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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대법을 수련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작가: 뉴질랜드 대법제자

【정견망 2006년 12월 21일】

뉴질랜드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 중에서 차오수(曹叔) 일가를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뉴질랜드의 수도 오클랜드에 있는 중국 영사관 앞에는 대법을 실증하러온 대법제자들이 수없이 바뀌었다. 그러나 오직 차오수 일가족만은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시종일관 매일같이 중국 영사관 입구를 지키면서 대법진상을 알리는 현수막을 펼치고 연공하고 있다. 그들은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을 바탕으로 대법제자의 지혜와 실제행동을 통해 세인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었고 대법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등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대법제자의 신성(神聖)한 풍모를 펼쳐보였다.

아래에서 나는 차오수 일가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한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해본다.

이것은 차오수 일가와 다른 대법제자들이 초기에 오클랜드 영사관 앞에서 겪었던 일이다. 영사관 직원이 녹음을 이용해 끊임없이 대법을 공격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즉, 영사관에 근무하던 한 여직원이 차오수 일가와 다른 대법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대법을 비방하는 말을 했으며 수련생들을 내쫓고 그들이 영사관 문 앞에 서있거나 진상자료 및 전단지 등을 배포하지 못하게 했다.

차오수 일가는 그들이 죄를 덜 짓도록 하기 위해 선의(善意)적으로 권고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우주대법으로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당신은 대법을 증오하기 위한 중공의 선동에 속아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한다면 보응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여직원은 도리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런 것 믿지 않아.” 다음 날 영사관 앞에서는 차오수 일가와 다른 대법제자들은 대법을 공격하는 녹음을 들을 수 없었다. 원래 그 여직원이 보응을 받아 넘어졌고 거동이 불편해졌던 것이다. 그 결과 반달 동안 그녀가 영사관에 출근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곧 이어 영사관에서는 다른 사악한 수법을 사용했다. 주변 담장에 철 난간을 만들고 일반적인 대나무 깃대보다 세배 정도 굵은 깃대를 만들어 대법을 비방하는 파란색 현수막을 걸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 깃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연속으로 세 차례나 바람에 부러졌다. 세 번째 바람에 부러졌을 때 영사관 직원이 나와 트집을 잡았다. 대법제자들이 일부러 자신들의 깃대를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이에 차오수 일가가 반박했다. “우리가 부러뜨린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감시 카메라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녹화장면을 검사해보면 누가 부러뜨렸는지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사관 직원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당신들 짓이야.” 이에 차오수 일가는 평온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정정당당한 중국 영사관 직원인데 어찌 아무런 증거도 없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가 당신들의 깃대를 부러뜨렸다고 합니까! 아, 우리 역시 화인(華人)이라 원래 중국이 거짓말 대국이란 것을 믿지 못했었는데 오늘 당신들의 모함을 보니 믿지 않을 수 없군요! 아, 원래 중국인들이 매체에서 들은 파룬궁을 모함하는 선전은 전부 거짓이고 모두 장XX의 지시 하에 당신들이 날조해낸 것으로 한마디도 진실이 없습니다. 목적은 대법의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증오를 선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비루(鄙陋)합니다! 당신들은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하고 그것들이 퍼뜨리는 파룬궁에 대한 거짓말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 거짓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독립적인 사고능력이 있는 성인이고 선과 악,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는 화인입니다. 우리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이곳에 서서 당신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영사관 직원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단지 무뢰하게도 “그럼 당신들 사부가 깃대를 부러뜨렸구먼.”이라고 빈정거렸다.

차오수 일가는 또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는데 어찌 우리 사부님께서 부러뜨리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에게 중국의 오랜 풍속을 알려주겠습니다. 깃대가 부러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로 다음에 또 부러진다면 이는 단지 깃대가 부러지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며 어쩌면 사람의 목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의 깃대는 우리 것보다 3배는 굵지 않습니까. 우리 깃대는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데 왜 유독 당신들의 깃대만 연속으로 세 차례나 부러졌을까요.…. 당신들은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하늘의 이치를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현수막을 치웠고 이후로는 더 이상 현수막을 걸지 못했다.

진상을 보다 똑똑하게 알리기 위해 차오수 일가는 영사관 문 앞에 있는 두 개의 사각형 기둥에 두 개의 진상 전시판과 여러 장의 진상사진을 설치했다. 첫날 영사관에 근무하는 한 남자 직원이 나와 흉악한 얼굴을 하면서 전시판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곳에는 설치할 수 없으니 빨라 가져가라고 말했다. 차오수 일가는 천천히 차분하게 입을 열어 이치를 알려주었다. “당신의 그 두 발은 도대체 영사관에서 일하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나라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짓이며 외교관 신분에 먹칠을 하는 짓이 아닙니까!” 삽시간에 그 직원은 얼굴이 빨개졌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하면서 풀이 죽어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

다음날 영사관에서는 또 한 명의 여자 직원을 보냈다.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냉랭한 표정으로 대하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진상전시판을 치우라고 했다. “여기는 중국영사관이지 당신들 집이 아니잖아요.” 이에 차오수가 그녀에게 반문했다. “여기도 우리 집입니다! 내가 내 집 앞에 놓았는데 왜 가져가란 말입니까?” 그러자 그 여직원은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여기가 어째서 당신 집이란 말입니까?”

