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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는 음식의 맛

신로(晨露)

【정견망】

인간 세상에서 사람 사는 맛 중에 세 끼 식사, 사계절의 정취가 있다. 이 가운데 참된 맛이 있으니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달래준다. 음식은 사람의 식욕을 만족시키고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미식(美食)은 시와 같고 그림과도 같아서 시인에게는 감상의 대상이 되고, 먹는 것은 품미(品味)가 되며, 붓끝에 머물면 풍아(風雅)가 된다.

남송(南宋) 시인 육유(陸遊)는 “농어는 살찌고 줄풀은 연하여 국 맛이 좋고, 메밀은 익고 기름은 새로워 떡 냄새 향기롭다”[鱸肥菰脆調羹美,蕎熟油新作餅香]고 하여 농어국의 신선함과 메밀떡의 고소함을 드러냈다.

청대(淸代) 시인 부증(符曾)은 “계화(桂花) 향 소를 호도에 채워 넣고 진주 같은 쌀을 우물물에 씻는다[桂花香餡裹胡桃,江米如珠井水淘]”고 하여, 하얀 찹쌀 가루에 호도와 계화 소를 넣어 달콤하고 아름다워 군침이 돌게 했다.

청대 문인 엄진(嚴辰)은 “화로를 둘러싸고 밥을 지으며 환호하는 곳에 온갖 맛이 작은 솥 안에서 녹아난다[圍爐聚炊歡呼處,百味消融小釜中]”라고 하여, 친지들이 화로에 둘러앉아 신선로를 함께 즐기며 따뜻한 정과 풍성함이 솥 안에 있음을 묘사했다.

바쁘게 속세를 살아가는 와중에도 맑은 즐거움을 시로 남긴 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소동파의 발자취는 천하에 두루 닿으니, 동쪽으로는 전당에서 서쪽으로는 아미산까지, 남쪽으로는 창해(滄海)에서 북쪽으로는 요녕(遼寧) 접경까지 이르렀다.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음식이 그의 이름표를 달고 북송(北宋)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예를 들면, 동파육, 동파족발, 동파어, 동파두부, 동파복령떡 등 소동파는 중국 음식 문화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소식은 일생 세 번의 좌천을 겪었는데 “자신의 평생 공적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황주, 혜주, 담주로다”[問汝平生功業,黃州惠州儋州]라며 스스로 풍자했다. 눈꽃 같은 우유 거품이 찻잔에 뜨고 나물과 죽순으로 봄날의 쟁반을 맛보는 한가롭고 우아한 정취가 있었기에 소동파는 맛있는 음식으로 자신을 치유했다.

원풍(元豐) 2년 동파는 오대시안(烏台詩案)으로 황주로 좌천되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빈곤해 값싼 돼지고기를 즐겼는데, “스스로 익기를 기다려 재촉하지 않으면 불기운이 충분할 때 고기 맛이 절로 좋아진다[待他自熟莫催他,火候足時他自美]”고 했다.

나중에 또 혜주로 좌천되자 그는 그곳에서 여지(荔枝)와 사랑에 빠졌다.

“해산(海山)의 신선이 내려온 듯 붉은 비단 저고리 안에 백옥 같은 살결[海山仙人降羅褥,紅紗中單白玉膚]”이라며 여지를 아무리 먹어도 질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매일 여지 삼백 알을 먹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영남 사람이 되겠다[日啖荔枝三百顆,不辭長作嶺南人]”고 과장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소성(紹聖) 4년 소동파는 62세의 고령에 다시 더 척박한 담주로 좌천되었다. 황량한 곳에 처하여 먹을 고기가 없고 병들어도 약이 없으며 거처할 집도 없고 나설 때 벗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학당을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많은 이들이 백 리 길을 마다치 않고 배움을 청하러 왔으며 전례 없이 진사(進士) 급제자까지 나왔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자 소동파는 들짐승을 잡았는데, 살찐 굴과 개구리에도 금세 흥미를 느꼈고 맛이 아주 좋다고 했다.

