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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호탕, 대법의 신적을 증언하다

성혜 (成蕙)

【정견망】

존경하는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법과의 인연

나는 2018년에 법을 얻은 수련생이다. 알고 지낸 지 30년 된 언니 동수를 통해 법을 얻게 되었다. 언니는 나보다 여러 해 먼저 법을 얻어 일반 세상 속 나의 긴 생활 과정을 지켜보았다. 나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나를 깨우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언니에게 찾아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나는 애정 운이 순탄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 결혼 생활 중 전남편 가족의 꾀임에 빠져 보증을 섰던 빚까지 있었다.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채권으로 인해 은행은 장기간 다양한 경로로 나를 추심했고,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당시 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노력해 보려 했다. 은행의 막대한 부채는 감당할 수 없었지만, 전남편을 위해 친구들에게 빌린 돈은 반드시 갚아야 했다. 고연봉 직업을 위해 오랫동안 서서 일하며 유능한 판매원으로 일했다.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풍족한 실적을 올리며 세상의 불공평함을 잠시 잊었다. 동시에 회사의 칭송을 받으며 와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싸고 연산이 오래된 술을 마시며 오랫동안 알코올에 빠져 지냈다. 체면을 차리고 승부욕을 부리며 명예와 이익을 모두 탐했다. 머리카락은 누렇게 마르고 치아까지 흔들렸다. 그 여파로 무릎 관절염까지 생겼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관절 차오른 물을 한 관씩 뽑아내야 했다. 의사마저 이렇게 젊은 나이에 무릎 관절염이 온 것에 놀라워했다.

그러던 그해, 감정의 고비가 마치 산처럼 나를 막아섰고, 슬픔과 원망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너무 고통스러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언니에게 “나 같은 사람이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고 말했다. 언니 동수는 “살아있는 건 수련을 하기 위해서야!”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생명의 겹겹이 쌓인 안개를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나는 순간 멍해지며 울음을 그쳤다.

​법을 얻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했다. 처음 구일반(九天班)에 가서 2장공법을 배울 때 엄청난 에너지장을 느꼈다. 머리 위로 포륜을 할 때 스승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 주고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도원에게 “저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어떻게 에너지가 이렇게 강할 수 있죠?”라며 놀라워했다.

또 한번은 집에서 차를 마시려고 물을 끓이다가 오른쪽 손에 든 펄펄 끓는 물을 놓쳐 찻주전자를 잡고 있던 왼손에 부었다. ‘이젠 끝났다, 손을 다 데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펄펄 끓는 물이 마치 따뜻한 물처럼 왼손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방금 끓인 찻주전자를 다시 만져보니 펄펄 끓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 신기한 일을 언니 동수에게 이야기하고 나서야, 스승님의 법신이 나의 이번 난을 막아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나는 관절염 환자는 쪼그려 앉거나 가부좌를 틀면 안 되고 계단을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등 의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결가부좌를 틀었다. 10분에서 시작해 2시간으로 늘려갔다. 뼈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 속에서, 마치 부러진 뼈 사이로 땀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침내 두 다리는 두 줄기 강물이 합쳐져 흐르듯 느껴졌고 몸이 비할 데 없이 가벼워졌다. 누렇게 말랐던 머리칼은 검고 윤기 있게 바뀌었다. 하루는 입에서 벌레들이 한 마리씩 튀어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후 흔들리던 치아가 모두 좋아져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수련 속도가 빨랐다. 언니 동수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그대로 따랐다. 101빌딩에 가서 피켓을 들고 공법을 연마하는 것도 진상을 알리는 일이라고 해서 따라갔다. 홍콩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이 매우 귀한 기회라고 해서 그것도 따라갔다. 언니를 따라 법선(法船)을 보고, 션윈(神韻) 공연을 보고, 스승님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7·20 반박해 활동에 참여했다. 위챗(微信)으로 진상을 알리고 신원 예술품을 만드는 일도 함께했다. 무슨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기보다 언니 동수에게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빠르다 생각했다. 언니가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긴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그 후 2년 동안 언니가 병업(病業)을 겪을 때도 언니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2023년 3월 어느 날 아침, 법공부를 마치고 언니와 교류하려던 참이었다. 전화가 왔는데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언니가 아니었다. 언니의 친언니 동수가 전화를 걸어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사흘 뒤 영결식에 참가하기 직전 새벽, 언니가 화려하게 장식된 봉관(鳳冠) 모자를 쓰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젊어 보였고 마치 스무 살 같았다. 내가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이미 서른이 넘었을 때였으니, 그렇게 젊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언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명혜망과 명혜방송이 나의 가장 좋은 동수가 되다

언니 동수가 떠난 후, 때로는 다른 동수들과 교류해도 핵심적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명혜망(明慧網)에서 키워드를 검색해 글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법을 외우는(背法) 분야의 글들은, 모든 대법제자가 고비와 난관을 맞아 법 속에서 용련되어 나온 심득체험이자 수련 상태가 승화된 결과물이었다. 나 역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법리가 겹겹이 그 내함을 드러냈고, 문제에 부딪혀도 법에 비추어 보면 그 즉시 해체되었다. 그러나 법을 외우는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해 자주 끊기곤 했다.

