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당조(唐朝)의 대시인 이백(李白)은 그야말로 중국 남북 이곳저곳을 두루 여행했다고 할 수 있는데 타향에서 늘 술에 취해 잠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은 여전히 감추기 어려웠다. 오늘 감상할 작품 《객중작(客中作 나그네 길에 짓다)》는 모두 스물여덟 자다.
난릉의 좋은 술은 울금 향을 풍기고
옥그릇에 술 부으니 호박처럼 빛이 난다
오직 주인이 손님을 취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느 곳이 타향인지 알 수 없노라
蘭陵美酒鬱金香
玉碗盛來琥珀光
但使主人能醉客
不知何處是他鄉
“난릉의 좋은 술은 울금 향을 풍기고
옥그릇에 술 부으니 호박처럼 빛이 난다”
이백은 평생 술을 사랑했기 때문에 술에 대한 감정이 각별했다. 이 구절에서 시인이 말하려는 의미는 울금향을 더한 난릉의 미주(美酒)를 옥그릇에 담아 마시면 마치 호박이란 보석처럼 빛이 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옥그릇은 꼭 진짜 옥으로 만든 그릇이란 의미가 아니라 아마 일반적인 그릇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이 누구인가 이다.
이백은 술을 마실 때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귀천을 따지거나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이백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술일뿐 다른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호박 빛이란 사실 그릇 자체의 색인데 대체로 서역(西域)에서 만든 그릇 중에 이런 것들이 많은데 그릇 색깔이 호박색이다.
시인은 여기서 따로 술 맛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 이것은 이 작품에서 시인이 정말로 미주를 음미하고 있는 게 아님을 설명한다. 설령 이렇게 좋은 술일지라도 정말로 시인을 흡인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이렇게 진정으로 술을 음미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뒤에 나오는 두 구절에 답이 있다. 바로 자신의 고향과 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오직 주인이 손님을 취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느 곳이 타향인지 알 수 없노라”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오직 주인이 열정적으로 환대해주고 자신이 크게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굳이 이곳이 고향이든 타향이든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시인은 정말로 고향이든 타향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강렬해서 술을 통해서라도 잠시나마 향수를 잊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시인이 만약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굳이 술을 마시며 고향을 그리워할 필요란 없다. 그만큼 이 당시 시인이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술로 과연 향수를 잊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백은 자신의 다른 작품 《선주 사조루에서 이운 숙부를 전별하며(宣州謝朓樓餞別校書叔雲)》에서 “칼을 뽑아 물을 갈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술잔 들어 시름 없애려 하나 시름은 더욱 깊어지네(抽刀斷水水更流,舉杯消愁愁更愁)”라는 명구를 남겼다.
즉, 시인 스스로도 술로 시름을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고향생각을 잊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을 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다.
타향이 아무리 좋은들 자기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
역주: 이백의 시에서 늘 말하는 고향은 꼭 인간세상에서 육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천상에 두고 온 원신(元神)의 고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백이 그리워하는 대상에는 애초 자신이 내려온 천국세계의 수많은 신과 중생을 포함한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8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