차오수가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중국과 뉴질랜드는 1972년 12월 22일에 국교를 수립했고 영사관은 그때 설립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때 여전히 중국대륙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때 우리 임금이 매우 낮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나요? 중국정부가 국내의 많은 자금을 가져다 외관을 꾸미는데 사용했고 뉴질랜드 영사관 역시 중국의 외관에 속합니다. 나는 퇴직한 후에야 뉴질랜드로 왔으니 뉴질랜드 영사관을 짓는 데는 분명 내 자금도 일부분 포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이곳에도 내 자금이 일부 들어가 있을 테고. 그러니 이곳 영사관도 우리 집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전시판은 바로 내 집 앞에 세워놓은 것이오!” 여직원은 이 말을 들은 후 어찌할 바를 몰랐고 더 이상 전시판을 가져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두 개의 진상전시판은 영사관 입구에 놓여져 있다. 이때부터 그 여직원은 차오수 일가를 볼 때마다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한다!

장XX가 미국법정에 기소된 그 해 봄, 차오수 일가는 여전히 영사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아침에 영사관 직원이 문 앞에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차오수 일가는 그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직원은 감동해서 말했다. “당신들은 설날에도 쉬지 않고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군요. 정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차오수의 남편이 선의적으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기억하세요! 장XX가 이미 미국에서 법원에 기소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를 따라서 장XX와 한 패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과 가족들에게 덕을 쌓아 평안을 보존하길 바랍니다.” 직원은 진심으로 잘 알았으며 고맙다고 표시했다!

나중에 이 직원이 임기가 다해 귀국하기 전에 차오수 일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한 번은 영사관 문 앞에 마이크로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버스 안에는 광둥(廣東)에서 온 아주머니가 있었다. 마침 영사관 입구를 막고 있어서 쓰레기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영사관 직원이 아주머니에게 손짓을 하며 차를 빼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동의하지 않으며 직원과 언쟁을 벌였다. 차오수가 보다 못해 좋은 말로 아주머니를 권고하면서 말했다. “청소하는 분들 입장도 생각하셔야지요. 쓰레기차가 들어갈 수 있게 비켜줍시다. 저 분들은 다른 곳에 가서 또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데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주머니가 차를 빼서 건너편에 정차시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주머니는 흔쾌히 동의했다.

영사관 직원은 너무나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차오수 일가에게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이 직원이 중국대륙에서 온 방문단을 이끌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관광하다가 진상자료를 나눠주는 대법수련생들을 만났다. 방문단에 있던 대부분의 관리들은 다 진상자료를 받았으나 오직 한 명만이 받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여전히 억지를 부리면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영사관 직원이 이 장면을 본 후 그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파룬궁 수련생 누구라도 당신이 말로 이길 수 없습니다. 빨리 중지하세요.”

차오수 일가는 영사관 앞에서 6년을 확고히 지켰고 대법을 실증한 일은 너무나도 많다. 이상은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단순히 대법진상 현수막과 대법진상 자료만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사부님의 법을 담고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자비는 천지를 녹일 수 있고 우리 대법제자는 적이 없으며 우리 대법제자는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 매일 매일 예의바른 언어와 친절한 인사로 매 하나의 영사관 직원을 대하며 매일 매일 실제행동으로 영사관 앞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또한 매일 잔돈을 준비하여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오는 화인(華人)들의 편의를 위해 수시로 돈을 바꿔준다. 매일 영사관에 오는 화인들을 위해 길을 가르쳐주곤 하는데 사진관은 어디에 있고 사증 수속은 어디서 밟을 수 있다는 등 자세히 알려준다. 아울러 그들이 차를 잡는 것을 도와주고 경찰의 신분증 검사를 받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는 차오수 일가 대법제자들이 자비로운 선심(善心)으로 한 것이며 보기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소리 없는 행동에 불과하지만 평범한 빗방울이 쌓여 바위를 뚫고 큰 쇠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과정처럼 그들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였으며 대법제자의 호연한 정기(正氣)와 위대한 풍모를 실증했다. 그들은 모든 세인(世人)과 영사관 직원들의 심령을 감동시켰으며 영사관 직원들이 한 차례씩 바뀔 때마다 모두들 처음에 진상을 몰라 인상을 쓰며 소송을 걸겠다고 하던 데로부터 점차 대법의 아름다운 진상을 알고 난 후 영사관 입구를 견정히 지키는 차오수 일가에게 미소를 보내거나 작별인사를 고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정법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지금 뉴질랜드 오클랜드 영사관 입구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환경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발표시간:2006년 12월 21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12/21/414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