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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學術)의 면사포

글 / 백지(百志)

【정견망】며칠 전에 친구가 보낸 전자메일 중에 “유교(儒敎)는 제왕(帝王)이 사대부를 통치하는 학문”이라는 구절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학술은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철학이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는 서양 학술의 길을 닦았다. 명백히 말하자면 이런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역주: 철학의 어원인 Philosopia를 해석한 것)”의 출발점은, 우주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진리를 탐색하고 조물주의 심오한 비밀[奧秘]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탐색(探索)하고, 추리하고, 귀납하고, 변증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연산(演算)하고, 실험을 하던지 상관없이 사람들은 학술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작은 범위의 진리에 대해 제한된 인식 하에서 내린 부분적인 결론”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식의 단편(斷片)”들을 종합하는 것은 진리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난 것인가? 석가모니부처는 일찍이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예를 든 적이 있는데 참으로 적절한 비유이다.

비록 인류가 우주[太空]시대에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이른바 우주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이 개념 안에서 인류가 현재 인식할 수 있는 범위와 진실(眞實) 및 우리가 장악한 것은 여전히 상당한 한계가 있다. 인류는 여전히 진정한 우주에 대해 그 억만분의 일조차도 상상할 방법이 없다. 인류는 정말로 까마득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미미한 학술을 가지고 궁극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일생을 보내는 재능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인류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일평생을 연구한다해도 진리대도(眞理大道)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일생동안 과학연구를 통해 그 데이터로 우주진리를 증명하려고 해도 여전히 너무나 부족하다.

인류가 지식을 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만약 우주의 진리가 사람들의 앞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인류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헛수고요 영원히 진리를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노력하고, 연구하고, 발전하고, 한 세트의 학설을 건립하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줄곧하여,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지식체계로 변성(變成)된다. 이때에 학술은 스스로 일종의 “존재(存在)”가 되는데, 사람들이 연구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또한 하나의 역사를 뛰어넘는 “사상체계[思想聚合體]”가 되어 일종의 방대한 마당[場]이 되는바 이것이 도리어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게 된다.

진실한 사물은 간단하지만 그러나 학술은 점점 더 방대하고 큰 물건이 되고 겹겹의 엉킨 매듭이 되어 사람 사상중의 매듭으로 형성되는데 하나하나 진지(眞知)한 관점을 국한시킨다.

이외에도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시대에는 서로 다른 지식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디안은 무슨 학문이 없었지만 의연히 대대(代代)로 연속해왔으며, 대만 원주민은 문자가 없었지만 구두로 전하여 문화를 전승하고 있다. 허다한 민족에서 그런 학술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독특한 민족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의 일방(一方)에서 우뚝 서있다.

인류가 만들어낸 이런 한 세트의 지식체계는 단지 학술체계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람의 진리에 대한 판단을 지배하게되었다. 학술에는 또한 세력범위가 있어서 큰 것이 작은 것을 집어삼키기도 하는데……현재는 지구촌화가 진행되면서 인류의 지식계통도 대부분 실증과학의 침범을 받게되었다. 각 민족의 신화, 전설, 문명지식 등등은 거의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대 서양을 말하면 반드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언급하게되고 중국을 말하면 항상 공자와 맹자를 언급하게된다.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 문제를 보는 방식은 종종 그 시대의 학술이라는 서로 다른 다양한 프리즘을 통과하여 보게된다. 이런 프리즘은 모두 여러 층으로 구성된 두꺼운 것들인데 그 가장 표면 층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자는 과학을 이용하여 보고, 문학가는 문학으로 표현하고, 역사가는 역사적인 각도에서 비판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이런 학술의 토착화[本土化]라는 흙에 한번 두 번 파묻혀야만 있다.

인류의 지식이라는 구조물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조종을 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인류사회의 일체를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2. 학술의 경직화[僵化]
진정한 학술은 뿌리를 찾고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하는데, 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자면 그의 본질을 살펴야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했고, 서양인들은 추리(推理)를 거쳤으며, 인도인들은 돈오(頓悟)를 말한다. 사람의 지식은 지각(知覺)의 제한을 받으며 사람의 학술은 사상의 범위와 깊이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사람이 문제를 보는 기점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며, 사용하는 방법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고, 얻은 지식도 당연히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천문학에서는 분자로 만든 망원경을 이용하여 관측하는데, 의심할 바 없이 분자이하의 우주세계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며, 거시와 미시세계로 나누어 연구하고 있다. 정신은 정신이고 물질은 물질이며 정신과 물질은 2원화 되어 하나로 이해할 방법이 없다.

생명의 기원문제를 말하자면, 진화론이 추리되어 나온 이후 인류의 오랜 옛날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막아버렸다. 인류는 원숭이가 연화(演化)된 것이라는 것은 단지 과학 가설일 뿐이며 그나마도 온갖 모순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도리어 인류의 기원에 관한 해석으로 되었다.