그러다 명혜방송에 ‘坚持背法(법 외우기를 지속하다)’ 코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1회부터 듣기 시작해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었고, 다 들으면 다시 처음부터 들으며 법 외우기에 대한 의지를 더욱 다졌다. 또 다른 코너인 ‘忆师恩(스승님의 은혜를 회상하다)’을 통해서는 구수련생들의 입을 통해 대법이 널리 전파되던 시절 스승님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대법제자가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체감했다. 또한 스승님처럼 의복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으며 범사에 남을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법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 역시 홍법(洪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원망하는 마음의 뿌리를 제거하다

독신으로 10여 년을 지내며 전남편 가족과는 이미 연락을 완전히 끊었지만, 감당하지 않아야 할 빚에 대한 원망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전생의 어느 한 시기에 키우던 검은 개가 도로로 뛰어들어 내가 계속 쫓아갔다. 개는 계속 달아나더니 달리는 짐수레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오직 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급했던 나는 길가에 있던 유조차를 보고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유조차를 운전해 추격했다. 추격하던 중 유조차가 산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 광경은 순식간에 파손된 유조차와 화가 난 차주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전남편이 뛰어 나와 차주에게 “6만 원이든 7만 원이든 내가 배상하겠소”라고 말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깨달았다. 그 공간에서 6만, 7만이라는 돈으로 유조차 한 대를 배상할 정도라면 엄청난 금액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생에 그 사람 역시 나를 위해 감당하지 않아도 될 빚을 대신 갚아주었을지도 모른다. 스승님께서 인간 세상의 인연 관계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이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법률 관련 지식을 수집하며 빚 문제에 맞서기 시작했다.

​스승님께서 거액의 빚을 갚아주시다

이 사건으로 처음 법원에 갔을 때, 날카로운 태도의 여성 판사가 빚더미에 앉은 나를 심하게 꾸짖으며 나무랐다. 속으로 억울해서 빚을 진 사람이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업력이 거기에 있어서 그가 당신을 도와 제거하려 한 것인데, “(《전법륜》)는 법리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보충하라는 서류가 있으면 제때 적어 두었고, 여러 곳을 다니며 신청해야 하면 직접 발로 뛰었다. 작성할 줄 모르는 소장은 서식을 참조해 조목조목 직접 썼다. 협의부터 시작해 재생 절차에 이르기까지, 2년 동안 수없이 법정에 출두하며 내가 갚을 수 있는 금액으로 판결해 달라고 법원에 진심으로 요청했다.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어느 날, 여성 판사는 이제 더 이상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수년간 쌓인 부채에 이자가 더해져 1,200만 위안을 아주 살짝 넘겼기 때문에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아주 살짝’의 차이 덕분에 이후 수개월 동안 재판 절차에 변화가 생겼다. 마지막 출석에서는 여성 판사가 오히려 채권자를 상대로 나를 변호해주기까지 했다. 이후 내린 ‘면책 결정’과 ‘복권 결정’은 한동안 현실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무한한 자비로 나의 악연을 풀어주신 스승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정의 고비를 벗어나다

법을 얻기 전, 나는 깊은 연애를 한 적이 있었으나 헤어진 후 연락을 끊고 지냈다. 어느 날 대홍수가 밀려오기 직전의 꿈을 꾸었다. 나는 《전법륜》 책을 읽고 있었다. 대홍수가 밀려와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중한 책을 반드시 지키고 싶어 《전법륜》을 옷 속에 깊이 찔러 넣고 단단히 여민 후 그를 안았다. 하지만 대홍수의 힘은 너무나 거셌고, 엄청난 충격에 우리는 즉시 갈라졌다. 나 역시 곧 의식을 잃고 바다 위를 떠돌다 백사장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사전(史前) 어느 한 시기에 광범위하게 사람을 제도했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와 지난 문명 시기부터 인연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를 다시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신원 공연을 함께 보며 과거의 인연 관계를 선해(善解)했다.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다

어릴 적 나는 미술공예를 전공했으나, 결혼과 이후 삶의 변곡점을 겪으며 30년 동안 미술을 전혀 접하지 않았다. 심지어 세상에서 방황하던 수년간 장기간 음주를 일삼아 두뇌 회전도 예전만 못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나에게 이미 아득히 먼 일이었다. 무대에만 서면 덜덜 떨렸고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체력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법을 외우면서 기억력이 젊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머리가 명료해지고 논리가 정연해졌으며, 장문의 글도 써내어 문학, 예술, 편집 제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진상을 알리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삶에서의 길었던 시련들이 이제는 창작의 양분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수련 후 스승님께서 나의 지혜를 열어주신 덕분이다.

