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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창세주인가?

이보(李甫)

【정견망】

누가 창세주(創世主)인가? 언제 우리를 구도(救度)하러 오시는가? 그분이 오셨는가? 그분은 누구신가?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이번 차례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민간의 전설, 국내외 예언, 주요 종교의 경서에서도 모두 이 문제를 담론하는데 그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줄곧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들 예언과 전설 또는 경서에서, 어떤 것은 신(神)은 언제 오시는지[종교에서 말하는 말세(末世) 또는 말법(末法) 말겁(末劫)시기], 신이 오실 때 사회와 종교의 전형적인 현상(어지러운 현상)이나, 그분의 사회적인 신분(승려나 도사도 아니고 제왕이나 장상(將相)이 아닌 평민 신분), 그분이 인간 세상에서 태어나실 곳[동토(東土) 중국] 및 법(法)을 전하기 시작하실 곳을 말하고, 또 어떤 것은 창세주께서 장차 중국에서 서방으로 오셨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구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민족 예언에서는 구도자의 법이 어떤 경로를 따라 그들의 나라(한국)에 전해지는지 신(神)의 제자들이 겪게 될 거대한 마난(魔難)과 궁극적인 구도를 말한다.

또 일부 경서에서는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오실 때의 이름 및 법계(法界)의 호칭 등등 아주 많은 것들을 말한다. 이런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고 또 모두 공개된 자료들이니 여기서 또 언급하진 않겠다. 이런 정보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아마 오래전에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정보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지역, 민족, 언어, 시대적인 차이 및 종교신앙의 영향과 번역 및 전파 과정에서의 변질 때문에 결국에는 사람을 구하는 신(神)의 이름이 달라졌다. 또한 이 일을 이해하는데 일부 편차가 생기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분이 말후(末候)에 오시는 최후의 구도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창세주(創世主)라 부르자.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예언이나 경서의 기록과 오늘날 세상에 나타난 일부 현상들을 관련지어 창세주께서 장차 오시거나 또는 이미 오셨다고 하는데 심지어 최후의 이 구도자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창세주이며 그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본문에서는 이 문제 및 인류와 개인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이나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 이상 언급한 정보 외에 몇 가지 추가적인 단서나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신(神)은 장차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가?

어떤 사람은 신(神)이 오실 때 어떤 상태이고 어떤 놀라운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신의 도래를 말하기만 하면 어떤 이들은 신이 오실 때 반드시 천지가 진동하고 신(神)의 광명이 크게 드러나거나 심지어 공중에 우뚝 선 채 무변(無邊)한 법력(法力)을 펼쳐 손을 내밀기만 하면 구원할 사람들을 하늘로 데려가거나 또는 손을 뒤집는 사이에 나쁜 사람들을 지옥으로 쳐내리고 세인(世人)들이 즉시 무릎을 꿇고 복종할 거라는 등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람의 생각이며 사람이 신의 일을 생각한 것이다.

사실 신(神)은 전에도 오신 적이 있는데 우리는 왜 예전에 신이 어떻게 오시는지 보지 못했는가? 그들이 비록 최후의 그분(창세주)은 아니지만 그들은 최후에 와서 구도하실 신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형식과 유사한 점이 없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는 인간 세상에서 간고하기 그지없는 전도(傳道) 과정을 거쳤고 결국 신도들을 대신해 죄업을 짊어지고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다. 그를 따르던 신도들도 앞 사람이 넘어지면 뒷사람이 이어가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으며 3백 년의 마난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받아들여졌으며, 그제야 예수의 도(道)가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왔을 때도 고생스레 수련하고 도(道)를 깨달은 후 온갖 고생을 겪으며 사람을 구도했지만 당시 세력이 강대했던 바라문교와 다른 외도(外道)들로부터 각종 박해와 탄압을 받아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한 번에 500명의 승려가 죽임을 당한 적도 있고 승단 내부의 분열과 교란도 아주 대단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후에도 모두 다섯 차례의 큰 법난(法難)을 겪었고, 근대에는 또 불교가 철저히 금지된 후 거짓으로 복원되는 등 극심한 파괴를 겪었다.

[역주: 불법은 중국에서 4차례 역사적인 법난 및 중공이 권력을 찬탈한 후 겪은 최후의 법난을 포함해 모두 5차례 법난을 겪었는데 최후의 것이 가장 심각했다.]

왜 신불(神佛)이 사람을 구도하러 올 때 구도받은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신불마저도 마난을 겪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죄업이 있고 도덕 수준이 이미 신(神)의 표준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신이 사람을 구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사상과 도덕 수준을 제고하고 그의 죄업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사람이 미혹 속에서 도(道)를 깨닫고 수행해야 한다. 신의 본래 형상을 볼 수 없고 표면 세간에서 신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수련해야 하는데 즉 미혹 속에서 깨닫고 미혹 속에서 수련해야 한다.

