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원야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님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학 재학생으로 대법을 수련한지 어언 1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행운아 인데,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대법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저는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며 신의 길에서 용맹정진 하려 합니다.
(1)
제가 5년 전 토론토에 왔을 때 이렇게 좋은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기리라 결심했습니다. 저는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이 중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며칠 만에 모두가 파룬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무주임이 CD를 나눠주고 있는 저를 불러서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너, 학교에서 파룬궁 이야기를 자꾸 하고, 파룬궁 자료도 붙이고 있는데 그러면 안돼! 파룬궁은 중국 내에서는 허용하지 않잖아. 그런데 우리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중국에서 왔는데 네가 이렇게 하면 우리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만약 계속 파룬궁을 선전하면 퇴학시킬 수도 있어”
교무주임도 중국인이었기에 저는 그녀에게 “여긴 중국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를 퇴학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참혹하게 박해를 받고 있는 파룬궁 사건이 천하에서 가장 억울한 사건입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시죠? 저는 중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이같은 진상을 알릴 것인데,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념과 선한 마음이 부족했던지 교무주임은 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교장은 서양인이었는데, 저는 중국정부에서 파룬궁을 탄압하고 있어서 수련인들을 불법체포하는 사실과, 분실자살의 내막을 눈물을 머금고 참을성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교장은 제 말을 듣고 난 뒤 비평하기는 커녕 오히려 “넌 착하고 정의가 있는 애구나. 중국에서의 파룬궁 처지를 알게 되었고 너를 이해할 만하다.”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어학연수 졸업 논문은 제가 학생으로서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문 전편에 파룬궁이 박해받고 있는 상황을 알렸습니다. 의외로 저의 논문은 범문으로 선정되어 선생님은 다른 반에서도 저의 문장을 읽어 주셨습니다. 어떤 학생은 몹시 놀라워했고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렸으며 내몽고에서 온 한 학생은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고 합니다. 논문을 읽어 주셨던 선생님은 미국으로 전근가신 후 특별히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는 저를 일반 사제지간을 초월하여 매우 존중하였고, 대법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임을 알고 있기에 저는 기뻤습니다.
(2)
제가 우수한 성적으로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토론토 대학 전업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저의 수련상태가 양호했으며 무엇보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학과목이 많아지고 시간이 적어져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성적에 대한 집착으로 정법의 커다란 환경인 정법활동에 참가하는 차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님께서 오셨을 때 뛰어난 성적으로 “국제 영예학생” 증서를 타고 조교가 되었으며, 학생회 일로 학교에서 사무실까지 내주었으며, 방학기간에는 공부를 가르쳐 “우수 교사” 증서를 받은 것 등, 여러 내용을 회보하듯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님의 얼굴에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며칠간 어머님은 계속해서 국내 대법제자들이 집을 수색당하고 체포되어 박해받고 있는 상황을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제일 감동시킨 것은 저와 동년배 수련생이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 체포되어 3일간 갖은 고통을 받은 사실이었습니다. 전기고문, 음식물 투입 등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대법을 믿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공부를 할 수 있고 성적도 매우 우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대법제자의 위대함은 당신들이 사부가 정법하는 시기와 함께 있으며 대법을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요지•정법시기 대법제자》
그리하여 저는 커다란 환경 속으로 다시 돌아와 대법의 행렬에 뛰어들어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기 시작하였습니다.
(3)
단체 법 공부를 할 때 한 동수님이 저에게 “정법 중에 어떤 일들은 나이 많은 우리가 할 수 없기에 젊은 너희들이 해야 하는구나. 너희들은 아주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어.”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할머니를 통해 저에게 점오시키는 것이라 깨달았습니다. 매체에 들어가자 신당인 동수님들이 사심없이 저를 도와주셨고 고무해 주시어, 저는 얼마 뒤 카메라를 들 수 있었으며 종목 사회도 맡게 되었습니다. “대천세계” 종목 원고편집에서 사회까지 저는 모두 참답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동수님들과 정체 배합하여 매 주 한차례 방송을 원만히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종목 제작 과정이 바로 저의 수련과정 이었습니다.
저는 시간 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법 공부는 물론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눈이 빨간 상태로 촬영에 임했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랬더니 원고상태도 안 좋았고 촬영 효과도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2007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물론 어떤 사람은 “사부님께서 무엇을 하려 하시면 그것은 틀림없이 가장 훌륭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가장 훌륭한 것이 아니면 나도 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지 제일 잘해야 하며 이는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법활동에 참가하는 시간을 다시 조절하고 법공부 시간을 늘여 학습과 종목 모두 양호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4)
지난 해 저는 전업과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이력서 100여 부를 보냈지만 면담하려는 곳은 십 여 곳 밖에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력서를 10여 개 정도만 보낸 상황이라 마음이 조급해 있었는데 제가 지원한 거의 모든 회사에서 면접하러 오라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면접 볼 때 저의 첫마디는 “저는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저는 쩐, 싼, 런을 기본으로 회사에서 맡기는 사업을 잘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면접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파룬궁 진상을 알렸고 제 기능은 간단하게 소개 하였습니다. 회사들은 해외로 진출한 대기업이어서 좀 까다로운 편이었으나 면접 본 회사 모두 저를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저를 오라고하자 모두가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는 오늘날 풍류인물이어서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다면 모두 우리는 정사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런 기회는 대법이 준 것으로 회사는 면접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되면서 대법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이 대법제자를 선택했기에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저는 풍전(丰田)캐나다 본부 시장부문을 선택했습니다.
