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강희제의 《보살정(菩薩頂)》을 읽은 소감

신우(新宇)

【정견망】

오대산(五臺山)은 중국 불교의 명산이고, 강희대제(康熙大帝)에 대한 인상은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당 태종의 뒤를 이은 또 한 분의 천고일제(千古一帝 역주: 천 년에 한번 나올 정도로 뛰어난 황제란 뜻. 보통 당 태종과 강희제를 일컫는다)다. 역사상 강희제는 다섯 번이나 오대산을 방문해 후세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남겼다.

어느 날 강희제가 쓴 《보살정(菩薩頂)》이란 시를 봤는데 분명 강희제가 오대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작품일 것이다(강희제는 오대산을 유람할 때마다 늘 보살정이라는 라마교 사원에 머물렀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고 직접적으로 강희제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았다.

먼저 칠언절구로 된 이 작품을 같이 감상해보자.

보살정(菩薩頂)

40여 년 세가(世伽)에 예를 올리나
본래 모습은 천가(天家)라네.
청량(淸凉)해 물건이 없나니 무엇을 소유하랴
가로로 누운 엽두봉이 법화(法華)를 묻노라.

四十餘年禮世伽
本來面目是天家
清涼無物何所有
葉斗峰橫問法華

여기서 가(伽)는 흔히 불교에서 ‘가람(伽藍)’을 말하는데 즉 사찰이나 불교 도량을 뜻한다. 불교에서 가람은 불상을 모시고 불교 의식을 거행하거나 수행하는 장소로 불교 신앙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세가에 예를 올린다(禮世伽)”는 말은 개인적인 이해로 경불(敬佛)하고 예불(禮佛)하거나 불법(佛法)수련을 가리킨다.

‘천가(天家)’는 흔히 천자 또는 제왕의 집으로 설명하지만 개인적인 이해로는 또 다른 함의가 있으니 바로 천상(天上)의 집을 말한다.

그러므로 앞 두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강희제는 바로 불문(佛門)의 수련인으로 수련 중에서 자신의 본래 면목이 천상에서 온 사람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천상에서 온 것에 대해 인류 역사와 문화 속에도 수많은 단서들이 남아 있어 그 경위를 살펴볼 수 있다.

5천 년 전 황제(黃帝)는 《운문대권(雲門大卷)》이란 악무(樂舞)를 창작했다. 황제는 이 웅장한 작품을 통해 지상의 사람은 모두 구름 위에 있는(즉 천상의) 고향에서 왔음을 알려주었다.

또 2천여 년 전 흔히 철학자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선지자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인류는 이 문제들을 2천 년 넘도록 사고해왔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이렇게 생각해보도록 이끈 동시에 또 사람들에게 천상에서 떨어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노라고 알려주었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은 지상의 사람은 본래 천상에서 온 것으로, 사람이 세간에 사는 의미는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을 중국(中國)이라 하는데 즉 중심지국(中心之國)이란 뜻이다.

중국 문자를 한자(漢字)라 하는데, 천상의 문자와 비슷해서 하늘의 뜻과 통한다.

중국어를 한어(漢語)라 하는데 천상의 언어와 비슷하다.

중국 전통 복식을 한복(漢服)이라 하는데, 이 옷을 입으면 마치 하늘의 신선(天仙)처럼 표일(飄逸)해 보인다.

중국인의 사상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중시하며, 중국인의 문화 주체는 유석도(儒釋道)인바 바로 하늘과 통하는 수련의 문화다.

중국인의 주체는 한인(漢人)이고, 민족 이름도 한(漢)이라 부른다. 한(漢)은 본래 은하를 가리키는데,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한인(漢人)에 담긴 뜻은 천상(天上)에서 온 사람이나 또는 대응하는 다양한 성계(星系)에서 온 사람을 뜻한다. 중국 고대에는 또 “천상에 하나의 별이 있으면, 땅에도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구절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지상의 사람은 곧 천상에서 왔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이라 하는데 두 글자를 합하면 곧 성(星)으로 곧 별이 된다. 이는 사람이 천상의 성체(星體)에 대응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중국 역사상 유명한 예언들 중 북송 소강절 선생이 남긴 《매화시(梅花詩)》는 송대 이후 오늘날까지 역사를 정확히 예언했다. 이 시의 첫 구절이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사람이 돌아가고 몇 사람이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이다.