따라서 신이 오실 때 즉시 신통을 크게 드러내 인간 세상 미혹의 상태를 타파할 수는 없다. 인류 미혹의 환경에서만 사람은 신(神)의 도(道)에 따라 수련해서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神)이 사람을 구하는 필요조건이다. 다시 말해 신불(神佛)이 사람을 구도하러 오실 때는 사람에게 도(道)를 전하고 사람이 그의 도에 따라 실천하고 고생을 겪으며 수련해서 지은 죄(업력)를 없애는 동시에 마음을 닦아 사상과 도덕 경지가 제고되어 올라가 천국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구도받을 수 있다.

신불이 아무 조건 없이 온 몸에 업(業)이 가득한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불은 창세주를 포함해, 인간 세상에 오자마자 신통을 크게 드러내 신(神)의 일을 크게 행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인류사회 상태를 변화시켜 도리어 사람을 구도할 수 없다.

하지만 신은 신통을 크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신불의 제자, 인연 있는 사람들, 선량한 사람들이 신이 배치한 길을 끝마치고 구도 받을 표준에 도달해서 인간 세상을 막 떠나려 할 때, 도를 깨닫고 고통스레 수련하는 미혹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 이때야 비로소 신적(神跡)을 크게 드러내고 신(神)의 홍대한 은혜를 크게 드러낼 수 있다. 아마 이때 천문(天門)이 활짝 열리고, 신불이 크게 나타나며, 하늘 수레가 대오를 이루고, 선학(仙鶴)이 줄을 서며, 선악(仙樂 신선의 음악) 연주되고, 구도받은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는 나중에 최후 시각의 일이지, 신이 막 세상에 오셨을 때나 미혹 속에서 구도 받는 과정의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과거 정교(正敎)의 신불이 세상에 와서 도를 전한 경험은, 그들이 비록 최후의 구도는 아니지만, 창세주께서 세상에 오실 때 참조가 될 수 있는데, 역사는 지금 사람들에게 신불을 찾을 수 있는 지침과 지시를 주었다. 즉 인간 세상에서 미혹의 안개를 걷어내고 현실의 진상을 통찰할 수 있게 한다. 각기 다른 종교마다 신불이 세상에 오실 때 구체적인 형식이 다르고 전도(傳道) 방식과 언어가 다르며 각자 종교를 펼쳐낸 형식 역시 각기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진리를 말했고 모두 사람에게 천국에 올라가고 신불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제자와 신도들이 모두 그들이 전한 도(道)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고생을 겪으며 선(善)을 향해 최후에 천국 세계의 표준에 도달하는 바로 이런 길을 걸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할 것은 바로 이 길을 찾아내 창세주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고 최후에 구도 받는 것이다.

또한 특별히 강조할 것은 신불이 오실 때 인간 세상은 영광과 빛이 나며 신통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방과 박해 및 온갖 마난(魔難)을 동반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마난은 범인(凡人)의 눈을 가릴 수 있지만 선근(善根)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진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이자 힌트가 된다.

2. 최후의 구도자는 모든 사람을 구도할 최후 구도자라 반드시 더 높은 법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사람을 구하러 와서 그의 도(道)를 전했고, 석가모니가 사람을 구하러 와서도 자신의 법(法)을 전했으며, 노자는 사람을 구도하러 와서 자신의 도(道)를 남겼다. 또 다른 세상에 온 신들도 각자의 방식을 사용해 사람을 구했다. 그들은 모두 일정 기간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말한 도가 인간 세상에서 체현된 것은 오히려 완전히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후의 구도자인 창세주께서 오실 때 모든 사람을 구도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보다 큰 법리를 말씀하실 것이다. 그분이 구하려는 것은 모든 사람이며 그분이 전하실 도는 모든 사람을 향해야 하기에 국경이나 종교의 울타리가 없고 심지어 아주 높은 지식을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하며, 신분의 제한도 없고 그 어떤 제한도 없어서 누구나 그의 법을 배울 수 있고 누구나 그를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스스로 거절하고 배척하며 알아보려 하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의 일이며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현재 조건에서 그분이 전하는 법은 아마 대중에게 완전히 공개될 것이며, 아마 지금 사람 누구나 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아무런 제한 없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각종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은전이 베풀어져야 한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으며 오직 사람이 스스로 원하는 지 여부만 볼 뿐이다. 진정으로 창세주께서 오신 것에 관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런 것이 정말 존재하는가?

최후의 구도자, 그분은 반드시 모든 사람을 구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큰 범위에서 미혹 속의 사람을 구도하려면 그분은 아마 직접 모든 사람을 대면해 직접 한 사람씩 가르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분의 책을 보고 그분의 법을 배우면 진리를 볼 수 있으며 심령(心靈)에 떨림이 있을 수 있다. 곧 성은(聖恩)을 느낄 수 있으며 수승(殊勝)한 감각이 있고 그분의 도(道)에 이끌릴 것이다. 만약 그분의 도에 따라 배우고 수련할 수 있다면 곧 변화를 체험하고 사상이 승화할 것이며 신체가 청리(淸理)되고 끊임없이 보다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며 기타 각종 초상(超常)적인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다.

