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善明)
【정견망】
최근 《홍루몽》을 보았는데, 그 속의 인물 관계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왕희봉(鳳姐)만큼은 인상이 매우 깊었다. 그녀는 감정 지능이 아주 높고 팔방미인인 여장부였지만 결국 뜻밖에도 “온갖 계략을 다 꾸몄으나 너무 총명해서”,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해쳤으니” 정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사실 무엇이 총명하고 무엇이 우둔한지에 대해 옛사람과 현대인의 견해는 이미 아주 큰 변화를 겪었다.
북송 신종 원풍(元豐) 3년, 불혹의 나이를 넘긴 소동파(蘇東坡)는 황주(黃州)로 부임했다. 얼마 전 그는 막 한 차례의 큰 난을 겪었으며, 옥중에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4년 후 그의 아들이 태어나자 기쁨을 이기지 못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사람마다 자식을 기르며 총명하기를 바라건대,
나는 총명 때문에 한평생을 그르쳤네.
오직 바라건대 내 아이는 어리석고 우둔하여,
재난과 환난 없이 공경(公卿)의 자리에 이르기를.”
(《세아희작(洗兒戲作)》)
비록 장난삼아 지은 글이기는 하나, 어찌 진심이 아니겠는가?
소동파는 한평생 총명했지만, 그 총명함 때문에 자신에게 적지 않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가 말한 이른바 총명 역시 지금 세속적 의미에서의 총명은 결코 아니다. 소식은 결코 남이 하는 대로 덩달아 부화뇌동하지 않았고 용감하게 신법(新法)의 폐단을 직언했으며, 그 누구에게도 방비하지 않았으니, 한마디로 “뱃속 가득 시대에 맞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이것이 어찌 총명이겠는가, 명백히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순진했던 것이다.
소동파의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성격은 자신에게 그처럼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결코 ‘교훈’을 삼을 줄 몰랐고 여전히 그렇게 처신했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유배되거나, 아니면 유배 가는 길에 있거나 둘중 하나였다. 하지만 또 바로 그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도리어 문단에서 불멸의 동파거사(東坡居士)를 성취할 수 있었다.
물론 소동파가 아이가 어리석고 우둔하기를 바란 것은 어쩌면 정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둔한 사람은 그토록 많은 번뇌가 없고, 남을 속고 속이며 셈을 주고받는 일을 더더욱 알지 못한다. 이것이 어찌 일종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장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한음장인(漢陰丈人 한수 남쪽의 일하는 노인)이 우물을 파고는 항아리를 안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번거롭게 물을 길어 밭을 매우 힘들게 관개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권했다.
“이렇게 하면 너무 고단하니, 용두레라는 관개 도구를 쓰면 힘을 많이 덜 수 있습니다.”
한음장인은 그의 호의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들으니, 기계(機械)가 있으면 반드시 교활한 일(機事)가 있고, 교활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교활한 마음(機心)이 생기며 교활한 마음을 품으면 타고난 깨끗함(純白)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타고난 깨끗함이 사라지면 정신(神)이 안정되지 못하며,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면 도(道)를 싣지 못합니다. 제가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오.”
만약 당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노인이 검증하기 어려운 거창한 도리를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우리가 시간 축을 길게 늘여서 본다면 이 노인의 진정한 지혜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했고 각종 기계의 발명, 즉 자동차·기차·비행기는 사람들의 생활을 극도로 편리하게 했다. 그러나 문제도 따라서 발생했으니, 휴대폰과 전자게임으로 인한 인터넷 중독, 자연환경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 지구 에너지의 위축, 핵전쟁의 위협, 이 모든 것은 ‘교활한 마음(機心)’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며 이미 인류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가 되었다. 한음장인의 말과 같이 “이것은 도를 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옛사람들은 차라리 졸(拙, 우둔함)을 지킬지언정 교(巧, 교묘함)를 취하지 않았다. 북송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는 ‘졸(拙)’의 이로움을 분명히 밝혔다.
“교자(巧者)는 말을 잘하고 졸자(拙者)는 침묵하며, 교자는 수고롭고 졸자는 한가하며, 교자는 남을 해치고 졸자는 덕을 쌓으며, 교자는 흉하고 졸자는 길하다. 아! 천하가 졸하면 형정(刑政)이 통하고, 윗사람이 편안하고 아랫사람이 순종하며, 풍속이 맑고 폐단이 근절될 것이다.”(《졸부(拙賦)》)
송렴(宋濂)은 《졸암기(拙庵記)》에서 말했다.
“대저 사람이 졸렬한 곳이 있는 사람 반드시 교묘한 곳이 있고, 교묘한 곳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졸렬한 곳이 있으니, 지금 졸렬한 자는 반드시 옛날에 교묘할 것이고, 속임수에 졸렬한 자는 반드시 지혜에 교묘할 것이며, 사람에게 졸렬한 자는 반드시 하늘에 교묘할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은 인간됨이 간사하고 교활하다면 이런 사람은 반드시 안목과 지혜가 결핍되기 마련이며,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기에 교와 졸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좋고 나쁨, 선과 악에 대한 일종의 취사선택이며, 천도(天道)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智)와 어리석음(愚), 교묘(巧)와 졸렬(拙)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갖게 만들었는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가 그 까닭을 말해준다. 우공(愚公 어리석은 노인)과 지수(智叟 지혜로운 노인)는 ‘산을 옮기는 것’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가졌는데, 근본적으로 말해서 우공의 사상은 선(善)에 대한 견지, 신(神)에 대한 바른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천제가 그의 정성에 감동해 과아씨(誇蛾氏)의 두 아들에게 명령해 두 산을 업어 옮기게 하니, 하나는 삭동(朔東)에 두고 하나는 옹남(雍南)에 두었다.”(《열자·탕문편(列子·湯問篇)》)
만약 사람이 신(神)을 버리고, 신이 사람에게 규정한 도덕 표준과 좋고 나쁨의 정의를 버린다면, 옛사람 눈에 비친 졸렬한 자는 도리어 교묘한 자로 변해버릴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총명한 사람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중공에 의해 이러한 선량한 전통 관념이 뿌리뽑혔고, 당문화(黨文化)의 무신론과 투쟁철학을 강제로 주입당했기에 ‘왕희봉(王熙鳳)’과 같은 인물을 도처에서 볼 수 있고 ‘우공’은 이류(異類)가 되어버렸다. 과연 이러한 사회 속에서 어디에 한 점의 정토(淨土)가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