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톈량(章天亮)
【정견망 2006년 3월 22일】
일 주일 동안, 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쑤자툰 집단학살 강제수용소에서 전대미문의 참상을 자행하고 있는 마귀의 소행에 계속해서 충격에 휩싸여 있다.
마음속의 이런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인류 역사상 이미 유사한 만행이 발생한 적이 있지만, 박해의 정도나 목표에서 볼 때 공산악당의 사악함과 잔혹함은 “전무후무[空前絕後]”하다고 할 수 있다. “전무”라고 말하는 것은 잔혹한 전쟁 시기 파시즘의 만행도 중공의 만행에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고, “후무” 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잔혹한 폭력은 이미 인류가 넘어설 수 없는 “최고봉”이기 때문이며 더욱이 이러한 만행이 만약 제지되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의 최저 한계선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인류는 장차 비인간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은 날마다 진행된 “작업”의 하나였다. 파시스트는 확실히 사체에서 값 나가는 장신구들을 취하거나 심지어 사람의 지방을 끓여 비누로 만들어 군수 물자로 공급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죄악들은 그래도 사람이 죽은 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중공 죄악의 정치와 경제적 목적으로 동포들에게 생체 해부를 자행해 이윤을 도모하는 일은 오직 공산악당 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쑤자툰 사건의 폭로는 전 민중들에게 중공 사교의 파룬궁 박해 반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결론은 다음과 같은 원인에 기반하는 것이다.
1. 박해와 반(反)박해의 대결 중에 박해가 점점 심해졌다
대략적으로 박해와 반(反)박해 시간표를 정리해 보면, 파룬궁의 불요불굴의 정신은 중공악당을 점점 발광하게 만들었고 아울러 박해의 등급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처음 개시했을 때 체포한 대다수는 전(前) 파룬궁 연구회 회원들과 각지 기공 보도소 소장들이었다. 중공의 심중에 민중들은 이미 각종 운동 가운데 흩어진 모래가 되어, 이른바 “책임자” 혹은 “조직자”를 잡아들이기 시작하면, 민중들은 자연스럽게 뿔뿔이 흩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청원을 하러 간 일반 파룬궁 수련인들에 대해서, 중공은 잠시 수감한 후에 곧 석방시켰다.
그러나 중공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파룬궁은 결코 “연구회 회원”, “보도소 소장”, “분소장”, “보도원” 및 직함이 없는 일반 수련인들 간에 엄격한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파룬궁 내부에는 근본적으로 상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실제로 개인의 《전법륜(轉法輪)》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다음 행위를 결정한다. 그래서 중공이 “책임자 체포” 전략을 실시한 후, 오히려 더 많은 파룬궁 수련인들이 용감하게 전진하며 평화 청원의 큰 흐름에 합류하였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표면적인 박해는 처음 1년 동안 단계가 5차례 높아졌는데 이 과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무릇 장쩌민이 계획한 “삼 개월 내 파룬궁 소멸”은 이러한 박해의 승급을 뚜렷하게 “삼 개월”을 단계로 했다는 특징이 있다.
1999년 4월 25일 중난하이(中南海) 청원사건이 끝난 후, 중공은 파룬궁의 새벽 단체연공동에 대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수단은 단순한 해산과 교란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1999년 7월 20일부터 청원하는 파룬궁 수련인들에 대해 단기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때 감금 기간은 24시간 혹은 48시간을 넘지 않았다. 물론 개별 지역 경찰들은 처벌 시 약간씩 다른 표준을 가지고 있었다. 중공의 처벌 강도는 결코 통일된 규정이 아니었다.
두 번째 승급은 1999년 10월 말에 발생했다.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을 “불법 조직”으로 규정했지만 여전히 대규모 청원을 위협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방문 기간에 공개적으로 <르 피가로> 지 기자에게 파룬궁은
그러나 15일간의 행정 구류로도 더 많은 제자들이 천안문에서 “파룬다파하오” 현수막을 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와 같이 천안문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2000년 설에,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자 중공은 당시 수감 중이던 파룬궁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30일간의 형사 구금에 처했는바 이것이 세 번째 승급이다.
