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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나에게 여권을 발급해 주다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2025년, 사부님께서 점화(點化)하시어 나를 해외로 오게 하셨다. 그러나 당시 내 손에는 여권이 없었다. 내 여권은 일찍이 경찰에 의해 파기되었고, 내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여권 재발급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이 없다면 오직 윈난을 거쳐 태국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미얀마 북부 범죄 구역과 매우 가까워져 위험을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생사와 미지의 길을 마주하고, 나는 반드시 선택을 내려야 함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사악이 중점 감시하는 대상이라 민감한 날에는 집을 나서면 늘 사내 두 명이 따라붙어 24시간 교대로 감시했고, 단지 내 몇 걸음마다 CCTV가 있었다. 내가 망설이고 방황할 때 두 가지 꿈을 꾸었다.

첫 번째 꿈: 나는 한 공터에 있었는데 사방이 적외선으로 막혀 있어 내가 넘어가기만 하면 적외선 경보가 울릴 것 같았다. 내가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았으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적외선은 단지 허세일 뿐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감시가 비록 있더라도 그것은 허세일 뿐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점화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두 번째 꿈: 나는 큰 강 한쪽에 서 있었고, 강 건너편에는 많은 사악한 짐승이 있었으며, 강 속에는 악어와 공룡 같은 것도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계속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았으나 어떤 배는 뒤집히고 어떤 사람은 물고기 배 속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배는 여전히 끊임없이 떠났고 앞 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뒤를 이었다. 이때 한 의념(意念)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것이 마지막 배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는 떠날 기회가 없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렇다면 떠나자고 생각했다. 배에 타보니 이것은 오직 두 사람만 탈 수 있는 작은 목선이었고 내 옆에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우리는 물길을 따라 내려갔고,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내가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한 여성이 다가와 웃으며 나에게 “깨어났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것이 마지막 배이며 지금 떠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나에게 경고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제8강에서 부원신(副元神)의 사부가 부원신에게 행각을 하라고 하자, 그 부원신이 아무런 의심이나 망설임 없이 행각을 떠났다고 말씀하신 대목이 생각났다. 나는 매우 감개무량했다. 부원신도 사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 수 있는데, 나는 주원신(主元神) 수련이면서 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지 못하는가? 하물며 수련에 우연한 일이란 없으며, 내가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마주치게 하지 않으실 것이고, 내가 마주쳐야 할 것은 내가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어디든 감시망이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여쭈었다. “사부님, 제가 어떻게 가야 합니까? 버스를 타야 합니까, 지하철을 타야 합니까? 아니면 자전거? 전동 스쿠터? 오토바이입니까?”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한 의념이 스쳐 지나갔다. “타이링(台鈴) 브랜드 전동 스쿠터를 사라.” 처음에는 이것이 자신이 자심생마(自心生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날 밤 나는 사부님께서 “왜 아직도 행동하지 않느냐? 지금 떠나지 않으면 늦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아주 순조롭게 전동 스쿠터 한 대를 샀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단지 내 차고에 숨겨두고 집을 떠날 기회를 기다렸다.

어느 옻칠같이 어두운 밤, 나는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고 오직 몸에 지닐 약간의 옷가지와 나침반 하나만 챙겼다(나는 길치라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동 스쿠터를 타고 20여 년을 살아온 집을 떠났다. 나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고 오직 남쪽으로 가 윈난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태국으로 들어가려고만 생각했다. 내가 집에서 나오는 그 순간, 나는 내가 내 목숨을 정말로 완벽하게 사부님께 맡겼다고 느꼈으며 설령 마주하는 것이 죽음일지라도 아무런 원망이나 후회가 없었다. 당시 나는 오직 단순한 일념뿐이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면 내가 하고, 사부님이 나더러 중국을 떠나라 하시면 나는 떠나며, 나머지는 내가 걱정할 할 바가 아니다.

나는 방향을 구분하지 못해 길을 물을 때도 오직 “실례지만 어디가 남쪽입니까?”라고만 물었다. 한번은 큰 강을 만나 우회해야 했다. 전동 스쿠터를 타고 가는데 아무리 타도 끝이 나지 않는 것 같아 당시 마음속으로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이것이 경항(京杭) 대운하는 아니겠지? 끝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약 1시간 남짓 탔을 때 마침내 강 끝에 다다랐다.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달렸다.

한번은 저장의 한 큰 산에 들어갔는데, 사실 많은 산이 이어져 있었고 이 큰 산들 사이에 부락들이 흩어져 있어 주민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부락들을 지나갈 때 머무르지 않고 빨리 이 큰 산들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탔으나 벗어나지 못했고, 매우 배가 고팠으며 전동 스쿠터도 마지막 전기가 한 칸만 남았다고 경보를 울렸다. 왼쪽을 보니 절벽이었고 오른쪽을 보니 낭떠러지였으며 눈앞에는 오직 산길 하나만 있어 어디로 통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또 다른 부락을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방금 지나온 부락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보니 아직 거리가 남았으나 내 전동 스쿠터는 거기까지 견딜 수 없었다. 길에 사람도 한 명 없어 혹시 들짐승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무서웠고, 그때 정말로 자신이 절경(絕境)에 빠졌다고 느꼈다. 이때 내 마음속에서 강렬한 일념이 나왔다.

