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한췌진 (13): ‘대일통(大一統)’과 ‘대통일(大統一)’ 의미 변천

왕사미

【정견망】

《춘추(春秋)》는 현재 통상적으로 유일하게 전해 내려온 노나라 《춘추》를 가리키며, 한조(漢朝)에 이르러 오경(五經)의 하나로 존숭받았다. 《춘추》는 공자가 노나라 사관이 편찬한 사서를 바탕으로 새로 개정한 것으로, 노 은공 원년(기원전 722년)부터 노 애공 14년(기원전 481년)까지 242년간의 역사를 기술했다. 후대 사람들은 책에 포함된 시대를 ‘춘추시대’라고 부른다.

‘대일통(大一統)’이라는 표현은 《춘추》의 주석서이자 ‘춘추삼전(春秋三傳)’ 중 하나인 《공양전(公羊傳)》에서 나왔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책의 저자는 자하(子夏)의 제자이자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 공양고(公羊高)라고 한다. 이는 《춘추》 은공 원년 첫 구절의 여섯 글자인 “원년춘 왕정월(元年春,王正月)”에 대한 주석 중에 나타난다.

【원년이란 무엇인가? 군주가 시작하는 해이다. 봄이란 무엇인가? 한 해의 시작이다. 왕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문왕(文王)을 말한다. 어찌하여 먼저 왕을 말하고 나중에 정월을 말했는가? 왕의 정월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왕의 정월이라 말하는가? 대일통(大一統)이다.】

그렇다면 이 단락에 나오는 ‘대일통’에 함축된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한대의 저명한 공양학자 하휴(何休)가 주를 단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註疏)》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統)이란 시작이며,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대저 왕이란 처음으로 천명을 받아 제도를 고치고 천하에 정교(正敎)를 베푸니, 공후(公侯)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산천으로부터 초목과 곤충에 이르기까지 정월(正月)에 매이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정교의 시작이라 한다.

소(疏)에서 이르기를, 공은 어찌하여 즉위를 말하지 않았는가? 주(注)에서 이르기를, 문공(文公)을 근거로 즉위를 말한 것이다. 즉위란 한 나라의 시작이다. 정사는 시작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므로, 《춘추》는 원(元)의 기운으로 하늘의 끝을 바르게 하고, 하늘의 끝으로써 왕의 정사를 바르게 하며, 왕의 정사로써 제후의 즉위를 바르게 하고, 제후의 즉위로써 국경 안의 다스림을 바르게 한다. ……

왕이 하늘을 받들어 호령(號令)을 제정하지 않으면 법도가 없으므로 먼저 봄을 말한 뒤에 왕을 말한 것이다. 하늘이 그 원(元)을 깊이 바르게 하지 않으면 그 교화를 이룰 수 없으므로 먼저 원을 말한 뒤에 봄을 말한 것이다. 다섯 가지가 같은 날에 나란히 나타나 서로를 필요로 하여 일체를 이루니, 이는 천인(天人)의 큰 근본이요 만물이 매인 바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위 구절의 대체적인 의미는 ‘통(統)’에 함축된 의미가 왕이 정교를 베푸는 시작과 총체적인 연결을 통해 ‘천인의 대본이며 만물이 매인 바’가 된다는 것이다. “일(一)이 변해 원(元)으로 되니, 원이란 기(氣)이다. 형체 없이 일어나 형체가 있는 것으로 나뉘어 천지를 조성하니 천지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위로는 매인 바가 없고 봄으로 하여금 그것을 잇게 한다.”

“명왕(明王)은 마땅히 하늘을 계승하고 원(元)을 받들어 만물을 양성해야 함을 밝힌 것이다.
소(疎): 봄이란 무엇인가?
주(注): 홀로 ‘왕’의 위에 있으므로 알지 못함을 가정하여 물은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왕의 위에 ‘형체 없이 일어나는’ ‘천지의 시작’인 ‘원’이 있고, 또한 위로 연결된 ‘봄’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하늘을 계승하고 원을 받들어 만물을 양성하는 것’일 뿐이며, 인류 사회 차원의 ‘인도(人道)의 시작’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명왕(明王)의 정교는 모두 천도(天道)가 세간에 나타나는 일종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춘추는 원의 기운으로써 하늘 끝을 바르게 하고, 하늘의 끝으로써 왕의 정사를 바르게 한다.” 이로 보건대 진정한 명왕의 정치는 왕이라는 사람의 측면에서 임의로 행하는 표현이 아니라, 위로 천도(天道)를 계승해 세간의 세월 변화와 만물 번식의 유지가 되는 것이다.

《관자·병법(兵法)》에서는 “하나에 밝은 자는 황(皇)이고, 도를 살피는 자가 제(帝)이며, 덕에 통달한 자는 왕(王)이고, 계책으로 군사적 승리를 얻는 자가 패(覇)이다”라고 했다.

“황(皇)이란 빛나는 것이다. 성대한 덕이 빛나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한대 채옹의 《독단(獨斷)·권상》)”

제(帝)는 덕이 천지와 합치되어 하늘을 본받고, 왕(王)은 인의(仁義)를 받들어 땅을 본받는다. 왕 이후의 패자(霸者)는 병법과 계책을 빌려 승리를 얻는 자들이다. 실제로 천하의 상태도 총체적으로 연결하는 자의 도덕 경지와 직접적으로 대응한다.