​세상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 법을 증거하다

나는 지금도 시장에서 일하지만, 일하는 날이 매우 적고 시간도 짧다. 손님이 많이 사려 하면 값을 조금 깎아주고, 식구가 적은 집이면 조금만 사라고 권한다. 나이가 많거나 짐이 많은 손님이 오면 별도의 가방을 가져와 깔끔하게 포장해 준다. 그렇다 보니 손님들이 나를 매우 신뢰하여 짧은 시간 안에 물건이 다 팔리곤 한다.

몇 년간 일하면서 회사에서 물품 대금을 잘못 계산해 돈을 더 준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나는 매번 빠짐없이 지적하고 돌려주었다. 사장님은 우리 파룽공(法輪功) 수련생을 특별히 신뢰하여 휴일에 휴가를 신청해도 흔쾌히 승낙해 준다. 한번은 대륙 출신의 여성 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만여 위안의 돈을 돌려주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죠? 역시 수련하는 사람은 다르네요!”라고 탄복했다. 그 여성 사장은 내 진상 설명을 듣고 삼퇴(三退)까지 했다.

인터넷 프로젝트에서의 수련과 고비 넘기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진상 영상 편집과 진상 자료 전송 작업을 하기 더 수월해졌다. 심성에서 안 좋은 물질을 조금씩 덜어낼 때마다, 많은 중국 민중이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았다. 스승님께서 이 장(場)을 다시 열어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태해질 때마다 이 계정들에 문제가 생기곤 했다.

​영상을 편집하고 수정하는 과정 역시 나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과 같았다. 0.1초와 0.2초의 미세한 차이가 매우 결정적이었다. 영상을 막 완성했을 때 동수의 지적이 들어오면, 그때가 바로 가장 빠르게 향상할 수 있는 때였다. 전체를 다시 제작해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나면 아주 작은 수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다. 매번 지적을 받는 순간이 곧 향상의 기회였다.

그러나 틱톡이나 위챗 같은 인터넷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 역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물들이기 통에 빠져 일반인의 영상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특히 ‘이 영상 하나만 더 보자’라는 생각이 수많은 시간을 앗아가곤 했다. 법공부를 할 때 ‘입으로만 읽고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방해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는 통제력을 잃은 채 중독에 끌려 내려갔고, 선천의 생명은 법을 얻지 못해 절망과 무력감에 빠졌다.

가장 심각했을 때는 갑자기 결가부좌가 불가능해졌다. 원래는 2~3시간씩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5장 공법을 연마할 때 다리가 다섯 여섯 번이나 미끄러져 내렸다. 천으로 다리를 단단히 묶어보기도 했지만, 묶은 끈을 풀면 십여 분 만에 다시 떨어져 내렸다. 다리가 떨어져 내린다고? 나는 순간 스승님의 점화를 깨달았다. ‘다리가 떨어지는 것(掉腿)’은 곧 ‘대열에서 낙오하는 것(掉隊)’이 아닌가! 나는 즉시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인터넷에 몰두하느라 머릿속이 온통 일반인 영상의 물질로 가득 차 잡념이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논어(論語)》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전법륜》의 모든 내용은 또 모두 《논어》에 포괄되어 있다.”(《미국서부법회설법》) 나는 암기를 바탕으로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쓸 때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몇 문장마다 오자, 누락, 탈자가 생겼고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줄은 몰랐다. 눈으로 보지 않고 암송만 하면 ‘입으로만 외우고 머리엔 남지 않는’ 상태가 되곤 했다. 그래서 한 단락을 쓸 때마다 원문과 대조하며, 글자 하나하나와 문장 부호까지 눈앞에 떠오를 때까지 정밀하게 써 내려갔다.

동시에 명혜망 발정념 통지의 세 편의 경문 《정념(正念)》, 《정념으로 흑수를 제거하다(正念除黑手)》, 《정념의 작용(正念的作用)》을 다시 복습하며 정념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읽다 보니 ‘내가 왜 매번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이렇게 좋은 법을 머릿속에 완전히 외워 두어 항상 자신을 경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법리가 겹겹이 나타났다. 구세력과 흑수가 정법 과정에서 얼마나 부정적인 작용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정념의 작용》을 외울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스승님께서 인간의 언어로 정법에 대해 설명해 주신 덕분에 이 복잡한 우주 구조 속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수련을 시작한 이래, 스승님께서 매 순간 나를 보살펴 주시고 모든 면에서 최선의 수련 환경을 만들어 주셨음을 느낀다. 물질적인 욕심은 매우 옅어져 때로는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욕망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늘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에너지가 차오르고 아무런 구함이 없는 상태에 있다.

지나온 길을 배려하고 이끌어 주신 스승님께 감사드리며, 프로젝트 속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동수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함께 정진하여 스승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여 스승님을 따라 천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