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매(笑梅)
【정견망 2006년 9월 14일】
무도 없고 공도 없고 아무 것도 없나니
선도 없고 악도 없어 극을 벗어났노라
나아가면 만만물을 이룰 터이고
물러서면 전부 없나니 영원한 수수께끼로다
無無無空無東西
無善無惡出了極
進則可成萬萬物
退去全無永是謎
《홍음(2)》
내가 《홍음(2)》를 처음 펼쳤을 때, 이 단락의 법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수련은 곧 하늘 사다리[天梯]를 오르는 것과 같아서,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우며, 매 한 걸음마다 모두 앞으로 전진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후퇴 할 것인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비록 천목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수련이 잘 된 일면이 분리되는 것에 대한 감수는 오히려 매우 깊은 편이다. 매번 내가 하나의 관(關)을 넘고 법에 대한 이해가 아주 좋을 때는 내심으로 느끼는 수승(殊勝)함과 상화(祥和)함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시각 나는 마치 진정한 각자(覺者)와 같아서 세간 일체에 움직이지 않으며 중생이 모두 고생스럽게 보인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법속에 녹아들어간 행복의 눈물이며, 사존(師尊)께 대한 감격의 눈물이고, 중생의 무지에 대한 안타까운 눈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아주 빨리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뒤따르는 것은 심령을 자극하는 고험(考驗)이다. 마치 한 순간에 내가 어떤 큰 손에 잡혀, 너무나도 신성하고 순결한 궁전에서 더러운 인간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다. 나는 늘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했다. “왜 방금 전과 같은 그런 아름다움 감각이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또 속인의 이치 속에 빠져 버렸는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이 (수련이 잘 된 부분이) 격리된 후의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 시각이 수련 중에서 가장 관건적인데, 왜냐하면 자신이 또 속인의 층차로 떨어졌다고 느껴질 때, 내심으로 아주 소침해져서 자신의 수련에 대한 신심(信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이럴 때마다, 내심 깊은 곳에서는 마치 어떤 목소리가 묻는 것 같다. “당신은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내 대답은 언제나 “전진!”이다. 비록 단호하게 이런 대답을 말할 수 있기까지 걸린 시간은 다양했지만, 나는 갈수록 빨리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됨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법을 외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격리된 후에도 아주 빨리 자신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늘 다음과 같은 광경이 나타난다. 나는 한 가닥 길고 흔들리는 쇠사슬 다리에서 걷고 있는데 아래는 만장(萬丈)이나 되는 깊은 못이다. 사부님께서는 앞에서 팔을 내미시며 내가 손을 내밀어 잡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내가 “전진!”이라고 대답할 때, 나는 내가 한 제일 처음 일이 바로 법공부임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법공부를 잘 해야만 사부님의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공부가 착실하면 사부님의 손을 단단히 잡을 수 있으며, 앞으로 갈수록 광명해지고 앞으로 갈수록 수승(殊勝)하다.
매번 사부님께서 각지 설법 중에서 제자들에게 법공부를 요구하신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마치 사부님께서 쇠사슬 다리에서 다급히 부르시는 것 같다. “얘야, 이리 오너라! 빨리 손을 내밀어라!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발표 시간:2006년 9월 14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9/14/4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