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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 수련(修煉)과 혼인(婚姻)·가정(家庭)

글 / 북미대법제자

[정견망 2003년 10월 13일] 이번에 나는 체험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주요원인은 내 자신이 수련에서 비교적 잘 수련하였다고 여기는 상태와 언제나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내 수련 중의 일부 체험을, 일부 교훈일지라도 여실하게 여러분들과 한번 교류한다면 여러분들의 수련에도 다소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에 텍사스주의 작은 법회에서 나는 자신이 개인적인 혼인과 가정의 시련에 대한 인식을 교류하였다. 나는 오늘 이 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수련 속에서 점차적으로 성숙함에 따라, 법리에 대하여 일부 더 깊은 인식이 생김에 따라 시련에 대한 이해 역시 다소 다르게 변하였다.

2년 전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비록 지금에 와서도 심정은 여전히 아주 무겁게 느껴진다. 당시 아내는 나에게 이혼을 제기하였다. 아내가 이 요구를 제기하기 전에 우리 사이의 모순은 표현형식상에서는 마치 내가 본 지역의 홍법(洪法)활동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시간과 정력, 재력에서의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바치는 것에 연관된 듯하였다. 그 당시, 나는 매 주말마다 거의 집에 없었고 크고 작은 활동에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어떤 때는 차를 몰고 아주 먼 변두리 도시에 가서 홍법반을 열었지만 나 자신은 이에 피곤하지도 않았고 즐거웠다. 우리 도시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절대다수 수련생들의 집에서 부부 중 한 사람만 수련하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특별한 현상은 가능하게 미래의 수련에, 이 방면에서 비교적 전면적인 참조를 제공한 것일 수 있다. 가정방면에서 오는 시련을 마주하고 당시 나의 표현은 당연히 비교적 부정적인 예에 속하였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는 가정의 제지를 무시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서슴없이 나아가 각종 대법활동 속에 투입한 것이 내 수련상태가 좋은 체현이라고 여겼다. 마음 속으로, 언어 상으로 가정의 화목을 수호함에 비교적 치중하는 수련생에 대하여 조금 불만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이 1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가정모순 속에서 늘 진정으로 안을 향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찾지 못하였으며 모순 속에서 늘 자신의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항상 아내와 속인과 같이 다투었다. 마음 속으로는 또 자신의 문제를 위하여 구실을 찾아서 아내는 속인이라고 여기며 그녀가 나에게 시련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내가 대법에 대하여 단호한가 단호하지 않는가를 고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나의 인식은 사실 아주 치우친(片面) 것이다. 자신에게 오랫동안 시련이 있게 된 것은 사실 내가 오랫동안 어느 방면에서 누락이 있었지만 또한 진정으로 안을 향하여 찾기를 거부함으로서 조성된 것이었다.

주위의 동수들이 나의 혼인문제에 대하여 일부 부동(不同)한 의견을 표시할 때,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잘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음 속으로 그들에 대한 원망이 솟아올랐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당신들이 모두 더 많은 시간을 대법활동에 투입시키고 모두들 더 주동적으로 일부 일들을 나눠서 도맡았다면 우리 집안의 시련이 이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당신들이 대법을 위하여 더 많이 기여하지 않으려 하였기에 내가 집안의 겹겹의 반대(阻力)를 무릅쓰고 본래 당신들이 감당해야 할 가정압력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은 나한테 어려움이 생긴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감격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를 원망하는가? ”
바로 이렇게 나는 이런 치우치고 고집스런 태도를 지니고 부동한 의견을 밖으로 밀었다. 나는 착오적으로 대법을 위하여 일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가를 수련경지의 표준으로 삼았다. 대법을 이탈한 이런 인식 역시 크고 작은 방면에서 다른 동수들을 억눌렀고, 그들로 하여금 나와 똑같은 견해를 지닌 동수들로 부터 오는 일종 무형의 압력을 느끼게 하였다. 지금 일부 방면이나 일부 지역에서 당시 내가 가졌던 이런 착오적인 인식이 아마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여러분들이 모두 중시하여 아울러 법리상에서 똑똑히 인식하기 바란다.

우리 집안의 모순은 또한 끝내 하나의 극심한 정도로 발전(演化)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내는 갑자기 집을 나가서 별거(別居)를 제기하였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당시 마음 속으로 사실 아주 크게 놀랐다. 그러나 마음 속의 법리(法理)에 대한 편면적인 이해는 또 한번 나의 사상을 주도하였다. 나는 그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 “이는 나에게 온 또 한번의 생사고험이다. 속인이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집착이 아닌가? 나 자신을 볼 때 그 당시 여권은 이미 중국영사관에 사사로이 압수되었고 지금 혼인상에서 또 이것이 왔다. 사악은 이것을 통하여 나의 수련하려는 결심을 동요시키려고 하는데 이것은 우스개 소리가 아닌가? 이 관을 나는 반드시 서슴없이 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아내가 나가겠다는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이 표현하려고 애썼다.