만약 마난에 봉착했을 때 이런 고험(考驗)을 정면(正面)으로 인식하고 수련을 견지할 수 있다면 끊임없이 이렇게 관을 넘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보다 큰 성은(聖恩)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곧 최종적으로 그분의 구도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창세주 법력의 체현이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은 사회적으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즉 사람이 일단 그분의 법을 읽고 그분의 문(門)에 들어가기만 하면 곧 아주 견정(堅定)할 것이며 심각한 박해와 다른 각종 비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선량하게 위로 제고하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반면 이렇게 인식할 수 없거나 또는 인간 세상의 집착이나 유혹·편견 등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그런 이들은 기회를 잃을 것이며 영원한 유감으로 남을 것이다.

즉, 우리에게 천국으로 돌아갈 길을 주실 최후의 구도자는 우리 자신이 거부하지만 않으면 우리를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갖추셨다. 우리에게 반드시 구도 받을 의지가 있고 선(善)을 향하려 해야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구도하실 것이다. 사람을 천국으로 이끄는 길은 사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곳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는바, 즉 끊임없이 마난을 싸워 이기고 자아를 완벽하게 해서 최후에 구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창세주께서 세인을 구도하시는 법력의 체현이 아니겠는가? 비록 아직 끝까지 걸어가진 못했을 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고난의 여정 중에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이 대열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부디 정말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과연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비록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선(善)을 향하길 견지하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善)을 권하며,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말후에 우리를 구도하러 오시는 위대한 한 분의 신(불)이 계시는데 모든 사람을 구도하실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구도자를 창세주라 부른다.

창세주께서는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과 보다 넓은 지역에 가서 법을 전하고 도(道)를 말씀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구도하신다.

그분과 그분의 제자(신도)들은 거대한 마난과 박해를 겪게 되지만 그분과 제자들은 이러한 박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롭지만 확고부동한 방식으로 견지하며 또한 계속해서 그분의 도를 전파해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의 도를 알리는데, 아직 선념(善念)이 남아 있고 아직 구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도를 알리거나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예수의 신도들이 겪은 마난, 부처님 제자들이 겪은 일들이 지금 세상에 나타난 박해와 비슷하지 않은가? 이 문제는 여러분이 한번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분은 가장 위대한 진리[불법(佛法), 대도(大道)]를 말씀하실 것이다. 그분이 전하는 진리는 보편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며 전통을 존중하고 전통으로 돌아가 사람의 도덕 수준이 되돌아 올라가게 할 것이다. 보다 고층에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가장 위대한 법리(法理)로 고금을 다 포함하며 보다 높고 보다 심오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그분의 책을 진지하게 읽은 사람들, 그분이 말씀하신 도리를 이해한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믿고 따를 것이다. 반면 그분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이들은 모두 그분의 책을 잘못 읽거나 또는 읽기를 거부하거나 또는 다른 주장을 표준으로 삼아 그분의 학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또 그분의 책을 읽고도 도리어 그분이 말씀하신 진리에 따라 시종일관 견지하지 못하고 대열에서 떨어진 이들도 있다.

이상 제기한 명백한 단서들에 근거해 한번 찾아보라, 지금 현재 인터넷에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공부하도록 끌어들이는 그런 책이 있는가? 있다면 그 책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왜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단호하게 믿을 수 있는가? 이 책은 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왜 본질적으로 생명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향상시킬 능력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불법(佛法)·신도(神道)의 무변(無邊)한 법력(法力)의 체현이 아닌가? 창세주께서 최후에 사람을 구하시는 절세(絶世)의 시도가 아닌가?

고정 관념을 내려놓고,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한번 관찰해보자. 어쩌면 창세주께서 이미 오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분의 제자들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그들과 어깨를 스쳐 지났을 수 있고, 어쩌면 엄동설한과 삼복더위 속에서 당신을 맞이하고 당신을 불렀을 수 있으며, 어쩌면 당신이 잠시 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한번 관찰하고 한번 살펴보고 한번 물어본다면 진상이 바로 당신 앞에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때 관념(觀念)이 바뀌는 것이 바로 당신이 천만 년 동안 기다려온 구도 받을 기연일지 모른다.

과거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신불(神佛)이 세상에 와서 중생을 구하신 것은 몇천 년 내지 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한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그때 사람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불법(佛法)을 얻을 수 있는 기연은 이미 대단히 얻기 어려운 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불과 같은 세상에 있지 못해 애통해하며 장차 이런 기연을 얻기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최후의 구도, 창세주께서 세상에 오시는 것은 아마 항고(恒古)이래 없을 미증유의 일이며 장래에 더는 기연이 없을 것이다. 매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모두 유일하고 한 번뿐인 기회일 것이다.

누군들 그분을 놓치고 싶겠는가? 관념이나 편견에 장애 받지 말아야 한다. 창세주는 누구신가? 그분은 오셨는가? 오셨다면 어디에 계시는가? 이 문제는 한번 물어볼 가치가 있고 찾아볼 가치가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