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빈의 《봉황산》을 읽고
소월(小月)
【정견망】
봉황이 떠나간 지 몇 년이런가,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 산을 봉황산이라 부르네.
다만 봉황이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 없고,
도리어 평범한 새를 가리키며 세상을 그르칠까 두렵구나.
鳳去寥寥今幾年,
至今人喚鳳凰山。
只愁有鳳無人識,
卻指凡禽誤世間。
조빈(曹豳)은 자가 서사(西士), 호는 동무(東畝) 혹은 동유(東猷)라고도 하며, 원주(溫州) 서안(瑞安) 사람이다. 남송 가태(嘉泰) 2년(1202년) 진사로, 차례로 안길주(安吉州) 교수, 중경부부 사법참군, 건창지현(建昌知縣)을 지냈다. 소정(紹定) 6년(1233년)에 비서승(秘書丞) 겸 창부(倉部)낭관으로 승진했다. 단평(端平) 원년에는 절서제거상평(浙西提舉常平)을 지냈고, 후에 절동제점형옥(浙東提點刑獄)으로 전임되었다.
가희(嘉熙) 초년에 조빈은 조정에 불려가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그는 왕만, 곽뢰경, 서청수와 함께 모두 직언을 감행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기에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가희사간(嘉熙四諫)”이라 불렀다. 가희 3년(1239년)에 복주(福州) 지주로 나갔다. 후에 조정에서 그를 불러 예부시랑을 맡기려 하였으나 대신들의 저지를 받아, 결국 보장각대제(寶章閣待制)로 은퇴하였다. 순우(淳祐) 9년(1249년)에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전송사(全宋詞)》에 그의 사(詞) 작품 두 수가 수록되어 있다.
조빈의 이 시 《봉황산》은 단 네 줄에 불과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이 쓴 봉황산이 과연 어느 산을 가리키는지는 오늘날 이미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의 뜻으로 볼 때, 이 산에는 봉황이 일찍이 강림했거나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봉황이 떠나간 지 몇 년이런가,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 산을 봉황산이라 부르네.”
봉황이 이곳을 떠난 지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 산을 봉황산이라고 부른다.
봉황은 비록 떠났어도 산 이름은 남았고, 신적(神跡)은 이미 사라졌을지언정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각지에서 결코 드물지 않다. 수많은 산천, 사찰, 동부(洞府), 고적에는 모두 신선이 일찍이 강림했거나 수련했던 곳, 혹은 신적을 드러냈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은 떠났지만 전설은 남았다. 그것들은 대를 이어 전해지며 마치 후세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속인의 인식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었으며, 신은 결코 옛사람들이 허구로 지어낸 형상이 아님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다만 봉황이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 없고,
도리어 평범한 새를 가리키며 세상을 그르칠까 두렵구나.”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봉황이 이미 멀리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비록 진정한 봉황이 다시 인간 세상에 찾아온다 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까 하는 점이며, 반대로 사람들은 도리어 평범한 새를 가리켜 봉황이라고 우기며 가짜로 진짜를 혼동하여 세상 사람들을 오도할까 하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의 시는 두 층차의 우려를 담고 있다. 첫째는 참된 봉황이 앞에 있어도 알아보는 이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평범한 새가 봉황을 참칭하여 도리어 추앙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봉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이미 진위를 구별할 능력을 상실한 것이며, 세상에 현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념, 욕망, 편견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세속 사람들의 문학적 각도로 볼 때, 봉황은 예로부터 성현과 뛰어난 인재를 상징해왔다. 조빈은 평생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거듭 저지를 받았기에, 이 두 구절의 시는 또한 그가 재능을 펴지 못한 데 대한 감회와,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뒤바뀌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세상을 향해 내뱉는 탄식을 기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련의 각도로 볼 때, 이 시는 한 층 더 깊은 이해를 품을 수 있다.
