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실제 수련 중에서, 어떤 때 우리는 문제에 부딪치면 직접 가서 마주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문제를 정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돌아간다.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마음을 키우게 되어 부딪친 어려움과 좌절을 “자연현상”으로 여기고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여기는바, 이는 이미 사악의 배치를 묵인하고 그것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사람의 기점에 서서 대법일을 하고 사람의 기점에서 법을 인식하고 순조롭지 못한 일에 부딪치면 또한 자신은 그것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것을 잃으려고 한다는 것을 표시한다. 틀린 것이 아니다. 잃는 것은 수련의 승화이지만 이러한 내려놓음은 회피이고 소극적인 것으로서 누락이 있음이다. 사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은 바로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치면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는 반드시 잘 해야 하며 이는 미래의 사람들에게 참조하도록 주는 것이다. 가서 해결하지 않음은 바로 근본상에서 사람의 관념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병이 있는 것과 같이 그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뿌리째로 뽑아버려야만이 비로소 그것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에돌아가고 오게 되며 동쪽으로 한번, 서쪽으로 한번, 마치 병이 있어 약을 먹는 것과 같이 단지 눈앞과 표면의 것을 해결하면 병의 뿌리는 오히려 뽑아내지 못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인류를 다시 양성하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세계적으로 각종 사회문제가 나올 대로 나오고 도처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류는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원인을 찾을 줄 모르고 도덕이 부패된 후, 무서운 인심이야말로 비로소 사회문제의 독근(毒根)임을 보지 못하고 늘 어리석게 사회의 표현에서 출로를 찾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자신에게 만든 일체, 이른바 출로란 바로 인류가 자신을 봉폐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더욱 출로가 없고 이에 따라 나온 새로운 문제는 더욱 잘못된 것임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어 아주 어렵게 또 조그마한 공간을 찾아내고 이에 따라 새로운 조치를 취하므로 남았던 이 조그마한 공간을 또 다시금 봉폐시킨다. 오래 되풀이하면 포화(飽和)에 도달하여 더는 출로가 없게 마련이라, 봉폐된 이외의 진상을 보지 못한다.”
아주 많은 문제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사람의 관념 속에서 걸어 나올 것을 필요로 한다. 본질상에서 변화되어 심태가 철저히 돌아서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이며 사부님의 끝없는 법력도 원용해 줄 것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잘 배우고 잘 하는 전제 하에서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음을 믿지 않고 우리의 환경이 더 좋게 변할 수 있음을 믿지 않으면 바로 대법을 믿지 않고 대법이 일체를 개변할 수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에서 사람의 경직된 사유방식을 타파해야 한다. 관념에서 철저히 개변되었다면 법리상에서 분명해지고 패물(败物)은 멸하고 광명이 나타나는바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과 그 불도신은 조급할 뿐 모두 방법이 없게 된다.
아주 간단하다. 바로 일념지차로서 정념이 충족하면 관념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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