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우(山雨)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오행 중에 있지 않고 삼계 밖으로 벗어나다〉라는 문제를 말씀하시면서 ‘중성자’를 언급하셨다.
“이렇게 강대한 중성자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사람이 어찌 이처럼 강대한 중성자를 내보낼 수 있는가? 이 역시 우리 기공사는 공(功)이 존재하며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점은 과학기술계에서 실증되었다.”
물질과 우주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인식이 비록 아주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주에 중성자별이란 아주 흥미로운 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성자별이란 크기는 중급 도시(지름 약 20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질량이 태양보다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이유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물 분자 밀도의 100조 배에 달하는 원자핵의 밀도와 유사한 방식으로 배열된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밀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데 가령 모래알 크기의 질량이 수백 톤에 달한다. 이는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금고봉(金箍棒 여의봉)보다 수백 배나 더 무거운 것이다.
만약 이 물질을 우리 공간으로 가져와 칼로 만들고 이것으로 지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을 자른다면 마치 일반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자를 수 있다. 중국 고대에 “쇠를 진흙처럼 자를 수 있는” 보도(寶刀)가 있었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중성자 별의 존재는 현대 과학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별의 물질보다 수조 배 이상 미세하고 섬세하며 중성자 배열 밀도가 극히 큰 물질이 우리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은 서로 다른 화학 원소에 대응한다. 이러한 화학 원소들은 각기 다른 분자를 구성하는데 즉 우리 공간의 만물(萬物)을 구성한다. 각기 다른 화학 원소가 생기는 이유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배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성자는 양전하를 띠고 전자는 음전하를 띠며 중성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특정 조건에서 중성자는 양성자와 전자로 변환될 수 있으며, 반대로 양성자와 전자 역시 중성자로 변환될 수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양전하를 띠고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어 핵 주위를 매우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전하의 관점에서 보면 원자에서부터 분자, 또는 ‘금목수화토’로 구성된 만물은 모두 불안정한 전하 운동 중에 있다. 만약 음전하를 띤 전자를 이 층차에서 ‘음(陰)’이라 하고 양전하를 띤 양성자를 ‘양(陽)’이라 한다면, 안정적인 중성자는 음양의 평형을 이루는 보다 고층의 물질로 볼 수 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중성자란 단일 물질이 두 개의 다른 물질(양성자와 전자)로 나뉘어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물질과 함께 이 공간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을 구성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을 낳고 태극이 양의(兩儀 음양)를 낳는다”는 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음양의 상호 작용으로 만사만물을 생성하며, 이 한 층차에서 그 어떤 물질이든 모두 음양의 평형에 도달할 순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미시적인 구성에서 늘 양성자와 전자가 존재하고 상호작용하는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가지 방법을 통해 한 물체(또는 인체)의 모든 양성자와 전자가 중성자로 합성된다면 이 층차에서 발생하는 음양의 모든 상호 배척과 인력이 존재하지 않아 음양 평형에 도달하고 물질의 배열이 중성자처럼 치밀하고 섬세함에 도달해 에너지 밀도가 수 조 배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중성자로 배열된 물질은 단지 밀도와 에너지만 거대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양성자와 전자 간의 상호 작용이 없다. 때문에 “금목수화토” 오행 중 그 어떤 하나도 아니다. 동시에 중성자로 배열된 이 물질의 안정성이 대단히 크게 증가할 것이다.
만약 중성자별에도 생명체가 존재해서 그들이 지구상에서 분자로 구성된 물질(사람을 포함)을 본다면 마치 구름이나 안개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허무해서 가물가물하게 느껴질 것이다.
고인(古人)의 지혜는 아마 우리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것이 아닐지 모른다. 송조(宋朝)의 소동파는 인간 세상의 모든 득실을 지나가는 구름과 연기에 비유했는데, 이렇게 보면 아주 적절하게 보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