전설 속의 팔선(八仙)도 일찍이 인간 세상에서 노닐지 않았던가? 또한 수많은 신들이 세상사람들을 일깨우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인간세상에 오기도 한다. 그러나 신이 보통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과연 몇 사람이나 그들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사실 이것을 온전히 사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신이 자신의 진정한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람이 신의 본모습을 알아보기가 당연히 매우 어렵다. 많은 신들이 세상에 와서 사람을 제도할 때 늘 금빛 찬란하고 신통(神通)이 광대하게 드러나는 형상으로 나타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신적을 보고 억지로라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어, 미혹 속에서 선념(善念)에 의지해 선택을 내린다는 것을 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인간세상에 올 때는 대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들 역시 생활하고 일하며, 상인 사회 속의 비바람과 고난을 겪기도 한다. 표면상으로 그들은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진정으로 다른 점은 생명의 근원, 짊어진 사명,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내는 경지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미국중부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기억에 노스트라다무스의 그러한 한 마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한 기간 동안 사람과 신이 함께 있는 날이 있다고 했다. 그가 가리킨 것이 무엇이든지 막론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들을 정말 속인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이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을 당신들은 내려놓을 수 있으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당신들은 감당했다.”
“인신동재(人神同在)”, 즉 사람과 신이 함께 있다는 것은 반드시 신들이 모두 위엄 있고 수승(殊勝)한 형상으로 세상사람들 앞에 공공연히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은 또한 사람의 곁에 있을 수도 있으며, 다만 사람의 겉모습을 한 채 인간세상에서 살아갈 뿐이다. 만약 신분, 직업, 재산, 사회적 지위만을 본다면, 사람은 표면 현상에 미혹되기 매우 쉽고 심지어 진정으로 높은 경지의 생명을 보통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신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단순히 세상사람들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더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이 신에 대한 사람의 기억을 이어주고 사람들에게 신이 진정으로 존재하며 신전문화(神傳文化) 역시 진정한 근원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한 사람이 신을 믿고, 천리(天理)를 경외하며, 선념(善念)을 지켜낼 수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진상을 알고 수련으로 들어서는 기연을 얻게 될 수 있다.
조빈은 “다만 봉황이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까 두렵다”고 썼다. 아마도 진정으로 안타까운 것은 봉황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봉황이 이미 나타났음에도 사람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과 집착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시의 다음 구절인 “도리어 평범한 새를 가리키며 세상사람들을 그르치네” 역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진정으로 고상하고 선량한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고, 반대로 허황되고 저속하며 심지어 타락한 것들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세상사람들의 추앙을 받을 때, 진실과 거짓은 전도되고 선악은 뒤섞이게 된다. 오래지 않아 사람은 봉황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범한 새를 봉황으로 여기고 진정한 봉황을 이류(異類)로 여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우주정법은 진실한 것이며, 대법제자 역시 인간세상에서 명리를 추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대법제자는 본래 아주 높은 층차의 생명이었으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인간세상에 와서 고난을 감당했다. 그들은 사람이 내려놓기 힘든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고,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마난을 감당해 냈는데, 이것 자체가 보통의 경지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통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 사람들이 보는 것은 표면에 불과할 뿐이다. 즉 한 명의 이웃, 한 명의 동료, 한 명의 친지, 혹은 거리에서 진상을 전하는 한 사람일 수 있다. 만약 세속의 관념과 거짓말에 눈이 가려진다면, 사람은 그들이 대표하는 선량함과 신성함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을 구도하는 사람에 대해 오해를 품을 수도 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법을 위해 왔으며, 생명 깊은 곳에서는 모두 법이 널리 전해지기를, 제도의 기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인간세상의 미혹의 안개 속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는가? 또 과연 몇 사람이나 관념의 가림을 걷어내고 눈앞의 “봉황”을 알아볼 수 있는가?
조빈의 《봉황산》은 표면적으로는 봉황이 떠나갔고 산 이름만 남았음을 썼지만, 실제로는 고금을 관통하는 하나의 의문을 남겼다. 만약 봉황이 오늘날 우리 눈앞에 있다면, 우리는 과연 알아볼 수 있겠는가?
봉황이 신적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평범한 새 취급을 해서는 안 되며, 평범한 새가 화려한 겉옷을 걸쳤다고 해서 그것을 봉황으로 오인해서도 안 된다.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사람과 신이 함께 있는 이 특수한 시대에, 선념을 지켜내고 진상을 명확히 볼 수 있는가는 한 사람의 안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생명의 머나먼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