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文先)
【정견망】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선악유보(善惡有報)의 이치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직접 겪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익이 건드려지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자신을 내려놓고 남을 완성해 주기는 여전히 아주 어렵다. 하지만 막상 진정으로 내려놓는다면, 아마도 또 다른 경지를 보게 될 것이고 운명 역시 그로 인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고서 《보응록(報應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당조에 범(範) 씨 성을 가진 한 현령이 있었는데, 옛사람들은 현령을 ‘명부(明府)’라 존칭했기에 책에서는 그를 ‘범명부(範明府)’라 불렀다. 그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술수(術數)에 매우 정통해 사람의 운명을 추산할 수 있었다.
후에 범명부는 관직에 올라 강남 모 현(縣)의 현령이 되었다. 그는 부임하기 앞서 자신의 운명을 추산해 보고는, 이듬해 가을이면 자신의 녹봉과 수명이 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안을 떠날 채비를 할 때, 그는 사람의 운명을 봐주는 술사(術士)를 다시 찾아갔다. 그 술사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수명은 내년 7월이면 끝나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먼 곳으로 벼슬을 하러 가시는 것입니까?”
범명부가 대답했다.
“나는 원래 내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하나 있어, 마지막 남은 이 기간을 틈타 박한 녹봉이나마 벌어 혼수를 마련해 주려는 것뿐이오.“
말을 마치고 그는 길을 떠나 부임지로 향했다.
부임한 후 범명부는 여종을 하나 샀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그는 여종의 성씨와 내력을 물었다.
여종이 대답했다. “제 성은 장(張) 씨입니다. 아버님께서 일찍이 모처의 제방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이셨는데, 후에 병란(兵亂)을 만나 사람들에게 약탈당해 여기까지 팔려오게 되었습니다.“
범명부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 부친의 이름을 거듭 물었다. 그러고는 눈앞에 비천한 여종으로 전락한 이 여인이 바로 오랜 친구의 딸임을 알게 되었다.
범명부는 곧바로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딸이야 시집갈 걱정이 없소. 우선 우리 딸을 위해 준비한 혼수를 전부 가져다 이 아이의 몸값을 치르고 또 고을에서 신중하고 선량한 사람을 찾아 시집보내 주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그는 원래 친딸을 위해 마련한 혼수로 옛 친구의 딸이 여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나아가 그녀를 위해 혼사까지 성사시켜 주었다.
임기를 채우고 장안으로 돌아왔을 때, 일찍이 그의 운명을 추산했던 술사가 그를 보고는 몹시 놀라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 예전에 나를 그토록 심하게 속이셨습니까! 분명히 당신의 녹봉과 수명이 다했다고 추산했는데, 어찌하여 지금 아무 탈 없이 멀쩡한 것입니까? 연월의 간지가 틀린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남몰래 쌓은 음덕(陰德)이 있어 선보(善報)를 받은 것입니까?”
범명부가 대답했다.
“모두 아닙니다.”
술사는 물러서지 않고 거듭 캐물었다. 판명부는 그제야 여종을 위해 속환하고 딸의 혼수로 그녀를 시집보낸 일을 털어놓았다.
술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으며 말했다.
“바로 이 일 때문이로군요! 그때부터 당신의 복록과 수명이 한량없이 커진 것입니다.”
후에 범명부는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야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가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단지 범명부가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고 그가 그러한 선택을 내렸던 당시의 처지에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았고 남은 날이 얼마 없음을 알면서도,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머나먼 강남 임지로 향했다. 그를 이토록 움직이게 한 유일한 걱정은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었다. 그는 자기 생명의 마지막 시간을 이용해 녹봉을 벌어 딸을 위해 혼수를 마련함으로써, 장차 그녀의 삶이 의지할 곳이 있게 만들고자 했다.
