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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사악한 마르크스 이론을 분석

글 : 리밍(李明)

【정견망 2005년 10월 27일】

마르크스의 공산 사악한 이론은 첫 시작부터 전통 주류사회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대를 받았다. 이리하여 마르크스는 부득이 도처로 떠돌아다녀야했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갔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추방되어 벨기에에 도착했지만 벨기에 정부에 의해 또 축출되어, 결국 다시 영국으로 가야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동란(動亂), 폭력, 혁명을 초래하였고 공산 사악의 붉은 물결[紅潮]은 유럽을 석권하고, 한 때는 유럽의 절반을 차지했다. 뜻밖에도 공산주의란 이 사악한 영체는 유럽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소리 소문 없이 5천년 문화 역사를 지닌 중국에 정착하여 중화민족을 몇 십 년 동안 재앙으로 몰아넣었다.

오늘날 공산 사악의 물결은 세계적인 범위에서 철저히 몰락했지만 중공은 여전히 마르크스의 사악한 이론을 움켜잡고 사람을 속이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른바 “역사적 유물론”이다. 이 이론은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고 떠들어대면서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계급투쟁이며 인류 사회는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를 거쳐 결국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사회로 발전한다는 등등 일련의 그릇된 이치와 사악한 이론들을 내놓았다.

그것은 이미 세계인들에 의해 경멸당하고 있으며 실천을 통해 오류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진리로 떠받들면서 강제로 모든 중국인들에게 사악한 이론을 주입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중국인들은 사상 중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일에 닥치면 바로 이 사악한 이론으로 대조하여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동시에 그릇된 관념을 형성하였다.

중공은 고집스럽게 철학을 유심주의(관념론)과 유물주의(유물론) 두 종류로 나누고, 독단적으로 유심주의는 틀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유물주의만이 옳다고 인정하면서 또 교과서에도 써 넣었다. 마르크스 유물주의 사악한 이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반드시 우선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 등 물질생활이 있어야하며 그런 후에야 비로소 정신적 생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극도로 현혹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배가 부르지 않다고 하여 자신의 믿음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고상한 사상 경지를 추구하는 데 반드시 먼저 풍부하고 넉넉한 생활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예수는 “사람이 사는 것은 단지 음식물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신(神)이 말씀하신 모든 것에 의지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사람을 현실 속으로 끌고 들어와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의 획득을 극도로 추구하게 유도하였고, 이를 통해 사람들 마음속에서 신(神)을 향한 선염(善念)과 정념(正念)을 훼멸하였다. 정말이지 사람을 신념이라곤 조금도 없는 살아있는 송장으로 변화시켰다.

마르크스는 일체 종교를 반대했으며, 그는 “종교는 인민을 해치는 아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80%의 사람들에게 신앙과 종교가 있으며, 오직 20%의 사람만이 신앙이나 종교가 없는데 이 20%의 절대 다수는 모두 중국에 있다.

이는 중공이 몇 십 년 동안 무신론을 주입하고 신앙을 타격한 악과(惡果)이다. 사람이 만약 신앙이 없다면 아주 악한 일을 저지르기 쉬운데 왜냐하면 그는 어떠한 경외감이나 양심의 구속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감히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중공이 비판하고 있는 이른바 유심주의 철학자들이 모두 어떠한 사람들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플라톤, 소크라테스, 노자, 육조 혜능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인류 문명사 중의 정화(精華)적인 인물들이며 그들이 남긴 것은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어찌 중공이 말하는 것처럼 모두 비판하고 투쟁해야할 반면적인 인물들로서 봉건 찌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원래 중공이 다른 의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5천년의 깊은 문화적 배경이 있는 중국에서 인류의 전통문화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공산 사악한 이론을 추진하자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사람의 정통관념을 전부 때려 엎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류 문화의 정화적인 인물들은, 속인의 각도로부터 보자면 철학자이며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사실 수도인(修道人)이 혹은 대덕지사(大德之士)이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모두 철학적인 이치를 갖고 있다. 마치 노자의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구절처럼 그 속에는 우주에 대한 노자의 심오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중공에 의해 이런 심오한 이치들이 도리어 유심주의의 잘못된 전형으로 비판받고 있다.

체계적으로 인류 전통문화를 훼멸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신을 믿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는 전력을 다해 다윈의 진화론을 치켜세우고, 사람은 원인(猿人)이 변한 것이라고 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이를 통해 사람과 신을 갈라놓았는데, 무신론을 선양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이라는 사악한 이론을 고취하기 위해, 중공은 역사 교과서에서 적극적으로 농민 봉기를 일면적으로 과장했으며 중국 고대의 역사는 끊이지 않는 농민 봉기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역대 통치자들을 모두 인민의 적으로 백성을 모욕하고 억압한 것처럼 표현했다. 중공은 또한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는 지주와 농민, 자본가와 노동자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고 속여 인민들은 모두 도탄에 빠져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서 중공이 떠벌리는 폭력혁명학설을 위한 근거를 찾았다.

사실, 고대 사회에 인민과 통치자의 관계는 지금 중공의 통치보다 훨씬 더 조화로웠으며 고대 제왕의 통치는 중공보다 현명한 것이 아주 많았다. 농민 봉기나 전란이 비록 존재하긴 했으나 중공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대다수는 모두 평화적인 시기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봉건사회에서, 중국은 줄곧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경제와 문화 대국이 될 수 있었지만 왜 중공의 시대에 오히려 크게 퇴보했는지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여기에는 비록 다른 역사적인 원인이 있지만, 중공이 이 몇 십 년간 끊임없이 계급투쟁을 하고 정치운동을 하며 사람을 괴롭힌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봉건사회에서는, 커다란 천재인화(天災人禍)를 당하면 제왕은 모두 대중 앞에서 자신을 검토하고 정책의 잘못이나 혹은 덕행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재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중공이 언제 인민에게 자신의 잘못을 승인한 적이 있는가? 아무리 큰 나쁜 일을 저질러도, 늘 자신은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말하는데 “사스”와 같이 이렇게 큰 급성 전염병이 발생했어도 처음에는 질병 발생을 덮어 감추다가 끝에 가서는 도리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질병과 싸워 이기지 않았는가?”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지금의 중국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르크스-레닌의 조문을 외우는데 모두 매우 능숙하다.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정치과목에서 주입하는 것이 이런 것들이며, 익숙하게 외우지 못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도 없다. 설령 학교에 다니지 않을지라도, 텔레비전, 방송, 신문에서 매일 듣고 보는 것이 또한 모두 이런 것들이며, 문화혁명 중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큰 소리로 구호를 잘 외칠 수 있는데 입만 벌리면 큰소리로 거짓, 과장, 공허한 표어를 외치는데 아주 능숙하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보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사람을 기만하는 마르크스의 사악한 이론의 본질을 꿰뚫고 폭로하여 중국 인민들로 하여금 되도록 빨리 중공을 이탈하도록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발표시간:2005년 10월 27일
원문위치: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5/10/27/343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