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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 작품 감상 《견우직녀》: 진정한 사랑으로의 회귀

명량(明亮)

【정견망】

션윈(神韻)은 창세주께서 안배하신 가장 원시적인 이야기를 무대 위에 재현하여 우리가 이야기의 본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2025년 션윈 공연 중 《견우직녀(牛郎織女)》 프로그램은 나에게 지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처음에는 이별의 슬픔을 담은 그 우아하고 은은한 선율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절로 났으며, 동시에 호방하면서도 비장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견우와 직녀가 마침내 함께하게 된 결말을 보며 진심으로 기뻤으나, 내심 깊은 곳에서는 왠지 모를 혼란과 의구심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인간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직녀는 천계의 선녀임에도 천조(天條 천계의 법규)를 어기고 범인(凡人)인 견우와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천계(天界)의 벌을 받아 일 년에 단 한 번 칠석날에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션윈의 해석에 따르면 마지막에 왕모(王母)가 떠나가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 위에서 서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점이 처음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시 공연을 보았을 때, 한 가지 아주 강렬한 염두 하나가 내 심령을 강타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안배로구나!’

이와 동시에 한 구절 법이 떠올랐다.

“일체 시간과 우주 범위 밖에 있는 주불(主佛)은, 중생이야말로 우주가 존재하는 의미라고 여겼다.” (《각지 설법 1》 〈베이징 국제교류회 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우주는 주불의 무한한 자비로 만들어졌다. 우주 안에는 중생에 대한 사랑과 자비로 충만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가 존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우주(舊宇宙)는 이러한 안배를 거듭 뜯어고치고 끊임없이 그것들을 개변시켜, 결국 왕모가 그들을 징벌하고 갈라놓는 결말을 만들어냈다. 구세력에 대해 말하자면 사랑과 자비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가혹한 규칙에 의지해 통치할 뿐이니, 그들이 어찌 창세주의 무한히 자비로운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실 견우와 직녀는 본래 천상(天上)의 신선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세상 사람들에게 남겨줄 하나의 극본을 연기한 것이다. 션윈 무대 위에서 견우는 천신만고를 겪으며 고난 속에서 수련하고, 업력과 사람마음(人心)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해 점차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마침내 최초의 경지로 돌아가 직녀와 재회한다. 이것이 바로 고난을 겪은 후 결국 원만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우주의 거대한 자비를 체현한 것이다.

그러나 구세력은 이 결말을 뜯어고쳐 이야기를 가혹한 징벌로 바꾸어 놓았다. 역사 속의 많은 안배들이 이처럼 왜곡되었다. 예를 들어 션윈 2012년 프로그램인 《금후출세(金猴出世)》를 보면, 여래불이 나타나자마자 손오공은 즉각 깨닫고 곧이어 당승이 도착하자 함께 취경(取經)의 길을 나선다. 오행산 아래 500년 동안 갇혀 지내는 징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세력은 가혹한 징벌을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는 사실 사랑을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고인 물과 같아서 차갑게 굳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어디에 만물을 포용하고 보살필 따스함이 있겠는가? 결국 해체(解體)와 멸진(滅盡 모조리 소멸됨)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정한 사랑으로의 회귀

견우와 직녀가 강제로 헤어지는 장면을 볼 때 내면의 비통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윤회하는 중에 나 역시 이러한 변이된 극본 속의 배역을 맡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구세력이 설정한 징벌이란 줄거리는 연기자에게 심리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며, 심지어 ‘정(情)’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형성하게 하여 수련 중에 많은 고난을 가져다준다.

이번 생에 내가 유독 슬픈 옛 음악(古曲)이나 서정적이고 고풍스런 음악을 즐겼던 것도, 어쩌면 수많은 고통 속에서 마음을 찢는 듯한 배역을 연기하며 점차 그러한 고통에 ‘습관’이 되고 심지어 ‘좋아하게’ 된 것일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일종 변이된 사랑이다.

내가 한때 션윈의 아름다운 결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 자체가 이미 사상적으로 변이된 극본의 영향을 받아 무엇이 바른 이치[正理]인지 분별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불법무변(佛法無邊)이라 가장 깊은 층의 의식까지 직접 도달해, 변이된 관념을 해체하고 깨끗이 제거해 생명을 선천의 본아(本我)로 회귀하게 할 수 있다.

가령 구(舊) 관념이 건드려질 때 나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평하고 화를 내곤 했다. 그러나 주의식(主意識)을 강하게 하여 대법 중의 강대한 에너지로 그것을 제거했을 때, 심신이 가벼워지고 거대해짐을 느꼈다. 마치 세간의 그 무엇도 진정한 나를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이로써 내면은 더욱 넓고 고원(高遠)해졌다. 나는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사심(私心)으로 자신의 감정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타인을 위하는 것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일종 홍대하고 드넓은 사랑이다.

션윈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 사이의 사랑, 즉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을 보았다. 그러나 더 높고 넓은 층면에서 연출된 것은 역시 불주(佛主)께서 중생에게 베푸시는 위대하고 호한한 사랑이다. 공연이 끝난 후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만물을 수호하는 사랑이었다. 마치 호한(浩瀚)한 바다가 정화(淨化)의 힘으로 바다에 흘러드는 수천 갈래 강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는데, 이번에는 저 작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창세주께 대한 끝없는 감사함 때문이었다. 무량한 자비의 에너지가 세포 속으로 흘러 들어와 진정한 사랑의 호한함과 무변함을 느꼈다.

이 ‘멸(滅)’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이러한 ‘사랑’의 상태를 거의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러나 불법무변(佛法無邊)하니 대법은 일체 변이된 요소를 바로잡을 수 있다. 오직 그 생명 스스로 바로잡히길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대법을 수련하면 일체 좋지 않은 요소를 제거할 수 있고 모든 은원(恩怨)의 인연을 화해시킬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구세력이 어떤 안배를 했든지 나는 다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가닥 순결한 마음을 품고 대법 속에서 수련하며 사존의 발걸음을 바짝 따를 뿐이다. 사부님의 자비롭고 위대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홍음 2》 〈대겁을 풀다〉를 공경히 적으며 동수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
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
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
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