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古宜)
【정견망】
최근에 친한 친구와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다가 한 가지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바로 사람과 교류할 때,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과 인터넷으로 교류하는 것이 동일한 사람이라도 양면성을 드러내며 낙차가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상대방이 마치 딴사람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온화하고 이치에 밝으며 약간 내성적인 사람이, 인터넷 상에서의 모습은 오히려 ‘악플러’, ‘키보드 워리어’여서 마치 생사여탈의 초능력이라도 가진 듯하다. 누구를 보든 한바탕 비난을 퍼부을 수 있고, 때로는 승세를 몰아 끈질기게 추격하며 억지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상대방을 완전히 이겼다고 느낄 때까지 하다가 비로소 컴퓨터를 끄고 불을 끈 뒤 단잠을 자러 간다.
또 예를 들면, 어떤 노인은 현실에서는 열정적이고 남 돕기를 좋아하며 하는 말에선 높은 감성 지능(EQ)이 묻어난다. 하지만 인터넷에만 오면 글자도 쓸 줄 몰라 젓가락 한 짝으로 필기판 위를 긁어대며 한참 동안이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후배에게 부탁해 “꺼져(滾)”라는 글자 하나를 대화창에 쳐놓게 하고는, “꺼져” 글자 뒤에 따라붙을 일련의 비추천(downvote) 작은 그림들까지 준비해 둔다. 상대방이 접속해 들어오면 곧바로 기선을 제압하며 그것을 발송해 버린 뒤에는 줄행랑을 쳐버린다.
이것은 분명 정상적인 교류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분열이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푹 빠져 지내는데, 고작 이런 자극을 얻기 위해서란 말인가?
주지하다시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 교류는 하나의 사교이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일종의 교제 능력과 예의로 대개 예의 바르고 이성적이며 절제되어 있다.
반면에 인터넷상에서는 어떤 이들이 화면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가면을 벗어던진 뒤 극단적인 표현과 조작을 한다. 즉, 겁을 상실하고 제멋대로 굴며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마성(魔性)을 방종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은밀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이 없고, 미세한 일보다 더 잘 나타나는 곳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慎其獨也).”라고 했다. 은밀한 곳에 있을 때보다 사람의 본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고, 미세한 일에 있을 때보다 사람의 본질을 더 폭로하는 것은 없다.
인성의 착오와 유리(游離)는 인터넷의 허환(虛幻)과 위장을 가중시켰다. 인터넷이라는 이 세계는 기껏해야 가상의 오락 장소에 불과하다. 특히 인터넷 친구 사귀기나 각종 형태의 플랫폼을 겨냥할 경우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심지어 함몰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인터넷에 전해지기를 어느 나이 지긋한 여성 방송 진행자가 현대 과학의 전방위적 포장 아래 음성(얼굴을 가림)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다정다감한 한 남성이 인터넷 속에서 청춘의 아름다운 보물을 건졌다고 여기고는 그녀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나중에는 일이 들통나고 원형이 드러났다.
온라인 대화에 빠져든 적지 않은 남녀들이, 막상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날마다 품어왔던 상사(相思), 갈등, 애끓는 그리움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난 날의 온갖 태도들을 회상해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복잡한 인터넷 세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노인들은 아마도 더욱 비참할 것이다. 그들은 큰 기대를 품고 현실판의 상대방을 보았으나, 그것이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해 채워 넣었던(腦補)’ 그런 형상이 아니자 문득 낙심천만하여 앓는 소리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소한 부주의나 방심 하나가 어쩌면 손실과 상처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미혹성과 기만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뻔히 알면서도 거듭 당하고, 마치 유행처럼 달려든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도대체 무엇을 성취해 주었는가? 그것은 가면을 벗어던졌을 때의 제멋대로와 즐거움도 가지고 있지만, 현대 과학이 포장해 낸 번화함과 미혹된 정취도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깊이 각인되는 것은 실상 차가운 꿈속의 물거품에 불과하다.
인터넷 친구 사귀기든 혹은 각종 형태의 교류든,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신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실함과 믿음은 근본적으로 도덕의 최저선과 인격 수양의 제고, 그리고 사회 정기(正氣)의 선양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 대륙은 중공의 사악한 통치 아래 난상이 얽히고설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로를 해치는 생태 모드로 타락해 버렸으니, 어디에 신뢰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