즐거움이 꼭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다. 음식으로 즐거움을 삼고 고생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며, 소박하고 담백한 삶 속에서도 내면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인간 세상의 참맛은 담백한 즐거움에 있다[人間有味是清歡]”는 한 마디는 소동파의 생활 철학을 잘 보여준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편안하니, 아무리 큰 격동과 기복이 있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음이 편안한 곳이 바로 고향[此心安處是吾鄉]”이라는 그의 낙관적이고 활달한 기상은 아마 정적(政敵)들조차 감탄하고 감복했을 것이다.

“젓가락질마다 입에 맞고 숟가락마다 배를 채운다[箸箸適我口,匙匙充我腸]”고 한 백거이(白居易) 역시 또 다른 미식의 대가였다. 당 헌종 원화(元和) 10년 백거이는 강주(江州) 사마로 좌천되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배를 타고 남하했는데, 벼슬길은 험난하고 마음은 나른했으나 시적인 낭만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뱃머리에 화덕 있어
쌀밥 짓고 붉은 잉어 삶으니,
배불리 먹고 일어나 춤을 추고
가을 강물에 입을 씻는다,
평생 은둔하려던 뜻을
오늘 이곳에 와서 펼친다”라고 노래했다.

영욕에 상관없이 배불리 먹고 마시면 그만이라는 듯 경치를 감상하며 시를 지었다.

당 목종(穆宗) 장경(長慶) 2년 백거이는 중서사인(中書舍人)에서 항주(杭州) 자사로 발령받아 부임하는 길에 강주(江州)에 들렀다. 똑같은 강물 고기와 쌀밥이었지만 처지에 따라 경험이 달랐다.

“가을 물에 붉은 쌀을 씻고
아침 안개 속에 흰 물고기 삶아
한 끼 배불리 먹으면 밤까지 든든하고,
한 번 누우면 아침까지 편안히 잠든다”

秋水淅紅粒,朝煙烹白磷
一食飽至夜,一臥安達晨

그는 아침 일찍 배불리 먹고 온종일 걱정 없이 지내며 다음 날 새벽까지 편안히 잠을 잤다.

“일 년 뒤 정사를 돌보고
삼 년 뒤에는 물러나리라 생각하며
마침내 창랑의 물에
갓끈 먼지를 씻으리라”

期年庶報政,三年當退身

終使滄浪水,濯吾纓上塵”

3년 후 은둔하면 다시 창랑의 물을 찾을 계획을 세웠다.

당 무종(武宗) 회창(會昌) 2년 백거이는 형부상서로 정년퇴직하여 무사히 관직 생활을 마쳤다. 노년에 집에 거하며 음식이 담백해졌지만 가장 좋아하는 생선과 쌀밥은 빠지지 않았다.

“방어 비늘은 눈처럼 희고
쪄서 구울 때 계피와 생강을 더하며,
쌀밥은 꽃처럼 붉고
새로 만든 우유 즙을 부어 조화롭게 하네”

魴鱗白如雪,蒸炙加桂薑
稻飯紅似花,調沃新酪漿

단순한 생선과 밥이건만 백거이의 붓끝에서 몇 번이고 다른 풍채로 나타났으니, 풍부한 인생 경험에 활달하고 초탈한 심경이 더해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치 그의 시에서 드러낸 것과 같다.

“삶과 죽음에 옳다 그르다 할 것 없으니
통달했구나 통달했어, 백락천(白樂天)이여!”

세월이 유유히 흐르는 동안 미식은 사람을 즐겁게 했고, 매 끼 식사에는 늘 정이 깃들고, 시고 달고 짜고 매운 맛으로 시를 썼다. 만족할 줄 알아 즐거움을 찾고 처한 상황에 따라 편안히 지내니, 비록 벼슬길이 험난하고 운명이 기구할지라도 별빛처럼 빛나는 성취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렇게 문호들의 시사(詩詞) 가작들이 쏟아져 나와 후세를 비추고 천고에 전해진다. 세월을 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인생 어딘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