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清風)
【정견망】
봄꽃 가을 달은 언제나 끝나랴
잊지 못할 옛일 많기도 하구나
어젯밤 작은 누대엔 다시 봄바람 불어오니
밝은 달빛 속에서 차마 고국 산하를 돌아보기 힘들구나
아름다운 난간과 옥섬돌 그대로 있으련만
젊던 내 얼굴만 변해 버렸네
그대에게 묻노니 시름 얼마나 되는가?
마치 동쪽으로 흘러가는 봄 강물과 같구나
春花秋月何時了?往事知多少。
小樓昨夜又東風,故國不堪回首月明中。
雕欄玉砌應猶在,只是朱顏改。
問君能有幾多愁?恰似一江春水向東流。
이 시는 오대(五代) 시기 남당(南唐)의 마지막 황제 이욱(李煜 937—978)이 쓴 《우미인(虞美人)》이란 작품이다. 이욱은 본명이 종가(從嘉)였다. 자는 중광(重光),호는 종은(鍾隱)이며 이경(李璟 남송 2대 황제 원종)의 여섯 째 아들이다. 나라가 망한 후 북송(北宋)에 투항했다. 그의 이 사(詞)는 처량하고 애잔해서 독자에게 무한한 감개를 준다. 그는 타향에서 몰락해 옛 영토와 일찍이 누렸던 영화를 가슴에 품고 천고에 유전(流傳)되는 이 사를 썼다.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이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는 또 무엇이 함축되어 있을까? 숨겨진 함의는 바로 사람 자신의 진정한 집에 대한 것으로 다시 말해 고층공간(高層空間 역주: 애초 자신이 내려온 천국세계)에 있는 집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돌아가고픈 소원이다. 이는 고층에서 우리 이 속인공간까지 내려오면서 줄곧 관통된 것으로 속인 중의 사향(思鄕 고행생각)은 그 가장 낮은 층에서 일종의 체현에 불과하다.
만약 이런 각도에서 이 사(詞)를 본다면 작자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소원임을 발견할 수 있다. 동시에 또 고향으로 되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감개와 미망을 포함한다. 이 사에 담긴 함의가 일반적인 사향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령(心靈) 깊은 곳에 있는 불성(佛性)과 맞아떨어진 것이고, 바로 이 때문에 강대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봄꽃 가을 달은 언제나 끝나랴
잊지 못할 옛일 많기도 하구나”
이 구절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 표현이 완곡한데, 사실 기나긴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지 이미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는지 얼마나 많은 봄꽃과 가을 열매가 있었는지 달이 몇 번이나 찼다 기울어졌는지 모르고, 윤회하면서 거친 그런 시시비비와 각종 은혜와 원한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어젯밤 작은 누대엔 다시 봄바람 불어오니
밝은 달빛 속에 차마 고국 산하를 돌아보기 힘들구나”
어젯밤에 작은 누대에 다시 바람이 부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일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고국(古國)은 사실 진정하고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천국세계의 집으로 그것은 또 밝은 달 빛속에 있다.
“아름다운 난간과 옥섬돌 그대로 있으련만
젊던 내 얼굴만 변해 버렸네”
집에 있던 그런 정자며 누각이며 그 중생들 그곳의 모든 것은 아직도 남아 있을까? 그러나 인간 세상에 내려온 나는 이미 원래의 내가 아니다. 여기서 젊은 내 얼굴이 변했다는 것은 단지 사람이 늙었다는 뜻이 아니라 생명의 순수함이 이미 크게 미끄러져 내려갔기 때문에 더는 되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대에게 묻노니 시름 얼마나 되는가?
마치 동쪽으로 흘러가는 봄 강물과 같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깊은 곳에 감춰진 불성(佛性)은 변하지 않아서 되돌아갈 수 없는 낙담과 미망(迷茫)이 마치 강물처럼 영원히 생명과 함께 한다.
이욱은 존귀한 황제의 신분에서 자유를 잃은 죄수의 몸으로 추락했으니 그가 겪은 신분의 추락 및 심리적인 추락은 지극히 컸다. 이는 지금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고층공간에서 비할 바 없이 존귀한 왕이었지만 우주에서 가장 저층의 속인사회로 떨어진 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 작품은 문학적인 수법을 사용해 우리 마음속 불성을 묘사했는데 전체가 마치 흘러가는 구름이나 물처럼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어 아주 섬세하면서도 유창하다. 작가가 풍경을 빌어 자기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겉이라면 반본귀진(返本歸真)이 안이 되는데, 양자(兩者)가 고도로 융합되어 아무런 인위적인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예술대가라의 조예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82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