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德惠)
【정견망】
당나라 때 오흥(吳興) 사람 심영(沈瑩)은 평소 도(道)를 깊이 믿어 상시 태상노군(太上老君)을 정성껏 모셨으며, 그들 가족은 월주(越州) 섬현(剡縣) 현청 관내의 저택에 살고 있었다(옛 섬현은 오늘날의 저장성 성저우 시와 신창현 일대). 당나라 중·후기 조정의 부패와 과중한 세금 등으로 인해, 당 대중(大中) 13년(서기 859년) 구보(裘甫)가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반란군은 섬현을 점령했고, 이어 섬현은 조정이 주변 각지에서 끌어모은 토벌 대군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현의 주민들은 놀라 도망치며 시골로 피난을 떠났는데, 심영의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서둘러 대문을 잠그고 온 가족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다.
시골에 도착해 겨우 머물 곳을 찾은 뒤에야 인원을 점검해 보니, 한 어린 가동(어린 하인)이 그만 집에 남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성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아이를 데려오려 했으나, 이미 조정의 대군이 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군사들이 엄숙하게 경계를 서며 살기가 등등했기에 감히 접근할 수 없었고, 그저 탄식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양측의 전쟁은 승패를 거듭하여, 반란군은 치열하게 방어하거나 돌파를 시도했고 토벌군은 성을 둘러싼 채 맹공을 퍼부어 전선이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거리와 시장은 대부분 잿더미가 되었다.
열 달 동안의 고전 끝에 반란군은 섬멸되었고 섬현은 조정에 의해 수복되었다. 주민들이 하나둘 성으로 돌아왔는데, 심영이 살던 6~7칸짜리 집은 놀랍게도 너무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울타리와 담장, 뜰조차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다.
심영은 집에 남겨두고 온 어린 가동이 생각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린 가동은 아무 탈 없이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살이 빠지지도 않았고 옷 역시 열 달 전에 입었던 그 옷 그대로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가 살아있는 사람임을 확인한 심영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신기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날 주인께서 대문을 잠근 뒤, 푸른 옷을 입은 선동(仙童)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선동은 열세네 살쯤 되어 보였는데, 태상노군의 명을 받고 내려와 저와 함께 놀아주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울려 놀다 보니 어느새 저를 어느 큰 저택으로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과일과 먹을거리가 가득했습니다. 그곳에서 배불리 먹고 선동과 함께 놀이를 즐겼습니다. 한 반나절쯤 지났을 때, 태상노군께서 향을 올리라고 분부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막 향을 피워 향로에 꽂자마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는데, 바로 주인이 돌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심영이 깜짝 놀라 신위(供桌) 앞으로 달려가 보니, 태상노군 상 앞의 향로에는 정말로 향이 꽂혀 있었고 향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에 심영이 전쟁과 전투, 주변에서 일어난 불길과 무서운 일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아이는 전혀 알지 못했고 대군이 싸우는 소리조차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심영은 깨달았다. ‘열 달 동안의 잔혹한 전투 속에서 나의 집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고 이웃들의 집은 대부분 불타 잿더미가 되었는데, 어린 하인은 도리어 이토록 신기한 경험을 했으니, 이는 오직 대성인(大聖人)의 신통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때부터 더욱 경건하게 도를 믿으며 산에 들어가 수행할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어느 날, 그 어린 가동을 데리고 함께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았다.
이 기록은 신령이 신을 믿는 이를 보호해 준 신기한 경험을 담고 있다. 어린 가동은 사실 선동에 의해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던 것이며, 그곳의 시간은 인간 세상과 달라 인간 세상보다 훨씬 천천히 흘러갔다. 그곳에서의 반나절이 인간 세상의 열 달에 해당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 사이의 시간 차이는 이처럼 매우 크다. 당신이 더없이 길고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시간도, 신의 눈에는 그저 손가락을 한번 튕기는 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 세상의 수행자는 결코 시간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전: 《도교영험기(道教靈驗記) 제7권 – 심영사노군험(沈瑩事老君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