 때, 나는 법리에 대해 거의 몽롱했다. 사존께서 언급하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의 진정한 내함을 알지 못했고, 왜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하는지 몰랐다. 요 며칠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속의 일부 내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물론 전부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법리를 들었다면, 그는 이미 어떤 층차에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미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게 된 것이다. 비록 육신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이 일부분은 하늘로 돌아가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층차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를 이해할 때,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법리가 귀중하다고 여겨 기꺼이 그것을 위해 죽고자 하며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사실 이는 희생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것으로, 그들은 이것을 순도(殉道)라 여긴다.
그러나 진상은 이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일부분은 도를 얻었기에 이 일부분의 측면에서 볼 때는 이미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미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희생이며 순도라고 여기지만, 진상은 이미 도를 얻었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며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면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아직 전부는 아니며, 대법제자의 진정한 목적도 아니다. 진정한 목적은 도리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가 되어서는 안 되며, 대원만을 성취하여 자신이 책임진 천체를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 구도하고 원만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우주정법은 개인 수련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이 구도하는 것은 전부의 중생이지 단지 일부분만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비록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의 진실한 내함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대법제자는 마음속에 있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그 일종의 이치를 타파해야 하며, 당당하게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정법이 필요로 하는 것이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내야 하는 것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 속에서 진정으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대법제자는 내려놓고 두려워하지 않는 동시에 또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기억하건대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為神)》에서, 광명(光明)이 박해로 사망당하는 것에 직면했을 때 진정으로 이미 생사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 시점에 죽어버린다면 아직 수련되지 않은 그 일부분은 해체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광명세계가 순식간에 돌로 변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
다행히 마지막에 광명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또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이 죽는다면 자신의 천국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중생은 어떻게 되는가?
일념(一念)이 바르게 돌아오자 자신의 천국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었고, 심지어 더욱 아름다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문득 한 층의 법리를 깨달아 동수들과 공유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아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