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2026년 10월 10일】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구체적인 문제가 오로지 당신들이 법 공부만 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다. 동시에 당신들은 이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은 대법제자이다. 일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에서 찾아야 하는데, 틀림없이 많은 문제가 당신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당신 자신을 되돌아보았든 되돌아보지 않았든, 당신이 생각했든 생각하지 못했든 말이다. 장래에 당신들이 진상을 보면 발견할 것인즉, 그 일체가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각지설법 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
현 단계의 층차에서 나는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자신을 잘 수련함과 동시에 수많은 생명이 구원받도록 성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니다. ‘실수(實修, 착실한 수련)’라는 이 두 글자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대법 수련이 제도하는 것은 우리의 주원신(主元神)이므로, 현실의 환경 속에서 오직 차근차근 실질적으로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집착과 일반인 중에서 형성된 관념은 진정한 자아(眞我)가 대법에 동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한 층 또 한 층의 사람 껍질을 끊임없이 깨부수고 계시지만, 사람의 마음, 사람의 생각, 사람의 정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본성의 한 면이 진정으로 법에 녹아들어 간 것은 얼마나 될까?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말씀하셨다.
“집착을 가지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 인식하여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진정한 자아를 깨워주셨고, 깨달은 저편은 모든 이른바 ‘번거로움’은 근본적인 집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근본적인 집착 위에서 끊임없이 뿌리를 캐내기 시작했다. 기점을 법에 두었기에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셨고, 동시에 지혜도 열렸으며, 사람 쪽에서 체현되는 것은 이성적이고 청성함이었다.
근본적인 집착의 뿌리는 미세 공간에 있어서 양파를 까듯 한 층 한 층 제거해 나가지만, 한 층을 제거하면 더 높은 층차의 물질이 드러나며, 이렇게 끊임없이 한 층 한 층의 사람 껍질을 제거해 나간다. 바로 어제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알고 보니 주변의 모든 것은 다 자신의 사람 마음(人心)이 불러온 것이었다.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이며, 대법제자 역시 한때 구우주의 생명이었기에 자신의 공간장에도 구우주의 변이된 요소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러한 변이되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은 정법(正法) 속에서 끊임없이 바로잡고 동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층층의 우주는 통하여 있으므로, 미시 공간 혹은 더 미시적인 공간에는 아직 법에 동화되지 않은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법 속에서 자신을 바르게 고쳐야만 비로소 지속해서 법에 동화될 수 있다.
도리는 알았지만 실제 수련에서는 타협을 적용하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만나면 불쾌해하고, 이른바 아름다운 소원을 동경하고 추구했는데, 이러한 적나라한 집착들이야말로 바로 근본적인 집착의 근원이었다. 뿌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건 없이 자신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모순 속에서 담담하게 대하지 못하고, 내적 소모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진정으로 법 속에서 깨달았을 때 하나의 큰 문이 열렸고, 진정한 자아를 막고 있던 물질이 법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근본적인 집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때 그것은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었고, 단지 수련 과정 중의 하나의 기록일 뿐이었다. 어떤 물질도 햇빛 아래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나는 근본적인 집착이 생겨난 원인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부족함과 모자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 처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교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남편이 일 처리 능력이 있어서 내가 신경 쓰지 않게 해주기를 상상했고, 남편이 도량이 넓고 남자다운 책임감이 있어서 내가 좀 편해지기를 상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정상적인 일 처리 능력은커녕 때로는 일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도량이 넓거나 책임감이 있는 것은 더더욱 사치였다. 이에 대해 나는 자주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고 참으로 무력하다고 느꼈다. 법 속에서 이러한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때로는 이 나쁜 생각을 억제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튀어나왔다. 이번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저를 한층 청성하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내 원인이었고, 내가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한 채 항상 밖을 향해 바라보았으며, 자신을 법 속에 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뿌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 표면적으로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며, 자신 근본의 문제를 찾아내야만 집착의 뿌리를 캐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남편에 대해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바로 내가 추구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지점이었는데, 나는 가상(假相) 속에서 다투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관념을 바꾸고 법 위에 섰을 때 눈앞의 풍경이 다른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이전의 불만족스럽고 눈에 가시 같던 현상들이 사라졌고, 더 큰 통찰력이 생겨 사람 속의 가상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속에 빠져들지 않게 되었다.
또 한 가지 현상은, 스스로 늘 고정된 모드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변화하려 하지 않는 점이었다. 사실 이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지만 관성적인 사고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의 고정된 틀 안에서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스스로 무감각해져 이 바르지 않은 상태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안배였는지, 아이의 사고 모드는 나와 정반대였다. 나의 부족한 점이 오히려 아이의 장점이었다. 때로는 관성적인 사고와 사람 속의 게으름 때문에 내 사람의 틀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의 생각은 나의 관성적 사고의 마지노선을 계속해서 깨뜨렸다. 처음에는 변화하기 싫어했지만, 어쨌든 내가 엄마라는 신분이고 아이 역시 대법제자이므로 아이를 잘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껴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상태가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며 수련의 요소가 담겨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때로는 원망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미혹(迷惑) 속에서 오직 대법만이 우리의 길을 가리켜주는 항로의 표지이다. 지속적인 법공부 속에서 사부님의 점화를 체험하고 깨달으니, 공간장의 바른 요소가 강화되고 부정적인 물질이 법에 의해 줄어들었다. 정념(正念)이 강해지자 깨달은 저편도 더욱 이성적이고 지혜로워졌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리며, 우리 온 가족을 보살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안배해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만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약간의 짧은 수련 체험이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동수분들께서 자비로이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