여기서 소강절은 ‘래(來)’라는 하나의 글자로 지상의 사람이 천상에서 왔음을 보여주었고, 또 ‘귀(歸)’라는 하나의 글자로 인생의 의미는 천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예시했다. 일래일귀(一來一歸)로 마치 천기를 남김 없이 누설한 것 같다.

오대산은 또 청량산(淸凉山)이라 불린다. 청량은 또 불교 용어로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 세상의 번뇌가 마치 열독(熱毒)과 같다고 보는데 이 독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욕망과 잡념(雜念)이 있어서 이것들이 한데 섞여 열독이 된다. 사람이 불법(佛法)을 수련하면 이런 열독을 제거할 수 있는데 이를 일러 청량이라 한다. 청량에는 또 번뇌가 없고 내심이 편안하고 청정(淸淨)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불교에서 청량지(淸涼地)가 가리키는 것은 열반의 피안(번뇌가 없다는 의미)을 말한다.

그러므로 강희제의 시에서 “청량해 물건이 없나니(淸凉無物)”가 가리키는 것은 불교 이론에서 사람은 홍진(紅塵 속세) 속에 있으며 올 때도 알몸이고 갈 때도 알몸이라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으로 홍진은 허환(虛幻)한 것이고 부실(不實)한 것임을 알려준다.

“청량해 물건이 없나니 무엇을 소유하랴(清涼無物何所有)”란 구절의 대략적인 뜻은 사람은 홍진 속에서 생생세세 윤회하는데 명리정(名利情)은 몸 밖의 물건(설사 모든 것을 가진 존귀한 제왕이라도)이라 결국에는 텅 비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홍진 속에서 사람이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홍진 속에서 윤회하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오직 열반의 피안(청량지)에 도달하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엽두(葉斗)’란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 북쪽에 위치한 엽두봉을 말하는데, 바로 오대상 정상이다. ‘봉횡(峰橫)’이 가리키는 것은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가 마치 무대처럼 평평하다는 것으로 그래서 오대산이라 부른다. 보살정에서 북쪽의 예두봉을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가로누운 원보(元寶 역주: 중국 고대의 화폐로 금이나 은을 말발굽 모양으로 만든 것) 같은데 즉 한 척의 큰 배(중생을 가득 싣고 피안으로 항해하는 법선)와 같다.

‘법화(法華)’라고 하면 흔히 《법화경(묘법연화경)》이란 불경을 떠올리는데 진리와 지혜를 대표한다. 동시에 ‘법화’에는 다른 한 층의 함의가 있으니 불법(佛法)이 중화(中華)에 널리 전해질 때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로로 누운 엽두봉이 법화(法華)를 묻노라(葉斗峰橫問法華)” 구절은 사람이 홍진 속에서 윤회하는 의미는 바로 중원에서 불법(佛法)이 널리 전해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 때 전해지는 불법(佛法)만이 이 문제에 대해 원만하게 대답할 수 있고, 그 때의 불법만이 진정으로 중생을 가득 싣고 피안으로 항해할 수 있는 법선(法船)이란 뜻이다.

서방의 소크라테스는 인류를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보도록 이끈 동시에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천상에서 떨어진 후 돌아간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알려주었다(소크라테스 시대). 주지하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심한 박해를 받았고 결국 독주를 마시고 죽어야 했다.

오늘날 서방에는 마찬가지로 동방(東方)에서 온 한 각자(覺者)가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며 세인들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생각을 제시했다. 동시에 또 사람이 어떻게 인류가 될 수 있었는지 알려주셨다.

내 생각에 지금이 바로 이 참신한 시대이다! 이것이 “가로로 누운 엽두봉이 법화를 묻는” 시가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