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원문】
有子(1)曰:“其爲人也孝弟(2),而好犯上者(3),鮮(4)矣;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5)。君子務本(6),本立而道生(7)。孝弟也者,其爲仁之本與(8)?”
【주석】
(1) 유자: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들은 대개 자(字)로 불렸으나, 오직 유약과 증삼(曾參)만은 ‘자(子)’로 불렸으니 후세 사람들이 그들의 덕행과 학식을 아주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2) 효제(孝弟): 효는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는 도리이며, 제는 ‘제(悌)’와 같아 형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도리이다. 효제는 외적인 예절이 아니라 사람이 가정에서 감사하거, 어른에 대해 공경하며, 인애(仁愛)를 배우는 첫걸음이며, 수신(修身)하고 덕을 세우는 최초의 실천이다.
(3) 범상(犯上): 범은 범하다, 침범하다의 뜻고, 상은 윗사람을 가리키며 부형, 연장자 및 책임을 진 사람을 포함한다.
(4) 선(鮮): 적다, 매우 적다.
(5) 미지유야(未之有也): 도치문장로, 즉 ‘미유지야(未有之也)’이며, 이런 사람은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다는 뜻이다.
(6) 무본(務本): 무(務)는 오로지 힘쓰다, 전념하다는 뜻이고, 본(本)은 근본, 본원이다.
(7) 도(道): 공자가 말한 인의(仁義)의 도이며, 수신, 제가, 치국이 공통으로 준수해야 하는 근본적인 도리이기도 하다.
(8) 위인지본(爲仁之本): 유자(有子)는 효제가 인덕(仁德)이 생겨나는 근본이며, 삶 속에서 인(仁)이 최초로 실천되는 곳이라고 여겼다.
【번역】
유자가 말했다.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공경하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야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인의의 도가 저절로 생겨난다. 효도와 공경이란 바로 인덕의 근본이다.”
【본장 요지(本章要旨)】
효제(孝悌)로 근본을 세우고, 인덕(仁德)으로 사람을 교화한다.
가정은 수신하고 덕을 세우는 제1의 학당이며, 인심(人心)이 바르게 돌아와야 비로소 천하 태평의 근본이 선다.
【해설】
제1장이 ‘배움’을 논했다면, 제2장은 ‘어디서부터 배워야 하는가’를 논한다
《학이》 제1장에서 공자는 먼저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했다. 배움이란 지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덕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제2장은 당연히 이어서 묻게 된다. 덕은 어디서부터 닦아야 하는가? 유자의 대답은 오직 두 글자, 곧 ‘효제’이다.
《학이》 제2장은 단순히 가정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1장이 남긴 물음에 답하고 있다. 즉, 배워서 얻은 인의의 도를 어디서부터 실천해야 하는가?
그 답은 바로 가정에 있다.
가정은 인생의 첫 번째 덕행 수양 학당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군왕(君王)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며, 사회도 아니다. 바로 부모와 형제자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 노릇을 하는 법이다.
가정에서 사람은 감사, 존중, 양보, 책임짐을 배워야 하고, 헤아림, 보살핌,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추상적인 도덕이 아니라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선행이다.
제1장에서 ‘때로 익힌다’고 하여 도덕적 실천을 늘 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제2장은 바로 그 ‘익힘’의 실천이 우선 가정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려준다.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하는 마음 가짐, 한 번의 양보, 한 번의 돌봄이 모두 덕을 닦는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교육에서 가정은 단순히 인생을 살아가는 한 공간이 아니라, 덕을 닦는 첫 번째 교실이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긴다”, 여덟 글자에 담긴 사람 노릇의 차제
본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킴[犯上作難]’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난다”는 대목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늘 ‘본(本)’이라는 글자를 가르쳤다.
제1장에서는 ‘배움’의 근본이 사람 되는 법을 아는 데 있음에 대해 말했고, 이것이 곧 교육의 근본이다.
제2장에서는 ‘효제’가 인덕의 근본이며, 덕을 닦는 출발점이자 사람 노릇의 기초임을 밝히고 있다.
나무에 뿌리가 있어야 가지가 무성할 수 있듯이, 사람에게 근본이 있어야 도의(道義)가 마음속에서 저절로 자라날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흔히 가지와 잎새만 중시하고 근본은 잊어버린다. 능력, 성공, 기교를 중시하면서도 도덕은 소홀히 한다. 이야말로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으로, 사람은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자아를 상실하기 쉽다. 하지만 공자의 방식은 그와 정확히 반대이다. 먼저 뿌리를 잘 기르면 도는 저절로 자라나게 마련이며, 자기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인생의 도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난다”는 것은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논어》 전체를 관통하는 수신(修身)의 차제이다.
