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객(長袖客)
【정견망】

이른 아침의 한 줄기 엷은 안개 속에서, 찻향은 언제나 가장 먼저 깨어난다.
뜨거운 물이 잔 속에 주입되면, 말려 있던 찻잎이 서서히 펴지며 침전하고 뜨는 사이에, 마치 한 단락의 길고도 차분한 여정을 호소하는 듯하다. 어떤 이는 한 잔의 차에서 달고 씀을 품평해 내고, 어떤 이는 한 잔의 차 속에서 세월을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차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단지 그 맛 뿐만 아니라 그것의 일생 자체가 본래 하나의 성장과 승화에 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찻잎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그저 한 조각의 신선하고 어린 잎사귀일 뿐이다. 비취빛으로 푸르고 부드러우며, 태양 빛과 이슬을 목욕하여 보기에는 평범하고 기이함이 없다. 만약 줄곧 가지 끝에 걸려만 있다면, 그것 역시 한 조각의 잎사귀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채취된 이후, 한 차례의 환골탈태가 곧 시작된다.
살청(殺青)은 고온의 불에 굽는 것이고
유념(揉撚)은 반복되는 압착이며,
발효(發酵)는 마냥 긴 기다림이고,
홍배(烘焙)는 최후의 수련(淬煉)이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공정을 거치며, 신선하고 어린 녹엽은 점차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불에 구워졌고, 비벼지고 비틀어졌으며, 반복해서 단련되어 최종적으로 한 조각의 마르고 말려진 찻잎으로 변한다.
만약 찻잎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혹시 그것 또한 “왜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가?”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잔인해 보이는 과정 속에서, 그것은 잎에서 차로의 승화를 완성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차 만들기가 끝났을 때 그것의 향기는 여전히 완연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은 한 주전자의 끓는 물을 만난다. 팔팔 끓는 물에서 우려내면에서, 그것은 천천히 펴지며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향기를 풀어내고, 자신에게 있는 가장 진실한 맛을 사람에게 바친다.
젊었을 때, 사람은 모두 막 자라난 어린 잎사귀와 같아서 이상을 품고 동경을 품으며, 또한 아직 세상일을 겪으며 마멸되지 않은 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영원히 바람이 온화하고 햇볕이 맑을 수는 없으니, 오해와 실패, 상실과 억울함, 곤경 속에서의 발버둥, 기나긴 세월 속에서의 기다림은 모두 많은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많은 생명 속에서 가장 진귀한 품질은, 왕왕 바로 이러한 경험 속에서 서서히 생성되는 법이다.
비바람이 없다면 사람은 무엇이 굳게 지킴인지 알기 어렵고, 상실이 없다면 사람은 무엇이 진소중한 것인지 알기 어려우며, 마난(磨難)이 없다면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기 어렵다.
이는 마치 고인이 말한 바와 같다.
“보검의 날카로움은 연마에서 나오고, 매화의 향기는 고한(苦寒)에서 오도다.”
(寶劍鋒從磨礪出, 梅花香自苦寒來.)
옥을 만들려면 쪼아야(琢) 하고, 철을 단련하려면 두드려야(鍛) 하며, 매화는 추위를 겪어야 향기롭고, 보검은 갈아야 날카롭다. 천지간의 많은 아름다운 사물은 왕왕 한 차례의 수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마멸과 단련이 반드시 생명의 원수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용광로와 같아서, 들뜸과 집착(執著)을 녹여 버리고 순정(純淨)함과 진실함을 남긴다.
많은 사람이 순조로울 때는 특별한 곳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역경(逆境)이 도래할 때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하게 하는 용기, 선량함과 흉금을 보여 준다. 가장 버티기 힘들었던 그 세월은 왕왕 생명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눈앞의 끓어오름과 기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찻잎이 뜨거운 물 속에서 자신을 펼치듯, 사람 또한 세월 속에서 자신을 완성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한 잔의 차를 읽어낼 때, 어쩌면 그것이 서술하는 바가 결코 단지 차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의 이야기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천지간의 만물을 바라보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며, 구름이 모이고 구름이 흩어진다. 산천초목과 봄·여름·가을·겨울이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다.
한 송이 꽃에는 한 송이 꽃의 언어가 있고, 한 조각 구름에는 한 조각 구름의 시의(詩意)가 있으며, 한 잔의 차에도 한 잔 차의 계시가 있다.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에게 생명의 규칙과 천지의 지혜를 호소하고 있다.
원래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다 그것이 온 뜻이 있고, 천지 만물은 모두 법언(法言)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창세주(創世主)께서 인간 세상에 남겨 두신 걸작이며, 또한 세인을 향해 써 내려간 한 부 한 부의 글자 없는 천서(無字天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