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손자가 태어난 후, 막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안겨 나왔을 때 하나의 뚜렷한 일념이 내 머릿속으로 주입되었다. ‘모모림(某某林)이 왔다.’ 당시에는 산모와 아이를 돌보느라 경황이 없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
나중에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뚜렷한 생각이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머릿속에 넣어준 것일까? 무슨 뜻이지? 내 스스로 지어낸 것일 리가 없다.’
모모림은 내 남편의 이름인데, 세상을 떠난 지 십여 년이 되었다. 설마 그가 윤회전생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온갖 ‘우연한’ 조짐들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나는 손자와 남편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가장 명백했던 일 중 하나는, 남편이 사망한 후 직단에 위로금이 있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위에서 비준이 내려오지 않아 돈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손자가 태어난 지 나흘째 되던 날, 관련 담당자가 먼저 우리에게 전화해 돈을 찾아가라고 했다. 또 손자가 좋아하는 물건이나 소장품들도 남편의 지난 생애 경험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왜 나와 손자의 인연 관계를 알게 하셨을까?’
1. 나의 무신론 독소를 깨뜨려 사람은 진정으로 윤회가 존재함을 알게 하신 것이다,
2. 우리 사이의 은원(恩怨)을 전생에 다 끝내지 못해 이번 생에 마저 갚게 하신 것이다.
3. 그가 구도를 받게 하여,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윤회의 고통에서 그를 구해내게 하신 것이다.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병이 있었는데, 나 역시 처음에는 성심성의껏 그를 위해 병원을 찾고 약을 구했으나 그는 만족해하지 않았고 늘 나의 흠을 잡았다. 서서히 내 마음의 균형이 깨졌다.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도 선연(善緣)이 아니었기에, 어느 생 어느 세인가에 내가 분명 시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시어머니도 늘 우리 사이를 이간질했다.
대법을 배우고 나서야 나의 어떤 행동들이 남편에게 준 상처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일찍 대법을 배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음을 알았더라면 그런 바보 같은 짓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 어느 날 목욕탕에서 시어머니도 목욕하러 온 것을 보고 내가 먼저 다가가 등을 밀어주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원한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인과응보이며 아무런 연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법 속에서 우리는 사람의 원신(元神)이 진정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악한 당의 무신론 영향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이런 것들을 믿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이러한 방식을 통해 나의 무신론 독소를 깨뜨려 주셨고, 내가 수련 중에서 연분이 있는 생명과의 은원을 선해(善解)하며 이로써 심성을 제고하도록 안배해 주신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집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손자가 어렸을 때, 나와 손자의 외할머니가 번갈아 가며 돌보았는데, 집안 아이인 만큼 당연히 기꺼이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돌보았고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안배하시어 내가 이전의 부족했던 점을 메우도록 해주신 것이다. 손자가 말을 배우자마자 《홍음(洪吟)》을 외우게 했고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는 아주 똑똑햇 주변 아이들은 그를 ‘똑똑한 작은 오빠’라고 불렀다.
서서히 손자가 자라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우리가 돌볼 필요가 없어졌고, 다만 방학 기간에만 모이게 되었다.
아들과 손자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즐겁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모순이 생겨 다투는 것을 보면 나도 마음이 동하고 정(情)이 동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여 그가 사람을 발로 차고, 그가 사람을 주먹으로 치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이전에 그에게 빚을 졌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둘은 결산을 한 것이다. 당신이 상관한다면 그들 사이는 결산하지 못해 다음번을 기다려 또다시 해야 한다.”(《전법륜》)
나는 그들 사이의 인연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이것은 업력이 돌고 도는 것이라 간섭하기도 그렇고 간섭하지 않기도 애매했다.
손자가 때때로 나에게 작은 투정을 부리거나, 때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내게 화를 내면 내 마음의 균형이 깨졌다. 비록 그와 똑같이 상대해 주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편치 않았고, 지나간 해묵은 장부들이 자꾸만 위로 떠올라 나 혼자 남몰래 화를 내곤 했다.
나중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화를 내면 안 된다. 예전에는 무명(無明) 속에서 참을 줄을 모르고 아귀다툼을 벌였지만, 지금은 법리(法理)를 알고 있으니 모든 것이 내가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이다.’ 내 안의 ‘쟁투심’,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좋은 소리만 듣기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누가 나를 맞추어 주면 기뻐하고, 누가 나를 거스르면 괴로워하는 마음’을 다 버리자. 사부님께서 자비로 안배해 주신 이 방식을 통해 빚을 갚고 소원을 이루며 은원을 선해해야 하니, 사부님의 고심 어린 안배를 저버릴 수 없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수련의 환경을 마련하고 길을 닦아놓은 것이니, 누구에게든 선(善)을 베풀어야지 더 이상 과거의 은원관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마주하는 모든 것은 나의 인심(人心)과 인정(人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대륙의 입시 교육 속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높은 점수가 곧 좋은 아이라 여기고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가늠한다. 전통적 이념은 말하지 않고, 덕을 중시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도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모두 무신론의 그런 것들뿐이다.
나는 발정념으로 손자의 배후 사악이 주입한 독소를 해체하고, 손자를 볼 때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하루는 손자가 신비하게 내게 말하기를, 어떤 친구가 인터넷 방화벽을 넘을(翻牆) 줄 알아서 많은 진상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6.4(천안문 사건) 때 탱크가 수많은 사람을 짓밟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손자에게 일렀다. “우리는 사람을 해치는 사악과 통속이 아니니, 그것의 단대(團隊) 조직에 가입할 때 했던 독한 맹세를 깨끗이 지워버리자.”
손자는 기뻐하며 거듭 “좋아요, 좋아요”라고 말했다.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고, 금생금세(今生今世)에 와서 사람이 된 이들은 모두 인연이 있는 생명들이다. 나의 소원은 기연이 성숙했을 때 손자가 진정으로 대법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말씀을 잘 듣고, 자신을 잘 닦아 사부님 따라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