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죽(清竹)
【정견망 2026년 10월 18일】
옛날의 수많은 음악 이야기는 항상 나에게 신비로움을 주었고, 심지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본래 매우 어려운 일인데다, 특히 동서양의 전통 음악은 리듬의 빠르고 느림, 곡조의 슬픔과 기쁨 정도를 알아듣는 것 외에 그 이상의 깊은 문도(門道)를 알아채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해, 컴퓨터 앞에서 신운(神韻) 공연을 관람할 때였다. 막이 오르고 음악이 울려 퍼지자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고, 마치 몸속의 모든 세포가 음악에 맞춰 함께 진동하는 듯했다. 이 기묘한 느낌을 통해 나는 음악이라는 예술 형식이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와 참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 경험을 하고 난 뒤 옛 음악 이야기들을 다시 보니 새로운 체감이 생겨났다.
우리가 잘 아는 대성인 공자(孔子)를 현대인은 흔히 교육가, 사상가, 철학자로 부르며 그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공자의 음악적 재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공자는 거문고와 비파(琴瑟) 연주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작곡도 할 줄 알았으며, 매우 전설적인 음악 학습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공자는 일찍이 사양자(師襄子)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다. 한번은 공자가 한 곡을 열흘 동안 진지하게 익혔고, 사양자는 공자가 이미 매우 숙련되게 연주한다고 생각해 그만하면 됐다고 했다. 그러나 공자는 스스로 연주 기교와 법칙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사양자가 다시 와서 보니, 이전보다 공자의 곡에 대한 이해가 크게 발전해 있었다. 사양자가 “이제 완전히 파악했구료” 하고 말했지만, 공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으며 “저는 아직 이 곡에 담긴 뜻과 취향(志趣)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며칠이 더 지나 공자는 마침내 그 곡의 뜻을 깨달았지만, 사양자에게 “저는 아직 작곡가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의 모습까지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사양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자는 계속해서 그 곡을 배우고 느끼며 체득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자는 마침내 그 곡의 작곡가를 보게 되었다. 공자가 사양자에게 말했다.
“저는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피부는 검고 체구는 웅장하며, 눈빛은 깊고 멀리 바라보며 천하에 왕 노릇 할 기개가 있으니, 이 사람이 주문왕(周文王)이 아니라면 누구이겠습니까?”
사양자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듣다가 돗자리에서 일어나 공자 앞으로 다가가 점잖게 절을 거듭하며 말했했다.
“내 스승님께서 이 곡의 이름이 바로 《문왕조(文王操)》라고 하셨습니다.”
공자는 단순히 음악의 기법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곡조의 사상과 감정을 느끼는 데 더욱 집중했으며, 끊임없는 배움 속에서 작곡가의 외모까지 보아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초능력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공자뿐만이 아니었다. 오나라의 현인 기찰(季札) 역시 음악을 깊이 알아듣는 ‘지음’에 능한 사람이었다. 기찰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주나라의 예악(禮樂)을 감상하기를 청했다. 그는 곡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각국의 국풍(國風)을 구별하여 백성들의 상태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성현의 덕행과 정치의 잘못과 잘함을 느껴 심지어 국가의 미래 향방까지 판단해 냈다.
《시경·치풍(齊風)》을 연주할 때 기찰은 감탄했다.
“참으로 아름답도다! 실로 대국의 기세요 동해의 모범이니, 이는 아마 강태공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 나라의 앞날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밝구나.”
《당풍(唐風)》을 연주할 때는 “생각이 어찌 이리 깊고 아득한가! 이들은 아마 당요(唐堯)의 후손이겠지?“라고 찬탄했다.
《대아(大雅)》를 연주할 때는 “광대하도다! 곡조가 이토록 조화롭고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강하니, 아마 문왕의 절개가 아니겠는가? 주나라의 태평성대가 바로 이러했도다!“라며 탄복했다.
《빈풍(豳風)》을 다 듣고 나서 기찰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음절이 박대하고 호탕하여 백성들의 기쁨을 대변하되 방종하지 않으니, 이는 주공(周公)이 동정(東征)할 때의 악장이겠구나!”라고 평가했다.
《정풍(鄭風)》을 다 들은 뒤에는 “곡조가 너무 번쇄하구나. 마치 정령이 가혹하고 까다로워 백성이 견딜 수 없는 듯하니, 이 나라는 아마 가장 먼저 망할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기찰이 어디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겠는가? 줄거리 소개가 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와 음표의 배열 조합이 아니라, 작곡가의 사상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그들의 상태, 인생 경험, 창작 의도가 세세하게 곡조 속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것이 선뜻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례는 사실 이외에도 많다. 한번은 위영공(衛靈公)이 진나라로 가던 중 밤에 복수(濮水)가에 있는 객사에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아름다운 곡조의 음악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행원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위영공은 악사 시견(師涓)을 불러 자신이 들은 곡조를 악보로 적게 했다.
진나라에 도착한 후 위영공은 시견에게 이 곡을 진평공(晉平公)에게 연주해 주라고 했다. 연주가 다 끝나기도 전에 악성 시광(師曠)이 즉시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것은 망국의 소리입니다! 은나라의 악사 시연(師延)이 주왕(紂王)을 위해 만든 퇴폐적이고 난잡한 음악(靡靡之樂)으로, 후에 무왕이 주왕을 치자 시연이 복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으니, 이 곡은 틀림없이 복수가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악성 시광의 말은 모든 사람, 특히 위영공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이 현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많은 정보를 들어낸 것일까? 《예기(禮樂)》에 이르길, “그러므로 소리(聲)만 알고 음(音)을 알지 못하는 것은 금수(禽獸)요, 음(音)은 알되 악(樂)을 알지 못하는 것은 서민(衆庶)이다. 오직 군자라야 능히 악(樂)을 안다. 그러므로 소리를 심찰하여 음을 알고, 음을 심찰하여 악을 알고, 악을 심찰하여 정치를 알면 치국의 도가 갖추어진다“라고 했다. 공자는 오직 군자만이 음악 속의 내포(內涵)을 진정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보았다.
참으로 그러하다. 성인 공자 외에도 기찰과 시광은 모두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현인 군자들로, 보통 사람이 미치기 힘든 정신적 경지와 도덕적 수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곡조에 담긴 수많은 정보를 가려낸 것은 일반적인 음악 이론 지식의 범주를 넘어선 것으로, 오직 영성과 정신적 수련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그러한 정신적 경지 속에서는 보고 듣는 사물이 완전히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은 사람에게 밝음과 힘을 가져다주고, 은연중에 사람의 사상 경지를 끌어올리며 행위를 바르게 바로잡아 준다. 반면 퇴폐적인 음악 역시 그것이 가진 음적인 에너지(負面能量)를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헤비메탈의 소음에 빠져들어 격렬한 리듬에 맞춰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댈 때는 자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신을 해치게 된다. 만약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음악을 듣기 좋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 도덕이 하락하는 표상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회는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훗날 나는 션윈 웹사이트에서 《전통문화와 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전통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매우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다 보고 나니 마치 단이슬을 맞은 듯 머리가 맑아지며 나를 무한히 넓은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좋은 음악이란 단순히 기술과 기법의 뛰어남뿐만 아니라 작곡가와 연주자 자신의 도덕적 수양이 더해져야 하며, 이러한 음악이야말로 순선(純善)하고 순미(純美)한 에너지를 담아 관객을 진정으로 감동시키는 비결이다. 어쩌면 이것이 신운의 음악이 ‘서민(衆庶)’에 불과한 나를 이토록 감동시킨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