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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도달하면 자연히 이뤄진다

원형(源馨)

【정견망】

공을 성취하는 성공(成功)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항심(恒心 꾸준한 마음)과 의지(意志)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다고 해도 생명이 어떤 장점을 지녔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가뿐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렸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우리 당승(唐僧) 사도의 마음속 대화를 한번 살펴보자.

한 달 남짓 가다보니 문득 물소리가 귀에 들렸다.

삼장(三藏)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제자들아 또 어디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행자가 웃으면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의심이 많으시네요. 중노릇하기 힘드시겠어요. 우리 일행이 넷이나 되는데 유독 사부님만 무슨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세요. 그 《다심경(多心經)》을 또 잊으셨어요?”

당승이 말했다.

“《다심경》은 부도산(浮屠山)에서 오소(烏巢)선사께 전수받은 것으로 모두 54구절 270자다. 내가 그것을 처음 들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기억하고 있는데 넌 내가 어느 구절을 잊었다고 말하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당신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없다’는 구절을 잊으셨어요. 우리는 출가인으로 눈은 색(色)을 보지 않고, 귀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코는 냄새를 맡지 않고, 혀는 맛을 보지 않으며, 몸은 추위와 더위를 모르고, 뜻은 헛된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일컬어 육적(六賊 여섯 도적)이라고 합죠. 사부님께선 생각은 경전을 구하는 일에 연연하고, 요마(妖魔)가 두려워 몸을 던지려 하지 않으시며, 공양을 드시면서 혀를 움직여 맛을 보고,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시며, 귀로는 소리를 듣고 놀라며, 물건을 보면 시선을 집중해서 보십니다. 이는 육적을 어지럽게 불러들이는 것인데 어떻게 서천(西天)에 가서 부처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삼장이 이 말을 듣고는 침묵하다가 근심스레 말했다.

“제자야, 나는 당시 성군(聖君 당 태종)과 작별한 후 험한 길을 달리며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왔단다. 짚신을 신고 안개 자욱한 산을 넘었고 사립을 쓰고 구름 낀 고개를 지났단다. 조용한 밤이면 원숭이 울음소리에 탄식하고 밝은 달빛 속 새소리는 듣기 힘들었단다. 대체 언제쯤 이 먼 길을 마치고 여래(如來) 부처님의 오묘한 법문을 들을 수 있겠느냐?”

행자가 이 말을 듣고는 참다못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선 그저 고향 생각에 탄식뿐이시네요! 만약 서천으로 가는 길을 다 채우려면 그게 뭐 어려울 게 있습니까? 속담에 ‘공이 도달하면 자연히 이뤄진다(功到自然成)’고 했습니다.”

팔계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님, 이렇게 마장(魔障)이 흉악하고 심하니 천년을 가도 공(功)을 이룰 수 없을 겁니다!”

사승(沙僧)이 말했다.

“둘째 형, 형이나 나나 말주변이 없으니 큰형을 건드리지 말아요. 그저 어깨에 짐을 메고 꾸준히 갈고 닦다보면 언젠가는 공을 이룰 날이 있을 겁니다.”

사실 이들은 진실로 취경(取經)을 위해 선발된 사람들이라 호법신(護法神)들도 직무를 포기하고 당승이 정말 피해를 당하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에 배치된 마련(魔煉)은 바로 수련인을 위해 짐을 줄여주는 것으로 매 하나의 닦아 버려야 할 ‘마음’을 겨냥해서 온 것이다.

마치 우리 매 사람마다 생명의 극본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다 하늘의 배치가 있고 인류가 반대되는 이치[反理] 속에서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도(道)에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데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정(情)에 곤혹당하지 말고 장래를 두려워하지 말며 과거를 생각하지도 말고 마음을 깨끗이 해서 오로지 현재 각자의 본분만을 생각한다면, 그럼 공(功)이 도달해 자연이 이뤄질 것이다.

속세에서 얻은 근심 걱정으로는 대지혜(大智慧)에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주:
① ‘공도자연성’(功到自然成)에서 흔히 공을 들이면 자연히 이뤄진다고 번역하는데 이렇게 하면 도(到)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수련인은 공이 표준에 도달해야 원만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뜻을 살려 “공이 도달하면 자연히 이뤄진다”로 번역했다.

② 다심경(多心經)은 우리가 잘 아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말하는데 재밌는 것은 오승은이 문맥에 따라 다심경(多心經) 또는 심경(心經)으로 표현한다. 주로 삼장이 근심걱정이 많아 부정적인 문맥으로 쓰일 때는 다심경이라 쓰고 그렇지 않고 정면적인 뜻일 때는 심경으로 표현한다. 《서유기》는 표면적으로는 쉽고 재미있지만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글자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