그 혼수는 그야말로 그가 생명의 끝자락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일이자, 아버지가 딸에게 남겨주는 최후의 보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옛친구의 딸이 전란으로 포로가 되어 여종으로 전락한 것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신의 딸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고통받는 여인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몸값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원래 친딸을 위해 준비했던 혼수 전부를 꺼내어 그녀를 위해 신중하고 선량한 남편을 찾아주었다.
이것은 결코 그가 자신의 딸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병란 속에서 의지할 곳을 잃고 타향을 떠도는 벗의 딸의 고통을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남의 딸을 자기 딸처럼 여겼고, 남의 고난을 자신의 이익보다 앞에 놓았다. 이 선념(善念)은 일시적인 동정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가를 치른 것이었다.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수명도 이미 얼마 남지 않았고 딸도 아직 시집가지 않았는데, 이 혼수를 어찌 남에게 양보할 수 있단 말인가? 옛친구의 딸을 돕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딸이 어찌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는 들으면 모두 매우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선(善)은 종종 이러한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순간에 체현된다. 오직 자신의 절실한 이익이 부딪히는 순간에도 여전히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선념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다.
범명부는 선을 베푼 후에 얼마나 많은 보답을 받을지 계산하지 않았고, 이를 빌려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옛친구의 딸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는 차마 방관하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이 일념에 사심(私心)이 없었기에, 그의 원래 이미 끝에 다다랐던 명수(命數)가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범명부의 친딸이 나중에 어떻게 시집갔는지 상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범명부가 혼수를 내주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원래 정해졌던 죽을 날을 무사히 넘겼고 수명이 연장되었으며 관록 또한 이어져서, 후에 여러 차례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딸의 혼수 중 일부를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얻은 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복분(福分)과 수명이었다.
중국에는 그물의 한 면을 열어주라는 ‘망개일면(網開一面)’이라는 성어가 있다. 아마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돌이킬 기회를 남겨주셨을 것이다. 관건은 사람이 선과 악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경우, 운명을 바꿀 기회는 천지가 진동하는 형식으로 찾아오지 않으며, 아마도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이익에 관한 취사선택을 마주하거나, 혹은 선념과 사심 사이에서 평범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일이 지나간 뒤에야, 종종 그 속의 이치를 명확히 보게 된다. 오늘 범명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아마 그의 행동에 동의할 것이며 또한 그의 선함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똑같은 일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닥쳐와, 우리로 하여금 수년간 모아둔 재물을 꺼내게 하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친정과 이익을 내려놓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를 완성해 주도록 요구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가?
이치를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이때는 아직 자신의 이익이 건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려놓음이 어려운 이유는, 진정으로 버릴 때 사람의 명(名)·리(利)·정(情), 심지어 가장 끊어내기 어려운 염려까지 건드리게 되기 때문이다.
범명부가 소중한 점은 그가 마음에 걸리는 짐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염려 앞에서도 여전히 선량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마음대로 베풀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차마 놓지 못했던 것을 꺼내어 주었다는 점에 있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은 뒤에 생명이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면, 아마도 더 오래고 먼 복분(福分)을 얻게 될 것이며; 사람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죽기 살기로 붙잡고 있으면 또한 그로 인해 하늘이 내려주신 전기(轉機)를 놓칠 수 있다.
이익 앞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지, 선악 사이에서 어떻게 선택할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모두 하나의 관이다. 선념(善念)과 악념(惡念)은 때로는 단 1초 사이에 불과하지만, 이 일념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범명부의 일념 선심(善心)은 옛친구의 딸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도 바꾸어 놓았다. 이를 보면 미래란 반드시 멀리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발현하는 그 일념에 달려 있다.
일념이 선(善)을 행하면, 아마도 곧 다른 천지를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고;
일념이 사(私)를 품으면, 하늘이 남겨둔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복(福)과 화(禍)를 어떻게 선택할지,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대개 사람이 품는 그 일념 사이에 달려 있다.
자료출처: 《보응록(報應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