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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저금통에 담긴 큰 지혜

천명(天明)

【정견망】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예쁜 도자기 저금통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그 안에든 동전을 작은 구멍을 통해 거꾸로 쏟아내는 것이었다. 동전이 하나 나올 때마다 마치 경기에서 이긴 것마냥 성취감이 가득했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저금통을 이렇게 제멋대로 만들었을까, 돈을 꺼내기도 너무 불편하잖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심장한 ‘포만(撲滿)’이란 전통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견지(夷堅志)》에 이르기를, “포만이란 대나무로 구멍을 뚫어 돈을 모으는 도구로, 구멍으로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는 것은 없으며, 구멍이 차면 깨뜨린다”고 했다. 적어도 한나라 때부터 존재했던 이 기물은 돈을 저축하는 입구만 있고 돈을 꺼내는 출구는 없으니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이었다. 만약 그 안의 돈을 사용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것을 통째로 산산조각 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물리적 구조로 설계된 강제 저축 방식은 참으로 현명하여 돈을 쓰는 비용을 극대화했고, 그리하여 돈을 아끼는 목적을 달성했다. 생각해 보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사기 위해 누가 기꺼이 저금통을 함부로 깨뜨리려 하겠는가? 이렇게 하여 포만의 도움으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적지 않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보니 저금통 속의 동전은 더 이상 큰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지만, 그때 그토록 제멋대로 돈을 쓰는 것을 억제했던 행동들은 이미 마음속에 내화되어 절약하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옛사람들도 그렇지 않았던가? 어른들이 부모의 마음으로 거듭 당부하고 잔소리하는 것보다, 그것이 하나의 규칙과 습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낫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굳어지는 법이다.

장인어른이 옛날에 들려주셨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분들 동네에 아주 부유하면서도 무척 검소한 지주 집안이 있었다. 밥 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그 집은 두부를 먹을 때 두부를 아주 잘게 썰었다. 그래야 대가족이 밥을 먹을 때 몇 젓가락 만에 두부를 다 먹어치우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콩을 먹을 때는 더욱 흥미로웠는데, 잘 삶은 콩을 대나무 통에 부어놓았다. 무슨 의미일까? 이렇게 콩을 먹으면 한 번에 고작 몇 알밖에 집을 수 없었고, 더 많이 먹고 싶어도 아예 집을 수 없으니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애초에 집어 올릴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면 또 절약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 그냥 부어 먹으면 되지 않나요?” 내가 생각 없이 물었다.

“넌 정말 모르는구나. 그 시절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예법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 집안은 대를 이어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가업을 일구었다. 다만 공산당이 들어와서는 툭하면 착취했다고 우기며 그 집안을 털어갔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황당할 노릇이다!

예전 사람들은 정말로 검소하여 들어오는 것에 맞춰 나가는 것을 조절하고 꼼꼼히 셈을 하였지만, 손님을 대할 때는 또 아주 후했다.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는데, 어르신들께 여쭤보면 거의 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바로 이 때문에 저금통이 그렇게 설계되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저금통의 이러한 설계 때문에 중국인들의 이러한 저축을 사랑하는 습관이 은연중에 배양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 때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유명한 신하가 있었는데, 젊은 시절 집안이 아주 가난하여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분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추장천(鄒長倩)이라는 현자(賢者)가 자주 그를 후원했다. 나중에 한무제(漢武帝)가 널리 천하의 현재를 구하자, 예순 살의 공손홍이 천거를 받았다. 추장천은 공손홍을 위해 의복을 준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포만 하나를 선물로 주며 편지 한 통을 남겨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포만이라는 것은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돈을 모으는 도구인데, 들어가는 구멍은 있고 나오는 구멍은 없으며, 차면 깨뜨린다네. 흙은 거친 물건이고 돈은 무거운 재화일세.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않으며, 쌓이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기에 깨뜨리는 것이라네. 선비가 재물을 모으기만 하고 흩어 나누어 줄 줄 모른다면 훗날 포만이 깨지는 화를 입을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추장천의 이 진심 어린 충고는 공손홍에게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 공손홍은 나중에 열후(列侯)에 봉해졌음에도 여전히 검소함을 유지하여, 먹는 것은 거친 밥과 나물 찬뿐이었고 한 끼 식사에 겨우 반찬 한 가지뿐이었으며, 거친 베로 만든 이불 하나를 무려 십 년 동안 사용했다. 이치대로라면 이렇게 절약했으니 돈을 엄청나게 많이 모았어야 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손홍은 비록 삼공(三公)의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자신이 받은 녹봉을 모두 옛 친구들과 빈객들을 공양하는 데 써버려 남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는 추장천의 “선비가 재물을 모을 줄만 알고 흩어 베풀 줄 모르면 포만이 깨지는 화를 입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굳게 지켰으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다가 마침내 선시선종(善始善終·시작도 끝도 좋음)하였다.

한 평제(平帝) 원시(元始) 연간에 조정에서 공신열전(功臣列傳)을 편찬할 때 천자가 조서를 내려 공손홍을 칭송했다.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재상이 몸소 검약을 실천하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며 의를 중시함이 이토록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전 승상 평진후(平津侯) 공손홍과 같은 이가 아직 없었다.” (《사기》)

똑같은 저금통이라도 일반 백성들의 삶 속에서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저축이자 살림을 꾸려가는 도우미이다. 반면 관료의 눈에는 ‘차면 깨뜨린다’는 벼슬아치의 처세 도리가 된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한 가득 차면 오래갈 수 없고 성대함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쇠락한다는 천도(天道)의 법칙을 담고 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것이 만약 신(神)이 전하신 물건이 아니라면 어떻게 고대와 현대는 물론 하늘과 사람을 관통하며 세상에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