새해가 지난 후에도, 파룬궁의 기세는 조금도 쇠퇴되지 않았고 각국 기자들은 대대적으로 천안문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항의하고 있는 소식을 보도했다. 2000년 4월 25일 무렵, 중난하이 사건 1주년을 맞이하여, 게다가 해외에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이 법(法)을 전파하기 시작한 5월 13일을 “세계 파룬따파의 날”로 정하는데 동의하자, 천안문 앞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의 수는 박해 개시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필자의 부모님과 누님도 그때 항의하다 체포되었다. 당시 15일 혹은 30일 구금이 관례로 되어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경찰에 처리를 문의하자 경찰은 현재 이들에 대한 처리는 상부의 통일된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 이 사람들 대다수가 강제노동교양 처분을 당했다. 이것이 네 번째 승급이다.
장쩌민은 신앙의 힘을 이해할 수 없었고 기독교 탄압을 명령했던 로마 황제 네로보다 더욱 잔인하고 더욱 어리석었다. 그는 이번에는 파룬궁이 분명 놀라서 수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항의 행동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으며 체포된 파룬궁 수련인들도 단호하게 자신들의 신앙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장쩌민은 2000년 7월에서 8월 사이 파룬궁 수련인에 대해서는 “때려 죽여도 상관 없고 때려 죽였으면 자살로 간주하라. 신원을 조사할 필요도 없이 직접 화장하라.”는 비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다섯 번째 승급이다.
비밀 명령을 하달하기 전에, 파룬궁 박해로 사망한 제자 수는 대략 180명이었다. 그러나 비밀 명령을 내린 후 1년 동안 박해를 당해 죽은 사람 수는 500명으로 늘어났고, 이듬해는 다시 1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나마도 확실히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불완전한 통계 수치일 뿐이다.
2000년 9월 장쩌민의 미국 방문 때, CBS의 60분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에 파룬궁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비방했다. 명혜망(明慧網)은 “사악한 장XX” 항목을 만들어 전면적으로 장XX가 박해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폭로했다. 장XX가 감독한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 사건 이후, 파룬궁 측의 항의는 천안문에서 점차 전국 각처에서 진상 전단지와 VCD를 배포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박해가 줄곧 승급됨에 따라 활동은 점차 지하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은 만약 파룬궁이 항쟁을 계속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박해가 이렇게까지 잔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원인을 결과로 착각한 황당한 논리이다. 이런 논리가 현재 탈당과 릴레이 단식 인권 운동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종종 들리고 있다. 예를 들면 한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갔을 때 도둑이 주인 부부가 집에 있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둑은 강탈하기로 작정하고 도둑에서 강도로 변했다. 그러나 주인이 대항할 것을 예상치 못했다. 그러자 강도는 주인을 죽이고, 아내를 강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건에서 주인이 반항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단지 도둑이 강도에서 다시 살인범(강간범)으로 변한 과정을 비난해야 한다.
2. 쑤자툰 사건 – 박해를 강화한 필연적 결과
중공 역사에서 어떠한 사람과 단체에 대한 탄압에서 좀처럼 실수한 적이 없었다. 좀처럼 실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공은 탄압 과정에서 아주 잔인하고 비열한 수단을 사용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진정 체계적으로 폭로되고 청산된 적이 없었다.