“사부님, 제자가 이곳에서 어려움을 만났으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막 이렇게 생각하고 아마 1분 혹은 1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발밑의 길이가 갑자기 꺾이더니 눈앞의 땅이 갑자기 넓어졌다. 알고 보니 한 마을이 있었으며 참으로 “산이 겹겹이고 물이 굽이쳐 길이 없는가 했더니, 버드나무 어우러지고 꽃 밝은 곳에 또 한 마을이 나타났구나(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 한 주민에게 “전동 스쿠터 충전을 좀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내가 실망하고 있을 때 그의 맞은편 이웃인 40~50대 여성이 나를 거두어 주어 밥을 차려주고 그녀 집 창고에서 하룻밤을 자게 해주었다. 사실 길에서 먹을 수 있었던 매 한 끼 밥마다 나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그녀는 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산속의 야경은 매우 아름다워 마치 무릉도원 같았고 돌아오는 길에 붉은 달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많은 진상을 이야기해 주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종이에 적어달라고 했고 매일 반드시 아홉 번씩 외우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어느 한밤중, 나는 한 호텔 로비에서 경찰에게 잡혔다. 나는 로비의 CCTV가 나를 찍었을 것이라 추측했고 다시 감옥에 투옥되거나 계속 감시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그들은 나를 안전하게 나를 집으로 보내주었고, 경찰을 배정해 나와 함께 가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게 하여 내가 중국을 떠나도록 해주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로 보면 현지 경찰이 나를 감시할 수 없고 내가 언제든 도망쳐 그들의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지만, 배후의 원인은 사부님께서 나를 중국에서 떠나게 하신 것이며 이것은 신의 뜻이었다.

중국을 떠나려 할 때 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휴대전화 케이스를 하나 샀다. 당시 나는 한 번 보고 디자인이 괜찮다고 느껴 샀다. 그러나 내가 이 휴대전화 케이스를 받았을 때 비로소 그 위에 시 한 구절이 적혀 있음을 보았는데, 바로 “가벼운 배는 이미 겹겹의 산을 지났네(輕舟已過萬重山)”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그 순간 내 기분 역시 시인 이백의 기분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 역시 가벼운 배처럼 겹겹의 산을 지나고 겹겹의 어려움을 통과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마침내 중국을 탈출하여 H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비행기가 이미 만 미터 고공으로 날아올랐음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내가 세관을 나와 햇빛 아래로 걸어 나오고 바다바람이 내 얼굴로 불어왔을 때 비로소 나는 진실로 느꼈다. 이것은 꿈이 아니며, 나는 마침내 중국을 떠났고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예전에 나는 중국을 탈출하는 많은 방식을 구상해보았으나 뜻밖에 오늘날 이러한 방식으로 중국을 탈출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이미 길을 나에게 배정해 놓으셨고, 오직 내가 용기를 내어 걸어나올 수 있는지 보신 것이었다.

내가 H국에 온 후 여관에 머물며 어떻게 동수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마침내 중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곳에 반드시 대법제자가 진상을 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 나는 한 면세점으로 갔다. 내가 비교적 일찍 왔기 때문에 동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길 맞은편 작은 가게에 앉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멀리 길가에서 노란색이 나타났다. 내가 눈을 정글혀 바라보니 연공복을 입은 동수였다. 중국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혼자 단독 수련을 했기에, 그 순간 눈물이 왈칵하며 두 눈을 가렸다. 나는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까 두려워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당시 여러 동수가 면세점 맞은편에서 전시판을 펼치고 있었고, 내가 대법제자라고 말하자 한 동수가 친근하게 다가와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나는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H국에서 나는 동수들과 매일 아침 3시 50분에 공원에 가서 연공을 하고, 돌아와 법을 한 강씩 공부하며, 오후에는 관광지에 가서 진상을 전하고, 밤에는 각지 설법을 공부했다. 그 시간은 정말 피곤하면서도 알찼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마치 사찰 속의 어린 승려처럼 주지 스님의 인도 아래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 같았다.

해외로 오게 된 이 과정은 보기에 기이한 것 같지만 자신이 실제로 겪은 진실한 경험이다. 오직 내가 여전히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한 생각이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주신 것이다. 나는 그다지 정진하지도 못했고 다른 제자들처럼 잘하지도 못했으며 아직도 매우 많은 단점과 부족함이 있어 때로는 내가 정말로 그렇게 큰 사명이 있는가, 정말로 그렇게 큰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제자를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며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 더욱 우리 자신을 소중히 의기신다. 아마도 사부님께서는 내가 속인 속에 너무 깊이 미혹되어 있고 너무 우둔하다고 보시어 일일이 점화해주시고 손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것일 게다. 내가 망설이고 방황할 때면 심지어 나에게 답과 일의 결과를 알려주기까지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에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마음 하나만을 요구하신다. 글자로는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거대한 은혜를 다 적을 수 없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걸어오는 길에 사심없이 나를 도움을 준 동수들에게 감사드린느데,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