사실, 그 당시 마음 속으로 내가 일부 방면에서 아마도 좀 잘못되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정법의 일이 한 가지 한 가지 잇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바로 아내가 집을 나가던 그 날, 마침 전 지구 긴급구원 활동이 전면적으로 펼쳐졌고 텍사스주의 수련생들도 자동차여행의 형식으로 활동에 협조하려고 하였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니 인원수가 아주 부족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하여 나는 자신의 의혹을 한 켠에 내려놓고 또 한번 뒤돌아보지 않고 서슴없이 자동차여행 활동에 참가하였다.

내가 몇년동안 정법의 각종 활동에 참여한 것을 뒤돌아보면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대법에 대하여 수호하는 그 단호함과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수련은 엄숙하고 신성한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법에 대조하지 않고 자신의 불순함을 닦아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대법의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아주 많은 속인의 마음이 뒤섞이게 되어 본래 아주 신성한 일이 그렇게 순정치 못하게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 정황으로 돌아가자. 아내의 눈에는 내가 한번 또 한번 서슴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철저히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집을 나간 후 잇달아 곧 이혼을 제기하였다.

나는 이때야 비로소 자신의 어디가 진짜로 잘못되었음을 명확히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세인(世人)들을 향하여 진상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투입한 대량의 시간은 사람들에게 우리 법륜대법(法輪大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며 모두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당한 박해는 불공정한 것이지만 결혼생활에서 드러난 나의 각종 표현과 나의 혼인이 마주한 이 결과를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직접적이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아내 쪽에서 우리의 정황을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의 모든 소행이 만약 대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또한 나는 진정으로 대법을 수호하는 작용을 일으켰단 말인가?

나는 삽시에 아주 망연하고 미혹스러웠다. 한 장면 한 장면 자신이 지난 일년동안 속인의 마음을 지니고 모순을 대하던 각종 격동된 행위와 표현들이 눈앞에서 떠올랐다. 동시에 또 나와 아내의 친한 친구들은 나의 과실로 인하여 대법에 대하여 각종 오해가 생길 것이라고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정경들, 이는 단번에 나를 아주 당황스럽게 하였다. 나는 개인 수련 속에서 그 당시와 같은 그러한 망연함과 어찌할 바를 몰라함을 느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또 내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다지도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자세히 분석해 보면 가능하게 한가지 원인인바 사부님께서 마침 그 당시 우리에게 일부 더 높은 법리를 알려주시어 나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은 간단한 한 사람이 아니며 그들이 대응한 것은 한 개의 방대한 생명군체임을 알게 하셨다. 이와 동시에 나는 또 점차적으로 자신의 오랜 집착과 자신이 누락이 있는 문제에 대하여 제고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나와 인연이 있는 생명에게 어떠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나는 비로소 마음 속에 불안감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불안감에 떠밀려 나는 자신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반성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용기를 내어 나 자신의 문제를 보았을 때 속인의 눈에 비친 나의 각종 극진한 표현과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나의 태도들이 수련하지 않는 아내로 하여금 한 가닥 희망조차 볼 수 없게 하였음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속인이기에 얻고자 한 것은 평온하고 안정감 있는 생활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만약 내가 입장을 바꾸어 그녀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았을 때 그녀의 이러한 소원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 또한 자신이 열정적으로 대법활동에 참여한 동기(動機)를 반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내가 열심히 한 배후에 숨어있는 각종 순정하지 못한 공덕을 쌓으려는 마음과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것들을 의식하였을 때 나의 진동은 그렇게도 클 수가 없었으며 이는 나로 하여금 본질상에서 진심으로 수련인인가 아닌가를 의심하게 하였다
혼인에서 오는 시련이 끊임없이 심해지고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그것은 마치 하나의 강대한 외력(外力)처럼 끝내 내 심령(心靈)의 깊은 곳을 울렸고 고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던 그 껍데기를 깨부수고 나를 깨워주었다.

