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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법의 수승함을 체득하다

대법음악과 대법제자의 음악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동수를 격려한 경험

글:자미(紫薇)

【정견망 2005년 12월 9일】
사부님의 신경문 《음악창작회의에서의 설법》을 읽고, 나는 몇 년 전의 일부 경험을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국내에서 박해가 가장 엄중하던 시절 대법음악은 일찍이 내게 내심의 평정과 용기를 주었으며 진상을 알릴 때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나는 또 이런 음악을 통해서 노교소라는 엄혹한 환경 속에서 동수들을 고무하고 격려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음악을 듣고 부르다보면 법에 대한 나의 이해도 깊어졌고 나로 하여금 더욱 완정(完整)하게 사부님께서 대법을 전하신 과정과 의미, 대법의 위력을 깨닫게 해주었다.

2000년 사악의 박해로 인해 나는 일찍이 중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나는 요양하던 기간에 침대에 누워 할 일이 없을 때면 《보도(普度)》를 흥얼거리곤 했다. 나는 비록 전에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박해 전에는 《보도(普度)》를 들은 적도 많지 않았지만 그러나 중상을 입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나를 가지해주셨고 나는 점점 더 많은 부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결국 《보도(普度)》를 기본적으로 완전히 콧노래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책이 없었기에 《보도(普度)》와 《홍음》소책자가 내 법공부의 주요부분이 되었다. 나는 원래 악보를 읽을 줄도 몰랐지만 그 며칠 동안 《보도(普度)》를 부르는 과정에서 약간의 지혜가 열려 갑자기 악보를 듣고 음표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나는 가창곡 악보를 만들었다. 저 유유하고 양양한 대법음악은 이렇게 나와 함께 수련 중의 가장 어려운 날들을 넘겼다.

2001년 나는 집을 떠났다. 그때에 보다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는 것을 고무하고 격려하기 위해 나는 악보를 써서 인쇄하여 동수들에게 주었다. 우리는 함께 노래했는데 노래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직장 친목회에서 반드시 《보도(普度)》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직접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보다 이것은 쉽게 동수들의 두려운 마음이라는 장애를 내려놓는 첫걸음이 되었다. 어떤 때는 노래를 부르고 부르다가 나 역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는데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이 음악 속에서 저는 사부님의 홍대한 과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최후의 고조에 가면 마치 우리 지금의 정법시기를 방불케합니다. 여기까지 부르면 저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 나는 몇몇 동수들과 함께 아주 먼 곳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는데 가는 길에 늘 《보도(普度)》를 불렀다. 어떤 때 모두들 조용히 차를 기다리면서 주변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특별한 화제가 없을 때 나는 아예 《보도(普度)》를 불렀다. 마치 스스로 즐기는 것 같지만 곧 속인들의 주의를 끌게 되고 그들은 내게 묻는다.

“당신들은 음악을 하는 분들입니까?”

“아닙니다. 듣기에 좋습니까?”

“좋습니다!”

“이것은 파룬따파 음악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2001년 연말에 나는 불법으로 체포되어 조견처(調遣處)로 끌려갔는데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즐거움이라곤 전혀 없었다. 어느 한번은 노동을 시키는 대신 반(班)원 모두를 한곳에 모아놓고 경찰이 “개조가”와 당가를 부르게 시켰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모두 부르지 않자 반장이 조급해져서 말했다.

“우리가 당당신들 파룬궁 때문에 함께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아십니까? 오늘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풀기가 쉽지 않은데 당신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경찰이 지나가면서 우리 반만 조용하다고 벌을 받게 됩니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곤란해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원용하지 못했음을 느꼈다. “내가 한번 불러 볼께요.”라고 했다.

반장은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에 나는 가볍게 《보도(普度)》를 불렀는데 막 전주(前奏)를 다 부른 순간 반장이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의 노래는 어째서 가사가 없고 전부 멜로디만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수들을 보았다. 모두들 기뻐하면서 일부는 함께 두어 구절을 따라했는데 사람들을 보니 모두 듣고 알았다. 나도 반장의 문제제기에도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잠시 후 반장도 안정되었다. 유양한 곡조가 반 분위기를 상화롭게 만들었다.

나중에 나는 또 다른 반으로 옮겨가서도 여전히 《보도(普度)》를 불렀다. 반 내부는 늘 명절 같았다. 내가 나온 이후에도 그 반장은 여전히 내 노래를 잊지 못하면서 “자미가 부르는 그 노래는 정말 듣기가 좋아.”라고 했다. 어느 반에 가든지 나는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보교(普敎)들도 대법음악 중에서 대법이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2002년 나는 노교소에 감금되었다. 당시 노교소의 환경은 아주 험악하여 나는 동수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자면 오로지 법을 사용해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은 빈번한 수색과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대법제자들로 하여금 보다 큰 손실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내가 여러분들에게 법을 전할 때도 모두 머리 속으로 기억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노교소에서 감금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고무함을 발견했는데 어떤 노래든 상관하지 않았으며, 거의 매 사람마다 두꺼운 악보를 베껴서 가지고 있었다. 이에 나는 《보도(普度)》 악보를 모두에게 써서 주었고 모두들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경찰도 여러 사람들이 쓴 것이 무슨 노래인지 보아내지 못했다. 음악은 내가 서면의 형식으로 대법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후에 나중에 들어온 동수가 내게 알려주었다. 지금 정견망에 대법제자가 쓴 노래가 있다면서 내게 《파룬따파 하오》와 《득도》등 대법가곡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런 대법음악의 악보들을 써서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경찰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동수와 교류하면서 말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보도》와 《제세》두 곡은 사부님께서 대법음악이라고 하셨으니 바로 법(法)이고 대법제자들이 창작한 그런 음악들은 바로 명혜망에 발표된 대법제자들의 좋은 문장입니다.”라고.

노교소 안에서 이전에 들어온 사람이건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건 모두 유력하게 동수들을 고무 격려하였고 미혹에 빠진 사람에게 정념을 계발하게 하고 견정(堅定)한 사람에겐 보다 견정하게 했다.

특히 대법음악을 말하자면, 노교소 안에서 나 역시 동수들에게 얼마나 많이 《보도》를 불러주었는지 모른다. 내가 노교소를 떠나기 전에 한 차례 기회를 통해 또 한 동수에게 《보도》를 불러주었다. 부르는 과정에서 그녀는 몇 번이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중단했다. 기쁘고 또 격동되어 말을 하고 싶으면서 또 내게 계속 부르라고 손짓을 했다. 이 동수는 바로 줄곧 천목이 열려 있었는데 내가 노래를 다 부르자 말했다.

“장(場)이 너무 좋았어요. 방안 이쪽부터 저쪽까지 황금색 광환으로 이뤄진 벽이 생겼는데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황금색을 본적이 없어요. 또 당신 노래가 고조될 때면 장이 더욱 강한데 황금색도 더욱 예뻐졌어요!”

나는 여기서 비로소 왜 노교소에서 《보도》를 부르면 모두들 눈물을 흘렸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 확신을 갖게 만들었는데 바로 대법음악은 법이라는 것이다! 법의 위력은 당연히 이렇게 큰 것이다!

대법음악 중에서 나는 매우 수승(殊勝)한 법의 내포를 깨달을 수 있었지만 말로 표현하고자 하니 더욱 어렵다. 나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이렇게 아름다운 대법음악–이렇게 진귀한 법을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발표시간 : 2005년 12월 9일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5/12/9/348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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