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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정행에 대한 나의 이해와 깨달음

정념정행에 대한 나의 이해와 깨달음

글/ 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에 많은 동수들이 박해를 반대하기 위하여 발정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업 혹은 박해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발정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최근에 내가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교류를 하고자 한다.

한번은 우리 지역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나는 협조인이였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하나의 간단한 일을 오랫동안 토론하였지만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때 나는 인내성이 없어졌고 안으로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동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까지 가하면서 점점 마음이 산란해지고 점점 이 일을 상관하기 싫어졌다. 상관한다는 이 단어는 내가 아직도 속인의 마음으로 일들을 하고 있고 마음이 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모순은 점점 커져서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었고 누가 하고 싶으면 하라는 정도까지 되었다. 이때 나한테는 한가지 일념(一念)만 남았다. 즉 내가 돌아서 피해가면 안되고 문제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데 이 일은 질질 끌어 시일을 놓치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보여지는 동수의 바르지 못한(不正) 상태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나 자신에게서 표현되는 바르지 않은(不正) 사상을 청리하고 동수에게도 정념을 발해주기 시작하였다. 즉 동수를 믿고 우리 사이에 강압(强壓)되어져 있는 바르지 않은(不正) 일체 요소를 부정(否定)하고, 나 자신을 믿고 나는 주불(主佛)의 제자라고 하였다. 갑자기 나의 몸은 거뜬하였고 모순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일체가 좋은 상태로 변하였다.

만약 우리가 교란을 받고 박해를 받은 것을 승인하고 다시 그런 교란과 박해를 배제하고 타파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것(부정(不正)한 생명)과 동일한 층차 중에 있으므로 근본상에서 제약작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이러할 때의 발정념은 표면상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부님의 법리(法理) 중에서는 이미 낡은 우주의 이치는 성(成), 주(住), 괴(壞), 멸(滅) 이고 그것에 상대적으로 사람에게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 가 있으므로 상생상극의 이치도 존재하게 된다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가 법을 얻은 그때에 사부님은 이미 우리의 신체를 정화시켜 주셨고 우리를 무병상태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한 사람이 병이 없다는 것 즉 더 이상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이치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낡은 우주의 이치의 단속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眞(쩐)‧善(싼)‧忍(런)이다.” (<<전법륜>>) 라고 알려 주셨다.. 나는 이것이 새 우주의 바른 법리(正法理) 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대법 중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고 사부님이 정법하러 오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든 지간에 모두 眞(쩐)‧善(싼)‧忍(런)에 따라서 해야 하는 즉 바른 법리(正法理)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어찌 낡은 우주의 법리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어떠한 생명이든 지간에 바른 법리 (正法理) 중에서 산생한 생명을 교란하고 박해하며 파괴할 자격이 없다. 하물며 우리는 미래의 불(佛), 도(道), 신(神)이니 더욱 안 된다.

사부님은 <<2004년 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 중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셨다.
“물론 낡은 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를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나 이 사부가 승인하지 않으므로 대법제자도 당연히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러나 그것들은 필경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는데,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에 부딪힐 경우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낡은 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낡은 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낡은 세력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될까? 사상상으로부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무릇 정법과 연관된 일, 정법제자와 관계가 있는 일에 바르지 않은(不正) 일이 발생하였을 때 이런 일이 발생만 한다면 사상상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정(不正)한 이런 생명이 대법제자에 강압하는 일체 요소를 부정한다. 제자들이 표면상에서 나타나는 부정(不正)한 상태는 응당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자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것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든다면, 현재 대법제자들이 병업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거의 이런 대법제자가 쓰러지게 되는 것을 봤을 때에야 다른 동수들에게 알려 함께 발정념을 하거나 함께 병원에 가서 법공부를 하는 등등을 한다. 우리는 자세히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이 이미 낡은 세력이 그를 박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승인한 것으로 된다. 우리는 이러한 박해와 교란을 승인하는 상황하에서 발정념을 하고 교란을 배제하고 타파한다. 표면상에서는 당연히 일정한 작용을 일으키지만 근본상에서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는 낡은 세력과 동일한 층차 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수련하는가》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말씀 하셨다.
“사실 인류사회는 옛적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치가 존재하는 것으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이라고 한다.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곧 나쁜 것이 있고, 바른 것이 있으면 곧 사(邪)한 것이 있으며, 착한 것이 있으면 곧 악한 것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곧 귀신이 있으며, 부처가 있으면 곧 마귀가 있게 마련이다. 인류사회는 더욱 이러하다. 바른 것(正)이 있으면 곧 반대로(反) 되는 것이 있고, 제창하는 것이 있으면 곧 반대하는 것이 있으며, 믿는 것이 있으면 곧 믿지 않은 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곧 나쁜 사람이 있으며, 공(公)적인 마음이 있으면 곧 사(私)적인 마음이 있고,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치는 사람이 있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곧 이전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람, 하나의 집단, 하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만일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곧 일부 동등한 크기의 나쁜 저애력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후에야 비로소 얻음이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으며, 비로소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이전 인류의 발전은 줄곧 이러하였다(相生相剋의 이치는 나중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
사부님은 상생상극은 과거의 이치라고 명확히 지적하셨으며 상생상극의 이치는 나중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상생상극의 이치에 변화가 발생하게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낡은 우주의 이치대로 일을 한다면 상생상극의 이치의 제약을 받을 것이고 일을 할 때 동등한 크기의 나쁜 저애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이런 이치를 인식한다면 낡은 우주에서 새 우주로 갈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부님은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救度)하는 것은 낡은 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가 그것으로 하여금 빈틈을 파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2002년 보스턴 법회에서의 설법>>)

즉 말해서 우리가 낡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하든지 새 우주의 이치에 따라 하든지 진상을 하는 일은 꼭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낡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한다면 우리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교란 중에서 박해를 받고 교란 중에서 진상하고 안으로 찾게 된다. 바른 법리(正法理)에 따라 하면 우리는 시시각각 자기 자신을 귀정(归正)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즉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교란은 성립이 안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무엇이 정념인가? 바른 법리(正法理) 중에서 산생되는 생각이 바로 정념이고 이렇게 한 행위가 바로 정행이다. 낡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일을 행하는 것은 정념이 아니고 속인의 생각이다.