(5)
회사를 택하고 난 뒤 저는 제작하는 영화에서 한 대법제자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배역을 맡아 본 적이 없었기에 반드시 사람의 관념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대법은 초상적이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영화는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라 저는 이 배역을 반드시 잘 연기해야 했습니다. 극본을 받아든 저는 극의 스토리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인물들의 매 대사를 음미하며 제 자신의 수련과정을 돌이켜 보았고, 주변 동수님들의 수련이야기도 연상해 보았습니다. 극의 한 장면은 아버지께서 장기적출을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저의 반응이었는데 아주 비장한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득도”노래를 들으면서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시는 고난과 대법제자들이 혹형을 받고 장기를 적출당하는 장면을 눈앞에 상기시켰고 어머님이 몇 번이나 잡혀가시던 모습과 극중 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갑자기 땅에 꿇어앉아 마음속으로 외치자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샘솟듯 솟아났습니다.
촬영은 한 번에 통과되었고 감독은 매우 흡족해 했으며 촬영 현장의 동수님들도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자비로운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습니다.
(6)
영화는 촬영 중인데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가 출근하면 촬영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는 회사에 찾아가 휴가를 받으려 했더니 책임자는 “우리가 사람을 채용하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신입사원은 휴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 회사에 출근하게 된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고 우리가 이상적인 인재를 채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며칠동안 생각하다가 나중에 주간엔 출근하고 야간에만 촬영하기로 결정하고 회사에 정상 근무 하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출근하던 날 저는 정장에 넥타이를 맨 단정한 옷차림으로 일찍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회사 책임자는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제가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영화를 찍을 거라는 계획을 말씀드리자 그는 “당신의 사업 부문은 매우 중요한 부서로 평소에 특근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 당신이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 영화를 찍는다면 아마 정력이 따라가지 못해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꼭 영화를 찍어야 한다면 아쉽지만 내년에 다시 취직을 하셔야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회사에서 나온 저는 마음이 좀 무거워졌습니다. 이튿날 학교에 나가자 한 선생님은 “신앙을 위해 좋은 사업도 포기하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당신한테 정말 탄복했소.”하고 말하였고 다른 한 분은 “당신의 계획이 회사의 사업배치를 혼란시킨 것인데 당신은 생각을 세밀하게 하지 못한 것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수련에 누락이 생겨 성숙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 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전법륜》)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상대방 각도에서 생각하여 먼저 회사에 연락하여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시간을 주었더라면 효과가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침통한 교훈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여 손실은 빚어낸 것은 침통한 교훈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7)
영화를 찍으면서 저는 또 다른 정법 항목인 천국악단에 참가하여 지휘를 맡았습니다. 수련의 큰 환경인 천국악단을 하면서 저는 정화되고 승화됨을 느꼈고 또 한 지휘자로서의 책임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악단이 연주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는 상당히 크다.” ” 그러므로 거리에서 행진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든지 상관없이, 당시에 나는 속인의 그 사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마비되었다. (뭇사람 웃음) 특히 중국인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사상이 없어졌다. 어떻게 된 것인가? 좋지 않은 사상이 모두 청리되었으며, 지난 후에야 그는 비로소 생각이 나서 (박수) 말한다. “야, 파룬궁(法輪功)은 정말 대단하구나!”” (《로스안젤스 시 설법》)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맨 처음 지휘를 맡았을 때 경험 부족과 함께 마음이 긴장되어 관람객이 적을 때는 연주를 하게 했고 사람이 많을 때는 오히려 동수님들이 지쳤다고, 특히 트럼펫을 부는 동수들이 지쳤을 것이라는 생각에 쉬게 하면서 기회를 잘 장악하지 못했던 것을 자책했습니다.
그것은 인정으로 중생구도의 자비로움을 대체하였던 것입니다. 한동안 참답게 법 공부를 하고 훈련을 하면서 저는 지휘자로서 지휘봉을 흔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연출할 때 절주를 잘 장악해야 하며 앞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잘 관찰하여야 하고 주석대의 위치를 주의하면서 전진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론 활동 책임자가 악단에 임시 요구를 할 수 있는바 지휘자가 즉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는 몇 십 차례 퍼레이드를 했는데, 그 중 몇 번은 대형 퍼레이드 행사였기에 관중이 몇 십만 명에 달하여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대오에 서서 음악에 따라 지휘봉을 아래위로 흔들며 저는 구도하는 신성함을 감수하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세인들이 구도되기를 갈망하고 있으니 반드시 지휘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프레이드 거리가 얼마나 길던지 상관없이 저는 시종일관 참답게 지휘하였고 조금도 해이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퍼레이드가 끝난 뒤 한 동수가 “원야, 프레이드 거리가 길어서 맨 끝에는 오르막길에서 힘이 빠졌어. 그런데 동수님은 여전히 힘있게 지휘하고 있는 것을 보자 막 힘이 솟았어.”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수님의 격려로 인해 지휘의 중요성과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
제 자신의 수련의 길을 돌이켜 보면 학업 성적을 좇느라 큰 환경을 벗어났다가 여러 가지 정법항목에 적극 참가하기까지, 법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외우기까지, 피동적으로 일을 하다가 주동적으로 배합하기까지, 성숙하지 못하다가 성숙하기까지, 저는 이미 잃었던 시간을 메우고 있습니다.
아직 저는 불완정한 요소와 여러 가지 집착심이 나타나지만, 수련을 하면서 이지란 바로 법공부를 하면서 모든 사람의 관념을 버리고 신념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에 대해, 만고의 수련 기연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의 길에서 용맹정진하는 것 뿐입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반가웠습니다.
문장 발표:2007년 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