분자과학은 사람을 복제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인성(人性)은 무엇인지 사람은 여전히 확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수많은 질병들은 여전히 해결할 방법이 없으며, 인체는 해부학적인 인식이외에 더욱 미세한 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단연코 더욱 고급 생명 내지는 신불(神佛)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학술이 그래 일종의 논단(論斷)에 불과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진정한 학술은 당연히 모든 기점(基点)에서부터 수정(修正)해 나가야한다. 인심(人心)이 우선 진리[眞]를 구하거나 천진(天眞)에 부합되어야하는데 진리를 구하지 않고 얻은 것은 종종 거짓이다.

인류의 학술은 한우충동(汗牛充棟)할 만큼 많으며, 매년 출판되는 서적이나 연구보고서도 대량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진지(眞知)한 한 구절이라도 들어있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진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현재 인류는 불법, 진리, 대도를 학술화(學術化)시켰다. 고증하고, 주석을 달고, 전(傳)을 만들며, 비판하고 연구하여 사람들은 본질을 왜곡시켰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류는 스스로 과학기술문명을 신봉하며 선각자(先覺者)들의 경고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라! 과학기술에서 사용하는 기계는 인류의 생활을 점령하였고, 과학기술의 산물은 환경을 오염시켰으며, 인류는 컴퓨터를 벗어날 수 없게되었다. 심지어 인류는 복제인간을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전의 선각자들이 예언했던 그런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외계인들이 어떻게 지구를 훼멸시킬지, 온갖 마(魔)가 출현하거나, 핵폭탄이 터져서 우주대전이 벌어지는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런 것이 모두 허구(虛構)란 말인가? 사람은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보는 것이 좋단 말인가? 그것이 만들어낸 내원(來源)은 사람의 본성에서 온 것인가? 다음 세대가 이것을 본다면 어떻겠는가?

인류는 도대체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 과거 백년동안 있었던 과학의 발전은 보기에는 인류 학술의 발전인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문명을 파괴하는 추세이며, 인류가 발현해야 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런 추세를 따른다면 결과는 훼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류생명의 진정한 바람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조물주(造物主)의 본의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여전히 과학의 발달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거라고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오염은 얼마나 많은 비가역적인 반응들을 초래했는가? 사람은 거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과학시술이 가져다준 편리한 방편(方便)을 향수하고 있다.

광우병, SARS, 지진, 온실효과 등 지구는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가? 지구상의 작은 입자에 불과한 인간은 여전히 계속해서 그것을 오염시키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 과정에서 자원을 소모하지만 도리어 그 손실을 만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이것이 바로 학술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3. 동양의 학술
지금까지는 서양의 학술과 과학에 대해 말했다. 중국은 더욱 심각한데 학술의 독해(毒害)를 심하게 받고 있다.

노자는 일찍이 “대도(大道)가 폐(廢)하자 인의(仁義)가 생겨났고, 지혜(智慧)가 출현하자 큰 거짓[大僞]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사상은 어떻게 수식하고 표현하던지 막론하고 필경은 각자(覺者)의 법이 아니며 또한 더욱 깊은 힘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학술은 사람이 사람의 각도에 서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도(佛道)의 이치는 모두 학술화되어 인류사상의 산물로 만들어졌다. 나중에 지식분자들은 또한 유가, 법가 등을 섞어 모든 학술을 거대한 잡동사니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일찍이 “그런 책은 고인(古人)들의 찌꺼기”라고 경고한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역대 중국의 지식분자들은 전문적으로 고인들의 말을 자신의 말로 만들어 스스로를 장애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장애를 주었다.

이것의 주류(主流)가 바로 유가(儒家)이다.

한(漢)나라 때 유가가 처음으로 널리 일어났는데 제왕학(帝王學)의 일종으로 성립되었다. 이것은 공자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공자는 이용당했다. 강유위(康有爲)가 쓴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라는 책에서 증명한바 동한(東漢)시대 유흠(劉歆)이 유가의 경전을 조작했는데 그 목적은 왕망(王莽)이 권력을 찬탈한 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나중에 유가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 역대의 제왕은 실제상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용하였다. 중국의 유가의 본원은 도(道)에 있지만 도리어 학술로 나아갔고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이자 제왕들이 다스리는 경전으로 성립되었다.

두려운 것은 역대 중국인들이 모두 제자 백가의 세뇌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런 한 층의 두터운 인류사상으로서 일부 바른 것도 있고, 바르지 않은 것도 있으며, 회의적인 것도 있고, 완전히 부면(負面)으로 나가 마성(魔性)적인 것도 있는바 전부다 사람의 대뇌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좋다고 여긴다. 사실 모두 사람의 본성(本性)과 진각(眞覺)의 사상을 방해하는 찌꺼기들이다.

사상아! 과학아! 인위적으로 지혜를 구하여 학술이란 물건을 만들어냈으나 도리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혹시켰는가? 어찌 유가뿐이겠는가?

발표시간: 2004년 12월 30일
문장분류: 문명신견>기타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2/30/251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