<구평>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공의 살인 패턴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먼저 영혼을 죽이고, 다음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모든 운동의 생존자들은 이미 중공에 의해 척추가 절단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두려움 때문에 중공 범죄 행위의 은폐를 도우며,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바로잡아 준 것에 대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러한 결과를 분명히 예상하였고 비로소 문화대혁명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음으로써 범죄 행위를 성공적으로 “용감하게 잘못을 시정한”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정확한(偉光正)” 증거로 바꾸었다. 또한 거의 마찬가지 원인으로 장즈신(張志新)은 문화대혁명이 끝났을 때 죽임을 당했다 – 중공은 그녀가 꺾일지언정, 굴복하지 않고,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는 정신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중공으로 하여금 발로 바위를 차는 것처럼 만들었다. 파룬궁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장쩌민은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고문이 아무리 잔혹하고 거짓말이 아무리 치밀하든지 파룬궁 수련인들은 줄곧 신앙을 확고히 지켰다. 설령 일부 수련인들이 극독의 고통을 당한 후에 이른바 신앙을 포기한다는 보증서에 서명하긴 했지만, 나중에 일단 고압적인 환경을 떠나면 바로 정신이 또렷해져서 전면적인 박해 폭로 대열에 재합류했다.
중공의 죄악은 탄압 실패를 통해 최초로 폭로되었다. 그러나 폭력을 맹신하는 중공은 자신들의 폭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점차 박해의 강도를 올렸다. 파룬궁 수련인들의 신앙이 더욱 견정하면 할수록, 중공은 더욱더 심하게 박해했으며 파룬궁 수련인들은 더욱더 견정해졌으며 더욱더 박해를 폭로하였다.
결국 중공은 기왕에 이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소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육체적으로 소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중공 마귀의 고문에 대한 산 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쑤자툰은 분명 이러한 배경하에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중공 사교가 악마로 변한 필연적 결과이다.
쑤자툰의 “살인멸구(殺人滅口)”는 다른 한 면에서도 드러난다. 첫째, 중공은 자신의 폭력과 거짓말의 작용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었다. 비록 이 양대 “법보(法寶)”는 과거에 모두 효과가 있었지만, 진정한 신앙 앞에서는 실패한 것이다. 둘째, 중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그래서 살인멸구의 방법으로 대량의 살아있는 증인들을 없애고자 결정한 것이다.
내가 애초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쑤자툰이 2001년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공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그 때부터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구평>과 탈당 흐름의 출현은 중공으로 하여금 잔존한 믿음마저 전대 미문의 속도로 상실하여 거의 사라지게 했다.
3. 반인류죄
쑤자툰 죄악은 반인도적이고 반인류적인 것이다.
중공의 이른바 “인권은 생존권이다”라는 주장은 인터넷 상에서 “저구권(豬狗權 돼지와 개의 권리)”으로 반박 당했다. 즉 생존하기만 하면 자유와 모든 문명 사회가 공인하는 정치적 권리는 필요없다는 것은 개돼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쑤자툰 사건이 드러낸 더욱 참담한 현실은 한 사람이 만약 장기를 이식하고자 하면, 24시간 혹은 48시간 안에 품질 좋은 장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기 이식은 장기 공급자와 수여자의 혈액형이 맞아야 하고, 조직 타입도 마찬가지로 일치해야 한다. 이는 중공이 돼지나 개를 사육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파룬궁 수련인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일단 어떤 수련인의 장기가 필요하면, 이 수련인은 마취를 하지 않거나 극소량의 마취 상태에서 장기가 적출된 후 아직 살아서 숨쉬고 있을 때 소각장에 보내 불태워진다. 증인의 말에 따르면 쑤자툰 수술의사였던 자신의 남편에게 상부에서 “당신은 이미 우리와 같은 배를 탔어. 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고, 몇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물에게 대하는 방법보다 더욱 잔인한 수단을 통해 자신의 동포를 죽이는 것은 그 악랄함의 정도에서 파시스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반인류죄에 가담한 자들은 주범에서 공범 협력자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하늘의 천벌을 받을 것이다!
4. 죄악은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
내가 <중국 정세의 세가지 요점>이라는 글에서 말한 것처럼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절대로 파룬궁 수련인들의 신상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박해의 황당무계 함과 잔인한 정도는 이미 정상인들의 상상을 초월하였고, 이러한 박해를 집행하는 자들은 양심을 잃어버린 인간쓰레기이다. 그리고 체계적인 박해는 중공의 모든 대지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장쩌민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 역시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이 점거한 전체 독재기계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 독재기계는 “경찰”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국, 검찰, 법원, 정법위원회, 선전계통, 위생계통, 특무계통, 군대 계통 및 향진, 현 위원회, 시 위원회, 성 위원회의 각급 공산당 서기 등이 협력했다.
