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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堅信]을 말한다

글 / 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2003년 11월 13일】정법일을 할 때 나는 늘 한가지 정황을 보게되는데, 어떤 동수가 다른 동수에 대해 이미 “단념한다[死心]”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다른 동수가 장기간 집착(執著)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이로 인해 그가 집착을 닦아버리는 것이 “불가능(不可能)”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동이 필요한 때에도 다른 사람에 대해 단념한 그런 동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를 찾아가면 그는 반드시 이런 식으로 말할 겁니다! 나는 너무 잘 알아요!”

나는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사실 이 양방(兩方)이 모두 각자의 집착을 가지고 있기에 비로소 표면의 문제가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도 역시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에 관한 문제임을 안에서 깨달았다.

나도 전에는 매우 많은 의문점들이 있었다. 가령 이 수련생은 그렇게 오랜 시간 수련을 했으면서도 왜 여전히 명예를 구하려는 마음이 수련하기 이전보다도 더 심한가? 그리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수많은 동수들이 건의를 해도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나는 내가 관찰한 이런 현상들이 사실은 또한 대법에 대한 나의 정신(正信)을 고험하고 있음을 줄곧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대법이 사람의 마음을 개변(改變)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가?”

어느 하루 나는 명혜망에서 대법제자 정의견(鄭毅堅)에 관해 서술한 한편의 문장(《전면적이고 누락이 없는 고험 속에서 걸어지나오다(1), 역주 : 한글 명혜망 2003년 9월 14일 문장)을 보았다. 정의견은 사악한 환경에서도 시종일관 법(法)에 용해되었으며, 시종일관 그 어떤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가 어디에 가던지 누구나 다 그를 좋다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우연히 이런 개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수련생을 보게 한 것은 바로 내가 대법이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는지를 내심(內心)으로 믿는가를 고험하는 것이며, 대법이 용광로가 나무찌꺼기를 녹여버리는 것과 같은 능력이 있음을 진정으로 믿는지 고험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일부 “믿음[信]”에 관련된 문제들을 사고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나는 왜 줄곧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려는 생각을 참지 못하는가?

만약 내가 정말로 대법이 사람의 마음을 개선(改善)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 수련생이 다른 사람의 면전(面前)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상관없이 그가 법공부를 할 때 또는 대법회(大法會)에서 그에게 자신의 집착을 보게끔 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집착을 지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보지 못한다고 여길 때, 나는 사실상 내심으로부터 진정하게 대법이 그의 집착을 깨뜨릴[破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은 것이다.

현재 나는 스스로 대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능히 개선(改善)시킬 수 있다라고 일깨우고 있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한가지 바람[愿望]이 있다. 나는 반드시 모든 동수들과 더불어 선해(善解)해야한다. 가능하면 동수의 우수한 점을 많이 보면서 스스로 더욱더 포용(包容)하게 할 것이다. 대법은 일체 집착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어떤 모순을 만나더라도 나는 반드시 동수와 함께 선해(善解)할 수 있다.

발표시간 : 2003년 11월 13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1/13/244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