자신에 대하여 더 심도있게 분석함으로써 나는 천천히 내 인성(人性) 중의 마비, 이기주의, 고집과 자부, 나의 생명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이런 변이요소들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문제를 의식한 후 나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오로지 노력하여 손실을 보충(彌補)하고 되돌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아내에게 자신의 과실을 주동적으로 승인하였고 아울러 그녀의 미국 내 친척들과 국내의 부모에게 그리고 또 그녀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승인하였다. 내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 그들이 나를 도와 함께 혼인을 만회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사악한 낡은 세력은 오히려 이렇게 쉽사리 나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인류의 변이된 도덕과 혼인윤리관념을 이용하여, 남이 화를 당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의 잠재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인간성의 이기주의를 이용하여, 그 당시 하늘과 땅을 뒤엎는 대법을 박해하는 이 사악한 물질마당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이 혼인을 만회하려는 나의 노력을 제지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곳곳에서 거절을 당하였으며 사람들의 표현은 마치 나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같았고 여전히 배후에서 있는 힘껏 이 혼인을 갈라놓으려고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울러 동수들 쪽에서도, 정황을 알고 있는 동수들 중 적지 않은 동수들이 나의 과실로 인하여 대법의 형상(形象)에 조성된 손실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이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로서는 속인이 나를 어떻게 대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동수들마저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정말로 아주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고통스러운 반성을 겪은 후 나는 스스로 일어나서 용감히 자신의 과실을 마주하고 내가 지닌 책임을 최대한 감당하려고 노력하자고 결정하였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마땅히 자신의 최대의 선념(善念)으로 그들을 포용해야 하고 아울러 계속 꾸준한 성의(誠意)로 혼인을 만회하기위한 각종 시도를 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은 내뜻대로 되지 않았고 혼인은 일년이 넘도록 끌다가 결국에는 헤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내 마음 속에 이혼이란 결과가 불량한 영향을 조성할 것이라는 새로운 두려움이 있었는데, 가능하게 사악이 계속 이 방면에서 나에게 시련을 가하기 위해 만든 구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 매듭이 지어진 후 나는 잇달아 천천히 이미 기정사실로 된 이 결과에 대한 각종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마땅히 마음 속의 걱정들을 내려놓고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계속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자신이 아주 많은 일을 하는 마음상태에서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었다. 나는 더 순정한 마음상태로 대법일을 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일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예전과 같이 잠재의식 중에 늘 일부 이른바 “큰”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동수들의 부동한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고 동시에 한 개의 습관을 형성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부동한 의견이 있을 때 될수록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부동한 의견이 있게 된 원인을 이해하려 하였다. 상대방의 방법에 확실히 도리가 있음을 보았을 때 또한 자신의 계획과 방법을 조정하려고 하였다.

내가 이전에 자신이 시련 속에 처했던 심각한 느낌으로 인하여 나는 동수들이 부동한 형식의 시련에 부딪친 것을 보았을 때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내심으로부터 나의 능력을 다하여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와 나의 현재정황을 말하겠다. 이혼한 아내는 나와 연분이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나와 가진 한차례 한담(閑談)에서 갑자기 내 말 속에 체현된 일종의 진솔함에 감동된 듯 하였고 아울러 나와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결심하였다. 나는 그 당시 정말로 진짜라고 믿기 어려웠지만 또한 이 일체는 사실 나의 마음상태가 일정한 정도에서 나에 대한 법의 요구에 도달되었을 때 필연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임을 느꼈다.

나와 아내는 이번에 상대적으로 그녀의 가족을 순조롭게 설득하여 재혼(再婚) 절차를 끝냈다. 재혼한 후 우리는 집을 사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지금 될수록 가정생활과 수련을 잘 평형시키는 것 외에, 가능한 아내와 함께 일부 속인 친구들의 사교활동에 참가하고 다시 그들 속으로 돌아갔다. 아울러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풍모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약간의 피드백을 통하여 나는 재혼과 아주 많은 방면에서 원용하는 나의 표현이 무형(無形) 중에 주위의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법륜공(法輪功)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일부 오해들을 이미 개변(改變)시키고 있음을 느끼게되었다.

나는 이 일체가 순조롭게 추진됨은 모두 정법노정이 신속히 발전하고 사악의 힘이 제거되고 또한 나 개인이 수련상태에서 점차적으로 성숙하여 조성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자신에 대한 요구를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인식하였다. 그것은 내가 아주 많은 방면에서 법에 대조할 때 아직도 제고가 필요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이 법을 잘 배움을 견지하고 시시각각 법에 대조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아울러 제고하려고 노력한다면 신변의 환경은 갈수록 좋아질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내가 가정과 혼인에서 걸었던 굽은 길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법에 동화되고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할 중요성을 깊이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바로 자신이 이 두 가지 방면에서 부족하여 비로소 자신의 일부 문제들을 조성하였음을 알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동수들 모두 나의 교류에서 교훈을 찾고, 노력하여 법 중에 융해된 상태에서 이지적이고 성숙된 모습으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매 일보를 잘 걷기를 희망한다.

발표시간 : 2003년 10월 13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0/13/2395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