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유혹을 만나게 되는데 혹자는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이 일단 얻고 나면 원래 다 이러할 뿐임을 발견하게 된다. 소동파의 시 《관조(觀潮)》는 모두 28글자다.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조류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가지 한이었는데
가서 보고 돌아와 보니 별다른 일은 없고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조류였네
廬山煙雨浙江潮
未至千般恨不消
到得還來別無事
廬山煙雨浙江潮
1.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조류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가지 한이었는데”
많은 문인(文人)들이 아름다운 경치 감상을 좋아하는데 여산의 안개비와 절강의 조류는 사람들이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심지어 보지 못하면 “한스러울” 정도다. 한마디로 말해 “황하(黃河)에 가보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황하 강변에 살았기 때문에 황하에 대해서는 단지 이러할 뿐 뭐 볼게 있는가? 라고 여겼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시초에 한 가지 목표를 세운다.
예를 들면 조상을 빛내고 공명(功名)을 성취하며 어느 방면에서 성취가 있거나 또는 원수를 갚는 등등.
목표가 아주 크게 보이지만 일단 어느 날 정말로 이루고 나면 그럼 단지 이러할 뿐임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목표를 이룰 때는 또한 아주 많은 것을 잃기 때문이다.
2. “가서 보고 돌아와 보니 별다른 일은 없고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조류였네”
어떤 주제를 부각시키는 가장 좋은 방식중 하나는 반복이다. 이 시는 첫 구절을 마지막에 다시 반복한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아주 대담할 뿐만 아니라 내용을 정확히 장악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는 사실 아주 간단히 해석할 수 있는데 바로 진정으로 여산 안개비와 절강 조류를 보고 나면 곧 일체가 다 이러할 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으니 특별히 자랑하거나 기뻐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소동파가 마지막에 불가(佛家)에 귀의한 것을 알고 있는데 비록 명확히 출가하진 않았지만 독실하게 불법(佛法)을 믿었다. 불가는 내려놓음을 말하는데, 시인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인간세상의 헛된 부귀영화를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체는 사람이 애초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얻고 난 후에야 단지 이러할 뿐임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대법제자(大法弟子)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많다. 그들은 모두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며 자신의 직장에서 그저 맡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런 세상 일의 유혹 속에서 내려놓음을 알고 세간의 일체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욱 대단한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얻은 것 역시 가장 좋은 것이다. 단지 사람의 기점에 서서 볼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은 모두 천상(天上)에서 온 것으로 세간의 일체는 신(神)의 눈에는 모두 좋지 않은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좋아할 뿐이다. 이 일체를 내려놓고 이 일체를 담담히 보라. 그러면 가장 좋은 것을 얻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