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 (清泉)
【정견망】
호양공주는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큰누나인 유황(劉黃)으로, 유수보다 열 살이 더 많았다. 유수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은 어머니와 큰누나의 근고한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 때문에 남매의 정은 매우 깊었다. 유수가 황제가 된 후, 유황을 호양공주로 봉했다.
동한(東漢) 초기에 호양공주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유수는 누나를 다시 시집보내고 싶어 여러 대신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대사공(大司空) 송홍(宋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호양공주는
“송공은 인물이 출중하고 풍채가 의젓하며 품덕이 고상하고 기도가 남다르니, 다른 대신들이 어찌 감히 비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어느 날 유수는 송홍을 불러 공주를 병풍 뒤에 앉히고는,
“속세의 격언에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아버지가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겠는가?“
라며 떠보았다. 그러자 송홍은 “신은 일찍이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고, 조강지처는 마루 아래로 내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라며 의연하게 대답했다. 일이 끝난 후 유수는 누나에게 “이 일은 어렵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십여 년 후 동한의 정국은 대략 안정을 찾았다. 호양공주는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교만하고 방자해져 대신들을 안하무인으로 대했다. 그녀의 수하에 있던 노복이 사람을 죽이고는 공주부(公主府)에 숨어서 주인의 비호를 믿고 나오지 않았다. 당시의 낙양령(洛陽令) 동선(董宣)은 매우 기개가 센 인물이었는데, 그 죄인이 호양공주를 수행해 외출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길목에서 부하들에게 칼을 들고 이들을 에워싸게 한 뒤, 공주의 과실을 큰소리로 꾸짖고 즉시 죄인을 처형하라고 명했다. 공주는 크게 화를 내며 유수에게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네가 어찌 황제인데 이토록 무능하냐? 예전에 우리 집이 도망자들을 숨겨주어도 지방관들은 감히 우리를 어쩌지 못했는데!”
유수는 크게 진노하여 당상에서 동선을 매질해 죽이려 했다. 동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의젓하게 말했다.
“원하옵건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죽게 해주십시오.”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대왕께서 영무(英武)와 신명(神明)으로 한실(漢室)을 중흥시키셨으면서, 도리어 노복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묵인하신다면 어찌 천하를 다스리겠습니까!”
말을 마치고는 머리로 기둥을 들이받아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유수는 동선에게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라고 명했으나 동선은 끝내 거부했다. 이에 환관 둘을 시켜 강제로 무릎을 꿇리려 했으나, 동선은 두 손으로 땅을 버티고 끝내 절을 하지 않았다. 유수도 어쩔 수 없이 이를 거두고, 동선을 ‘강항령(強項令·목이 뻣뻣한 현령)’으로 봉하며 돈 삼십만전을 하사했다.
후에 공주는 송홍의 거절로 인해 마음이 식어 도(道)에 뜻을 두고 도문에 귀의하였으며, 봉지(封地) 서북쪽의 방성(方城) 경내에 있는 ‘연진궁(煉真宫)’으로 들어가 경전을 읽고 참됨을 닦았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이 공주와 내가 무슨 인연이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법공부(學法) 모임에서 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순수하여 글을 읽는 이가 분명 ‘옥처럼 온화한 겸겸군자(謙謙君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후 몇 가지 인연으로 그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내 마음속에 문득 ‘이 사람과 나와는 어떤 인연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자 머릿속에 두 이름이 떠올랐다. ‘호양공주’와 ‘송홍’이었다.
사실 나는 전생에 오만방자했던 인도 공주였던 적도 있음을 본 적이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풍류인물 오늘날 어디 있더냐
대법이 연단(蓮壇)을 여니 잇달아 오는구나
유유한 세월 천백년 지났거니
정과에 맺은 인연 뭇연꽃으로 피는구나”
<홍음2> -맺은 인연 연꽃으로 피네
그렇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할을 거쳐왔으며, 우리가 해온 모든 일은 인류에게 진정한 사람의 도덕기준과 정통 문화를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단지 나는 부정적인 역할을 연기했을 뿐이며, 그 역할로써 광무제 군신의 풍모를 성취시켜 주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송홍이 조강지처와 ‘손을 잡고 검버섯이 피도록 함께 늙어가겠다’는 그 굳은 충절을 보게 하고, 동선이 정의를 고수하며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았던 굳건함을 목격하게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