《좌전·선공 삼년》에는 ‘초왕문정(楚王問鼎)’이라는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초 장왕 8년(기원전 610년), 초 장왕이 군대를 이끌고 중원을 도모하고자 주 왕실의 경계에 이르렀다. 주 정왕은 초나라 군대의 기세가 좋지 않음을 보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대부 왕손만을 보내 위로하게 했다. 초 장왕은 왕손만에게 주 왕실에 있는 구정(九鼎)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왕손만은 초 장왕이 솥을 묻는 의도를 간파하고 단지 “덕에 달려있지 솥에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즉, 한 왕조의 흥망은 덕(德)에 있는 것이지 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장왕은 무례하게 “그대는 구정을 가로막지 마라! 초나라 군사들이 전장에서 부러뜨린 창끝만으로도 구정을 주조하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초나라의 무력이면 충분히 왕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왕손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밝은 덕에 복을 내리는 것에는 머무는 바가 있습니다. 성왕께서 겹욕(낙양)에 솥을 정할 때 점을 쳐보니 30대를 전하고 700년을 누린다고 했으니 이는 천명이 정한 것입니다. 주(周)의 덕이 비록 쇠했다 하나 천명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鼎)의 무게는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유덕한 자에게 복을 내리며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의미이다. 성왕이 구정을 안치할 때 이미 점괘가 나왔으니 이는 천명이다. 지금 주나라의 도덕이 비록 쇠락했어도 천명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감히 그 권위를 넘볼 수 없다는 말이다. 장왕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무안해져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삼국시대 하안(何晏)이 찬한 《논어주소·요왈(堯曰)제이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疎)정의(定義)에 이르기를, 이 편은 이제(二帝 요·순)와 삼왕(三王 하·상·주 왕조의 시조) 및 공자의 말을 기록해 천명과 정교의 아름다움을 밝히니, 모두 성인의 도(道)로 장래에 교훈을 남길 수 있다. 때문에 예전의 여러 글들은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요순 이제로부터 하상주 삼왕에 이르기까지 도(道)와 덕(德)의 층차는 서로 달랐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 쟁패와 끊이지 않는 전쟁, ‘대일통’의 예악붕괴는 주 왕실의 덕이 쇠퇴했음을 반영한다.

진시황이 무력으로 육국을 통일하여 ‘대통일(大統一)’을 실현한 것은 하늘의 운수임과 동시에 인류 사회가 이 시기의 도덕 상태에 도달했을 때 나타난 표현 형식이다. 무력을 기초로 세워진 ‘대통일’과 도덕적 연결을 기초로 한 ‘대일통’은 전혀 다른 두 역사 발전 단계의 산물이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 함축 의미가 강한 ‘대일통’ 개념을 사용해 집권 전제의 ‘대통일’ 체제를 지칭하곤 했으며, 그 의미를 왕권 통일, 정치 통일, 사상 통일 등 통치 기조의 함의로 대체해 버렸다.

《시경·소아·대전(大田)》에서는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 비가 솔솔 내리네. 우리 공전(公田)에 내리고 내 사전(私田)까지 적시네”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삼왕 시기에 시행된 정전제(井田制)의 등장은 공전과 사전의 구분을 가져왔고, 이로부터 ‘공(公)’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싹트게 되었다. 이는 더 이상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모두의 것이다)’의 모든 천하 사람을 뜻하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귀족이나 통치자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백성의 사사로움을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백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의된 ‘공(公)’은 개개인의 사사로움에 상대하여 국가 등 정치적 정당성의 고지를 점령했다. 맹자는 “인을 해치는 자를 도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적이라 하며, 잔인하고 도적질하는 자를 보잘것없는 사내[一夫]라고 한다. 보잘것없는 사내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맹자·양혜왕하》)”라고 했다.

이는 맹자의 민본(民本) 사상을 나타냄과 동시에 통치자인 걸·주와 백성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을 반영한다. 따라서 삼왕(三王) 시기 각 왕조가 끝날 때마다 도덕이 쇠미한 단계에 처했고, ‘대일통’이 점차 미끄러져 내려가는 특징을 보였다.

역사의 긴 강물 속에서 요순의 선양(禪讓)은 천고의 미담이 되었고, 사람들의 사상 깊은 곳에는 줄곧 “성대한 덕이 빛나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라는 ‘대일통’ 천하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인류 사회의 도덕이 하락한 이후의 집권 전제 통치하에서는 온 세상에 위엄을 떨치는 권위에 대한 심리적 쏠림이 섞이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공산 사악주의의 독소가 침식할 수 있는 틈을 주었고, ‘일대이공(一大二公 역주: 모택동이 인민공사를 만들 때 주장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공유화 수준이 높다는 의미)’이라는 거짓 개념에 미혹되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강권 통치하의 ‘대통일’이라는 쇠사슬을 천지와 덕이 합치되는 ‘대일통’의 성덕(聖德)이 널리 비치는 것으로 오해해 기대를 걸게 했으며, 심지어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호랑이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만들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중국 역사에는 비할 데 없이 찬란한 문화유산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인류의 말법말겁(末法末劫) 시기인 마지막 때에 중국 대륙은 여전히 새벽이 오기 전의 어둠 속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 역사의 대극(大劇)이 걸어온 필연적인 경로이다.

“수천 번 다듬고 쪼아 깊은 산을 나오니,
거센 불길에 타는 것도 예사로다.”

불길 속에서 단련되어 나오는 것은 진금(眞金)이고, 씻겨 나가는 것은 재이다. 이것이 또한 중화민족의 성스러운 인연이자 복이다. 우담바라는 이미 피어났고, ‘형형생색 온갖 꽃들이 만발한’ 그 봄날의 빛이 곧 드러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