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
【정견망 2026년 02월 02일】
고인(古人)은 흔히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欲正其心, 先誠其意)”라고 말했다. 《서유기》 제37회 〈귀왕(鬼王)이 밤에 당삼장을 알현하고 오공이 신통으로 아기를 유인하다〉를 보면, 당승이 밤에 꿈속에서 살해당한 오계국 국왕을 만난다. 놀라 깨어난 후 사도(師徒) 사이에 나눈 대화는 의미심장하며 수행에 대한 시사점이 크다.
삼장이 꿈에서 놀라 깨어나 남가일몽이었음을 알고 급히 불렀다.
“도제(徒弟)야! 도제야!”
잠에서 깬 팔계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무슨 토지(土地) 토지를 찾으세요? 예전에 제가 호걸로 지낼 때는 오로지 사람을 잡아먹으며 세월을 보냈고 비린내 나는 고기를 즐기며 참으로 쾌활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당신이 출가하는 바람에 우리더러 당신을 보호해 길을 가게 합니까! 원래는 그냥 스님이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나를 종처럼 부리며 낮에는 짐을 메고 말을 끌게 하고 밤에는 요강을 들며 수발들게 하는군요! 이 밤중에 잠도 안 주무시고 도제는 왜 또 부르십니까?”
[역주: 중국어로 도제(徒弟)와 토지(土地)의 발음이 비슷하니 팔계가 해음(諧音)을 이용해 당승을 기롱한 것.]
삼장이 말했다.
“도제야, 내가 방금 책상에 엎드려 졸다가 괴이한 꿈을 꾸었구나.”
행자가 듣고는 훌쩍 뛰어 일어나 말했다.
“사부님, 꿈이란 생각에서 오는 법입니다. 당신은 산에 오르기도 전에 먼저 요괴를 무서워하시고, 또 뇌음사 가는 길이 멀어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하시며, 장안을 그리워하며 어느 날에나 돌아갈지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번잡하니 꿈이 많은 것입니다. 이 노손(老孫)처럼 오직 한 조각 진심(真心)으로 오로지 서방에 가서 부처를 뵙고자만 한다면, 꿈조차도 제게 오지 못합니다.”
짧은 대화지만 수행의 길을 걷는 팔계, 당승, 오공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심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팔계가 추구하는 것은 안일함과 편안함이다. 스님이 되더라도 고생하지 않는 스님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심태는 본질적으로 수행을 진정한 자아 승화가 아닌, 세속에서 탈피해 청정함을 구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당승은 ‘서천취경(西天取經 서천에 가서 경을 얻어오는 것)’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커다란 일로 여기기에 늘 곤란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느끼며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난관이 오기도 전에 마음에서 먼저 파문이 일어나 전전긍긍하며, 일단 정말 마난(磨難)를 만나면 오히려 무력하다고 느껴 태연하게 마주하기 어려워한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에 도리어 번뇌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공이 말한 “오직 한 조각 진심으로 오로지 서방에서 부처를 뵙고자 한다[只有一點真心,專要西方見佛]”라는 것은 어떤 경계인가?
필자는 여기서 이는 ‘황타철(黃打鐵)이 염불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주원장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병기(兵器)에 대한 수요가 매우 컸다. 호남 담주(潭州)에 황타철(黃打鐵)이라는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명을 받들어 밤낮으로 병기를 만드느라 고생이 막심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그에게 말했다.
“쇠를 한 번 칠 때마다 염불을 한 번 하고, 풀무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또 염불을 한 번 하시오. 오래 지나면 이 또한 수행이오.”
황타철은 그 말대로 행하며 매일 쇠를 치면서 염불을 하니, 종일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고 오히려 마음속에 가볍고 안온하며 자재함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자 ‘생각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되는’ 경계에 이르러 점점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떠날 때를 미리 알고 친지들에게 일일이 작별을 고하며 자신이 서방으로 왕생할 것임을 밝혔다. 임종 전 목욕재계하고 쇠로 옆에서 또 몇 번 망치질을 하더니, 문득 게송을 읊었다.
딩딩당당, 오래 단련하여 강철이 되었네.
태평한 세상이 가까워졌으니 나는 서방으로 가노라.
叮叮當當,久煉成鋼;
太平將近,我往西方。
외부의 전쟁과 다툼은 세간의 혼란 및 격동과 같다. 사람이 상생상극의 인과(因果) 속에서 업을 짓고 갚는 것, 이것이 사람이라는 층차 생명의 상태다. 그러나 황타철의 염불은 마음을 불성(佛性)이라는 생명의 본원에 안주시키는 것이며, 쇠를 치는 과정은 자신의 마음이 끊임없이 단련되고 정화됨을 상징한다.
거듭되는 단련 앞에서 그가 한 것은 오직 한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확고부동했던 것뿐이다. 이것이 아마도 오공이 말한 그 ‘한 조각 진심[一點真心]’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른바 ‘한 조각’이란 수량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의 순수함을 뜻한다.
당승 사도(師徒)의 취경 길은 바로 천 번의 단련과 겹겹의 마난 속에서 이 ‘진심(真心)’을 찾고 순수하게 하며 견지해 나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길을 걷고 하나의 일을 함에 있어, 만약 최초의 본념과 초심을 지킬 수 있다면 아무리 혼란스러운 환경이라도 흔들 수 없으며, 아무리 실감 나는 환상이라도 미혹시킬 수 없다.
오직 이래야만 시작과 끝을 잘 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