어째서 효제가 천하 태평을 가져다주는가?
많은 사람들이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일찍이 없었다”는 대목을 읽고는 공자가 권위에 대한 맹종을 요구한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본장이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복종이나 이른바 통치의 술수가 아니라 바로 ‘태평’이다.
공자는 춘추 말기의 난세(亂世)에 살았다. 제후가 천자를 범하고, 대부가 제후를 범했으며,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해하는 일이 벌어져 천하의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누구나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바랐지만, 공자는 전쟁이란 결과일 뿐이며 인심이 덕을 잃은 것이야말로 그 근원임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유자(有子)는 먼저 병법을 말하지도 않았고, 먼저 법률을 말하지도 않았으며, 가장 먼저 ‘효제’를 말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마음에 경외심, 인애(仁愛), 절제와 책임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남을 해치거나 난세를 향해 걸어 나갈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공자는 태평이란 강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심이 덕을 숭상하는 데서 세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효제는 인심을 바르게 돌이키는 첫걸음이며, 인심이 바르게 서야 비로소 천하가 오래도록 평안할 수 있는 근본이 마련된다.
이것이 바로 본장에 ‘범상작난(犯上作難)’의 내용이 언급된 까닭이다. 그러한 결과를 원치 않고, 그러한 난세를 근절하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인효(仁孝)로 천화를 교화하고 인심을 바르게 돌이킬 줄 알아야 한다. 얼핏 보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안정시키는 법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이러한 범상작란을 쉽게 마주할 일이 없는 선과(善果)’를 통해, 교육은 왜 인덕(仁德)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지, 왜 배움의 본의가 도덕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있는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짊어진 것은 천하를 교화할 뜻
《논어》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입문용 독서물이 아니라, 장차 가정과 사회, 그리고 천하의 책임을 짊어질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그저 자신 하나 잘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인의(仁義)의 도로 천하를 교화하는 데 쓰기를 바랐다. 북송 시대의 장재(張載)는 이러한 유자(儒者)의 책임의식을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해 생명을 세우며(為天地立心, 為生民立命)”라는 말로 요약했으니 바로 이런 뜻을 온전히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의 시선은 이미 한 집안을 넘어 천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닦는 것은 한 개인의 인덕(仁德)이며, 덕이 성취된 이후에는 그것을 한 집안, 한 고을, 한 나라, 나아가 천하 만민에게까지 교화해 나가야 한다. 교화란 백성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요, 덕으로 기름[德育]란 인민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수신(修身)하고 덕을 세워 선한 마음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인심이 선(善)을 향하면 사회는 자연히 안정되고, 인심이 덕(德)을 잃으면 아무리 치밀한 법률이라도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라고 믿었다.
효제는 맹종이 아니라 의로 가족을 지키는 것
일부 사람들은 효제란 무조건 부모와 임금에게 아무런 원칙 없이 복종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공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논어》에서는 여러 차례 ‘간(諫)’을 언급하고 있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하여 바로잡아야 하고, 군주에게 허물이 있으면 신하 역시 바른말을 해야 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의 기록에 따르면, 증자는 지극한 효자였으나 일찍이 아버지가 화를 내며 몽둥이로 때릴 때 피하지 않고 가만히 맞기만 하면 그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가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그러자 공자는 오히려 그의 행동을 꾸짖었고, 심지어 문인들에게 잠시 증삼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훈계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참된 효가 아니며, 자칫 아버지가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지 못하여 자식에게 해를 입히는 죄를 짓게 만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참된 효(孝)란 공경하되 의리에 맞아야 하고, 참된 제(悌)란 화목하되 절도가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시작하여 천하로 나아가
제1장은 ‘배움’을 논하고, 제2장은 ‘효제’를 논하지만 두 장은 사실 똑같은 하나의 일을 말하고 있다.
제1장은 방향을 정해준다. 배움이란 덕을 닦는 것이다.
제2장은 출발점을 정해준다. 덕을 닦는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먼저 말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잘 대하는 법부터 먼저 가르쳤다. 가정은 인의가 처음으로 땅에 뿌리내리는 곳이며, 효제는 인애가 처음으로 실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효제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아들딸, 좋은 형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정 안에서 인후(仁厚)한 마음을 길러낸 뒤에 그 인후함을 다른 이에게로 미루고, 사회로 미루며, 천하로 미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이》 제2장이 진정으로 답하고 있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천하의 태평은 인심에서 시작되고, 인심이 바르게 돌아오는 것은 효제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