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희(白玉熙)
【정견망】
이 질문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소문(素問)》은 주로 한의학이 인체의 생리와 병리에 대해 갖는 근본적인 인식을 다룬다. 반면 《영추(靈樞)》는 당연히 어떻게 병을 치료할 것인가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며, 의료 기술에 관한 것이다. 마치 서양의학처럼, 서양의학의 의학 이론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치료 기술과 수법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다만 두 의학이 관여하는 층차가 다를 뿐이다.
양의는 인체가 병에 걸리는 원인이 병원균과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어떤 병원균에 의해 초래된 것인지 검사해 낼 방법을 강구한 뒤, 서로 다른 병균에 맞서 대항하는 약물을 연구·제조한다. 이것이 바로 양의가 병을 치료하는 사고방식이다.
반면 한의학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차원에서 병을 바라보며, 외부의 병원(病源 병이 생기는 근원)을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열(熱)이라는 이 여섯 가지 기[氣·자연계의 에너지를 고인(古人)은 ‘천기(天氣)’라 불렀다]로 나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병들면 이 여섯 가지 사기(邪氣) 중 어느 하나 또는 복수의 것들에 감염되었는지를 분석한 다음, 에너지 차원의 경락(經絡)이라는 시스템, 즉 ‘영추’라는 이 메커니즘을 통해 병 치료에 착수하게 된다.
《영추(靈樞)》에는 경맥의 작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경맥이란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고, 온갖 병을 다스리며, 허실(虛實)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니 통(通)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보아 이 기기(氣機)가 생사를 결정할 수 있고 온갖 병을 처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을 치료하는 핵심은 바로 이 경락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하는 근본은 경락[경맥(經脈)과 낙맥(絡脈). 경맥은 주줄기고, 낙맥은 각부의 경맥을 연결한다]에서 출발한다. 이 경락은 크고 작은 것에서부터 안팎으로 온 인체에 두루 퍼져 있어 혈관보다도 많으며, 온 인체 각 부분의 생리(生理) 기능을 통제한다. 따라서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할 때는 곳곳에서 ‘기(氣)’라는 글자를 떠날 수 없다. 이 기는 바로 각부 경락을 흐르게 하는 에너지로, 외부의 우주 에너지 기운과 서로 통한다. 바람과 추위에 감염되는 것[풍한(風寒)]은 바로 풍한 성질의 에너지 기운이 인체의 경맥으로 침입한 것이다. 《상한론(傷寒論)》은 바로 인체의 육경(六經) 방식을 통해 병정(病情)의 변화와 치료를 논술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중경(張仲景)이 왜 육경의 관점에서 병정을 분석하고 약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중경은 《황제내경》이 다루는 주요 치료 수단이 침과 뜸—직접 침과 뜸으로 경락을 자극하여 경락의 기를 밀어내어 병기를 몰아내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약물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병을 치료하는 구체적인 수법의 차이일 뿐이다. 약을 쓸 때 역시 약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경락을 통해 작용을 발휘하고, 마찬가지로 에너지 차원에 대응한다. 이 점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약은 양의처럼 약물의 성분을 따지지 않고, 대신 ‘한(寒), 량(涼), 온(溫), 열(熱)’이라는 이 네 가지 서로 다른 음양 속성의 에너지와, 함(咸 짠 맛), 산(酸 신 맛), 고(苦 쓴 맛), 신(辛 매운 맛), 감(甘 단 맛)이라는 오미(五味)의 오행 속성을 따진다. 그 목적은 바로 약물이 귀경(歸經—특정 경맥으로 들어감)하는 데 쓰이기 위함이다. 즉, 서로 다른 약물의 성미(性味)가 서로 다른 경맥으로 들어가게 되고, 서로 다른 경맥으로 들어가면 경락이 통제하는 장부 기관과 각부 조직에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음양을 조절하고 인체 기능을 회복시키면 병도 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은 침구든, 추나요법이든, 혹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든 간에 그 모든 수법이 한의학이 병을 치료하는 기초 원리를 떠날 수 없다. 즉,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차원에서 출발하여 표층 인체의 혈맥(血脈) 및 각 기관 조직을 조절하는 작용에 도달하는 것이다. 병인(病因)과 치료 수법은 모두 천지의 기(氣 에너지)와 서로 통하는 이 인체 경락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장중경이 육경으로 병리와 약물을 설명한 이유이다.
만약 한의학이 병을 치료하는 핵심 차원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고, 심지어 약물로 병을 치료하는 것과 침구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별개의 학문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처방으로 병을 치료하는 많은 한의사들이 정작 경락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그것을 침구과(鍼灸科)에서 배워야 할 지식으로 여긴 결과로 이어진다. 현대 한의학의 약물 연구가 점차 서양의학의 성분 연구 길로 걸어가게 만드는 꼴이니 참으로 통곡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한의학에서 흔히 “기는 혈의 장수(氣爲血之帥)이니 기가 막히면 혈이 뭉친다(氣滯血瘀)”고 말한다. 기는 인체 경락을 흘러 다니며 피의 운행을 추진하는데, 기가 막혀서 응체되면 혈액이 그를 따라 쌓여 어혈이 되고, 인체 기능에도 문제가 생겨 각종 기능성 난치병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혈(氣血)이 통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곳에 통증이 생기고(不通則痛), 시간이 오래되면 쌓여서 종양이 되어 사람을 ‘아파서’ 살기 힘들게 만든다. 종양성 질환과 각종 암의 발생이 아주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것은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 의가(醫家)들이 흔히 “경락을 모르면 입을 열거나 손을 대자마자 그르친다. 아예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묻노니, 혈(血)만 보이고 기(氣)는 보이지 않으며, 경락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의학이 어떻게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 인체에 기가 없다면 컴퓨터에 전기가 없는 것과 같으니 각부 부품을 가동하여 일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학이 인체를 어떻게 조절하고 통제하겠는가? 고인의 사유에 따라 한의학을 전승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갈 길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