그러므로 모든 중국인들은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주변이 이런 사교 범죄 집단이라는 것을 똑똑히 봐야 한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사교에 대해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구평>에 나오는 “누가 어떤 문제에서 공산당을 믿으면, 어떤 문제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을 잘 기억해야 한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 수법은 다른 기공 단체, 신앙 단체, 인권 단체, 상방 인사들에게 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오즈성(高智晟)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오늘 중국에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곳에 있든지 파룬궁이라고 한다면, 경찰은 즉시 당신을 체포할 것이다. 아울러 아무런 법률 절차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파룬궁”이란 세 글자가 체포의 절대 이유가 되었다. 최소한 중국의 수많은 경찰들은 이러한 황당한 논리를 인정했다. 경찰이 궈페이슝(郭飛熊)에게 이러한 죄명을 씌워 체포할 때 “중앙의 명령이다. 당신은 파룬궁 분자이므로 바로 사교(邪教)분자이다! 당신과 같은 사교 분자는 우리 인민민주독재 정권을 실행하는 데 절대로 놓아줄 수 없다! 아무런 법적 수속도 밟을 필요가 없다. 당신과 같은 파룬궁 분자들에게는 어떤 법률적 수속도 필요치 않다.”라고 말했다.
파룬궁에 대한 극악무도한 박해가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파룬궁 구성원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를 당할지 보증할 수 없다. 쑤자툰 강제수용소가 계속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생체에서 장기가 적출된 후 화장될지 보증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거주하는 곳에 이성을 잃은 살인범이 매일 무작위로 사람을 하나씩 죽인다면, 거주지역 내의 사람들은 모두 위태롭게 된다. 중국대륙의 현황은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은 직업 킬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경찰 제복을 입은 경찰이고, 혹은 흰 가운을 걸친 의사이며, 혹은 양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은 공산당 관료이다.
5. 전 민중 반(反)박해 – 파룬궁 박해 반대로 부터 시작
만약 쑤자툰과 같은 만행이 용인될 수 있다면 세계에서 우리가 용인할 수 없는 폭행이 무엇이 있겠는가?
반드시 공산사교의 통치 시대를 종결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줄곧 중국 사회의 평화적 체제 전환을 위해 노력해왔다. 몇몇 양심 있는 사람들이 중공을 떠난다면, 중공은 무형으로 사라질 것이다.
파룬궁이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박해를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파룬궁 박해에 대한 진상을 설명하는 것은 중공 사교의 본질에 대한 가장 뚜렷하고 핵심을 찌르는 폭로가 된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에 반대하는 것은 중공으로 하여금 박해를 중단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저지른 하늘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죄악은 중공으로서는 근본적으로 상환할 수 없는 것이며, 양심을 상실한 사람들도 도살용 칼을 내려 놓으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공을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박해를 소멸시켜야 한다. 그 표현 형식은 바로 능동적으로 중공을 떠나고 아울러 <구평>과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전파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공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공이 비록 역사적으로 가득한 피의 부채와 현재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는 무수한 죄악들로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지만, 파룬궁 문제야말로 중공이 두려워하는 것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자 중공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공을 멸망시키기려면 우리는 직접 급소를 가리켜야 한다. <구평>의 생각으로 중공을 대하고, 파룬궁 박해 반대와 <구평>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중공을 폭로하며 탈당의 방식으로 중공을 소멸시키자.
쑤자툰은 장차 영원히 중공의 죄악과 연계될 것이다. 우리는 쑤자툰 사건을 전 민중들이 파룬궁 박해에 반대하는 운동의 기점이 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발표 시간: 2006년 3월 22일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articles/2006/3/22/361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