<<2003년 정월 대보름날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중에서 사부님은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직 이 하나의 수련의 문제를 말하더라도 우주의 낮은 층에서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고층차에 이르면 간단한 것으로 수련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로지 업력을 없애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더욱 높은 층에서 이야기한다면 일체 번거로움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 높은 층에서는 무슨 소업이요, 무슨 고생을 겪는 것이요, 무슨 수련이요 하는 이러한 개념이 없으며 바로 선택이다!”

지금 나는 마음속으로 점점 분명해지고 머리도 점점 냉정해졌다. 나의 주이스(主意識)는 점점 강대해졌다.

법공부를 할 때 졸리면 나는 나 자신과 모든 생명에게 나는 법공부하는 것을 선택하니 누구도 날 교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동수로부터 최근에 법공부 할 때 교란을 받아 졸린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당신이 이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당신을 교란한다는 것을 승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다 무엇인가? 그것은 정법제자를 교란할 자격이 없으며 근본적으로 그것을 부정해 버려야 한다.

지난 토요일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청대의 쩐싼런(真善忍) 미술전에 참가하였다. 아침에 둘째 아이를 깨우면서 그의 몸을 만져봤더니 이마에서 열이 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 어떤 “소업, 교란”이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마디를 하였다: 나는 일체 부정(不正)한 생명이 어린 대법제자의 몸에 강압하는 부정(不正)한 요소를 모두 부정한다. 연속 3번을 말하니 3초 만에 그의 이마에서는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타이뻬이에 가서 교류회에 참석하였다. 버스에 타자마자 맏딸이 배가 아프다고 하였다. 나는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그에게 너의 몸에 강압되는 나쁜 물건들을 부정하라고 알려줬고 나도 함께 일체 부정(不正)한 생명이 어린 제자의 몸에 강압하는 부정(不正)한 요소를 부정하였다. 나는 법공부를 계속하였고 그 어떠한 생각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몇 분이 지난 후 그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오후에 매체교류회의에 참석하였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설사도 하였다. 나는 부정(不正)한 생명들이 내가 깨달은 이치를 견정할 수 있는가를 고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근본상에서 날 고험할 자격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동수님들의 심득교류를 계속 들었는데 소득이 아주 컸다.

전체 교류가 끝날 때가 되었을 때 배가 아픈 것이 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아파갔다. 나는 자신에 대하여 정념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 자신과 전체 생명들에게 나는 일체 부정(不正)한 생명이 나에게 강압하는 일체 부정(不正)한 요소를 부정한다고 말하였고 정념으로 청리하기 시작하였다. 5분 후에 나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다시 돌아보면 이미 아무것도 아니고 아주 아주 작다. 그 어떠한 일에 부딪치든지 나는 부정(不正)한 생명이 나에게 강압하는 부정(不正)한 요소를 부정하고 주불(主佛)의 제자로 선택하였으며 이런 부정(不正)한 생명은 나를 교란하고 박해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그것이 계속 교란을 한다면 전혀 사정을 안 두고 발정념하여 청리한다.

동수가 정확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면 나는 힘이 닿는데 까지 교류를 하여 도와주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일념 즉 동수를 믿고 주불(主佛)의 제자를 믿는 것을 선택하고 부정(不正)한 생명이 동수에게 강압하는 일체 부정(不正)한 요소를 부정한다. 그 어떠한 부정(不正)한 사상을 동수에게 보내지 않으며 법 중에서 나는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정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그들이 대법제자이고 어떻게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다음 어머니로서 아이들에게 정확한 행위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의 표현이 예상 밖으로 아주 좋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우리의 사상이 순정하면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과 일, 물체가 모두 귀정(歸正)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본성의 일면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점점 분명히 알고 자신이 어떻게 잘 해야 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깊이 사부님의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나 오직 생각만 움직이면 본 것은 모두 가짜이다. 이것을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 또는 수심이화(隨心而化)라고 한다.”(<<전법륜>>제 6강-자심생마). 체험하였다.

생각을 움직이면 시신경을 통하여 보게 되므로 모두 가상인 것이다. 내가 경력한 과정과 결과는 정말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명하다.(佛光普照, 禮義圓明)”이었다.

이전의 한 단락의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이 한 상태에 머물러 어떻게 하든지 돌파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할 것은 다 하였는데 자신이 보이지 않는 한 층의 물건에 포위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이런 물건이 없어졌다.

동수님들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어떠한 언행이 아직도 “박해를 승인하는 중에서 반박해”를 하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꼭 자신의 미래를 잘 선택하여야 하고 자신의 정오(正悟)를 견정(堅定)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로 여러분과 함께 서로 용기를 북돋기로 하자.

사도은

사악이 미친듯한 4년 돌풍에 키를 단단히 잡고 항로를 잃지 않았네
대법제자는 마난을 겪으며 중압(重壓)에도 의지가 변치 않았네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거니 부처의 은혜는 천지를 녹이노라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국면을 전환시킬 큰 힘이 있노라

문장발표 : 2005년 4월 14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수련 깨달음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5/4/14/319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