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친구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2010년 무렵 그녀의 고객 친척이 광동성 조주(潮州) 모처의 마을에서 보조경찰로 일했다고 한다. 보조경찰의 업무는 정신이상자나 장애인들을 전문적으로 체포하는 것이었는데, 현지인이든 성외(省外) 사람이든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자원’들은 장기 이식을 하는 병원에 실려 갔으며 전부 현금 거래였다. 병원에서 선택받지 않은 이들도 마치 짐승처럼 도살되고 이용당한 뒤 시신이나 부품(장기)이 되어 커다란 구덩이에 묻혔고, 구덩이 위에는 위장 처리가 되었다.
보조경찰들은 또한 거리에서 광고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어린 여성들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나이가 젊고 추하지 않은 이들은 강제로 매춘에 내몰렸고, 용모가 아름다운 이들은 고위 관료들에게 바쳐져 유린당했으며, 나중에 나이가 들고 색이 바래면 역시 생체 장기적출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보조경찰의 급여는 매우 높아 당시 평균 임금의 6배에 달했다.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보조경찰들이 술김에 이러한 ‘비밀’들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들은 비밀 유지 서약을 강요받았으며, 일단 누설하면 “온 가족을 죽여버린다!”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상관은 공안과 촌 간부 및 기타 지도부였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이 처벌받았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고, 오히려 몇 년 전에 그들이 국경을 넘어 “세력을 키우고 덩치를 불려” 미얀마로 “진출”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미얀마 사기 단지의 지도층이 전부 중국인 얼굴에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도 과연 무리가 아니었다.
생체 장기적출 같은 이러한 작태는 조주 같은 작은 도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9년, 어떤 동수가 남방의 대도시에서 우연히 한 노숙자를 만나 동정심에 도시락 하나를 사주고 진상을 알려주려 했는데, 그러자 그는 목이 메며 입술을 바들바들 떨고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그는 자신이 길림성 연변 왕청현(汪清縣) 출신이며 성이 허(許) 씨라고 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앙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그는 2년 반 동안 노동교화 처분을 받았고, 풀려난 뒤에는 직장에서 쫓겨났다. 아내는 그에게 이혼을 강요하며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신분증은 경찰에게 몰수당했다.
그는 일찍이 파출소에 가서 신분증 재발급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신분증 번호를 대자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저는 파룬궁의 어디가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파룬궁이 도대체 뭐가 틀렸단 말입니까?” 경찰은 고함쳤다. “꺼져!” 그리고는 발로 차서 그를 문밖으로 내쫓았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었기에 방을 구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그야말로 사방이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는 오직 막노동, 고된 일, 폐품 줍기, 재활용품 판매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밤에는 공원이나 다리 밑에서 노숙했다. 때로는 경찰에게 붙잡혀 차에 실려 교외로 내쳐지기도 했고, 때로는 이른바 ‘구조센터’로 보내져 구치소나 다를 바 없는 곳에서 물에 삶은 배추를 먹으며 자유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경찰과 보안원들에게 늘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닦이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가 경찰과 몇 번 실랑이를 벌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구류소로 끌려가 10일 동안 갇혔다. 사람들과 소통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탓에 말을 조합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다가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순조로워졌다.
그는 줄곧 동수를 만나지 못해 대법 책도 보지 못했고 연공도 할 수 없었다. 때로는 진상 소책자를 줍기도 했고, 때로는 구자진언(九字真言)을 뇌이며 잠들기도 했다. 동수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는 《전법륜》을 보고 싶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동수는 추석 전에 그를 다시 만나 생활고를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했고, 그 이후로 그곳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오늘날 내륙의 수많은 대소 도시에서 노숙자, 정신이상자, 팔다리가 잘린 구걸꾼, 거리 예술가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어쩌면 ‘조주의 경험’이 이미 각 지역의 법 집행자들에 의해 남몰래 ‘홍보’된 것은 아닐까?
‘칸중궈(看中國)’ 웹사이트에 실린 글 〈신적을 목격하고 겁난을 겪어도 후회하지 않다 – 예술가 류융劉永의 신앙의 길〉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친구가 아내를 데리고 류융을 찾아왔는데, 이 여성은 가슴이 곪아 썩어들어가며 병원에서 7~8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고 죽을 만큼 아파 한때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 류융에게서 진상을 듣게 된 후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고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마침내 완치되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정법위 ‘610사무실(파룬궁 탄압 전문 기구)’에서 근무했다고 직접 술회했다. 그녀는 민정 부서에서도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신이 있던 도시에서 체포된 유랑민들은 전부 그녀에게 와서 명단을 등록해야 했고, 그런 다음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냈는데 한 해 동안 그녀에게 보고된 이들만 485명에 달했다. 연말에 그녀가 수용소를 시찰하러 갔는데, 결과는 485명 전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윗사람들이 사람들을 끌고 가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팔아넘겼던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중공이 내세운 ‘빈곤 인구 소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관적인 추측을 하건대, 허 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승냥이와 독사로 중공의 악랄함을 형용하는 것조차 승냥이와 독사에겐 모욕이다. 그러한 ‘늑대와 춤을 추며’ 중공의 보증을 서고 아첨하며 찬송가를 부르는 자들도 붉은 마귀의 순장품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오직 ‘진·선·인(真·善·忍)’의 길을 선택해야만 신불(神佛)에게 구원받고 광명한 탄탄대로에 올라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