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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 매표 체험(3)

만회 매표 체험(3)

작가:토론토 대법제자

【정견망 2008년 1월 18일】
사람을 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오늘날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인파들은 모두 이미 도태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이 이전에 구세력에 의해 도태되는 것으로 정해진 것과 같다.

이런 생명들 중 어느 하나라도 구도하고자 한다면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곧 거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치 사존(師尊)께서 처음 우리들을 구도하실 때 우리 매 제자들을 위해 무수한 고통을 감당하시고, 매 제자를 위해 독약(毒藥)을 드신 것과 같다. 지금의 속인을 구하자면 그와 관련된 업력과 요소들이 모두 따라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적지 않은 각양각색의 교란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신체적, 사상적, 정서적으로 나타나지 말아야 할 각종 괴상한 일들이 나타났다. 마치 지난 몇 년 동안 겪어온 것과 같은데 이는 우리의 수련이 진보하지 못한 것인가? 우리들 개인 수련의 문제인가? 개인적인 이해로는 바로 생각을 움직여 만회(晩會)를 보러오려는 그런 생명들 자신의 업력(業力)과 구우주가 배치하고 통제하는 물질 기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와서 만회를 본다면 그런 업력들은 곧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당연히 말을 듣지 않으며, 와서 만회를 본다면 구우주의 일체 배치와 기제가 타파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물론 저항하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회 표를 파는 과정 중에서 부딪힌 실질적인 저애력이다.

선전을 크게 하면 할수록, 공연을 보러오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애력은 아주 커지며 인간세상에서 표현되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만회를 알고 모두 만회를 말하지만 매표량은 늘어나지 않는다. 수련생들의 노력과 치른 대가는 확실히 우리 이전의 상태를 이미 뛰어넘었다.

오늘날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보다 큰 위덕을 세워주시려 하시고 우리더러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다. 극장에 와서 공연을 보려는 많은 사람들은 곧 우선 운명을 개변해야 하고 그의 몸에 있는 아주 많은 나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예전에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셨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셨다. 보다 높은 신(神)의 경지를 향해 걸어가는 이 과정은, 우리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세상에서 감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려움과 고통이다. 그러나 수련자는 바로 “고생을 낙으로 삼”아야 하며, 사실 실질적인 것은 여전히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우리는 단지 사존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력(神力)으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할 뿐이다.

매표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한 가지 기점일뿐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미래 우주 중에서 가장 위덕이 있는 신(神)으로 육성하시려 하시기에 만회 일은 필연적으로 하는 과정 중에 우리를 성취시키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과정 중의 고생과 어려움을 대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거나 떨어져 내려갔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경서를 얻기 위해 서천으로 가는 길에 오른 당승과 마찬가지로 수련의 길을 걷고 있는 수련인이다. 그 어떤 어려움이든 단지 지나고 나면 바로 경지와 위덕이다.

아주 어려울 때 우리는 사부님을 생각해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애초에 홀로 전 우주의 큰 겁난을 마주하셨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셨으며 끝내 우리를 구도하셨다. 우리가 오늘 봉착한 요만한 좌절과 어려움에 낙담하고 망연자실해져서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우리는 마땅히 한 가지 생각을 품어야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사람을 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공연이라고 좋고, 내일의 (신당인) 대회라도 좋으며, 모레 인권성화라도 좋은데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사람을 구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이자 하나의 과정이다. 우리는 과정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또 결과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단지 우리가 지속적으로 이렇게 노력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구도해야 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념과 자비로 일체 저애력을 해결

사부님께서 애초에 어떻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서 우주를 신생(新生)으로 이끄셨는지 생각해보면 우리 눈앞의 요만한 저애력과 고난은 아주 작게 변할 것이며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眞善忍의 힘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것이다.

매표가 순조롭지 못하다고 하여 자신의 수련을 의심하거나 동수의 수련을 의심하고 우리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체 능력은 모두 이 몇 년 동안의 고난 속에서 조금씩 쌓아온 것이 아닌가? 사람을 구도하는 이런 위대한 능력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법제자 정체(整體)가 표를 파는 이 일에서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수련경지로 걸어갈 때면 일체 마난과 고난은 모두 아주 정상적으로 되며, 긴장할 필요 없이 3가지 일을 잘하면서 나아가면 된다. 잘하지 못했다면 다음에 잘하면 되고 문제를 발견했다면 즉각 수정하면 된다. 사부님께 더욱 감사드려야 하는데, 사부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은 여전히 대법제자의 성숙이잖은가,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압력을 감당하셨고 중생들은 고난과 위기를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중생을 구도하는 모든 일을 지속적으로 잘해야 하며 일시적인 흥분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또 표 판매량과 같은 결과를 중시할 필요도 없다. 수시로 정념을 발출해 이런 사람들의 몸에 있는 업력과 구우주 요소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는 이것은 3가지 일 중의 하나이며 잘하지 못해도 안 된다.

상호간의 신임과 격려는 이 시각에 아주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동수 사이에 절대적으로 상대방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함께 우주 생사의 큰 고험을 겪은 동수이자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다. 우리 매 사람은 사람을 구도하는 과정 중에서 모두 감당하고 대가를 치르고 있는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따라 힘닿는 대로 하면 된다.

동수에게 이상한 표현이 있을 때 어쩌면 그는 교란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격려이지 질책이나 원망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이 정체가 하나의 원용불파(圓容不破)한 정체를 이뤄내야만 우리가 진정으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 2008년 1월 18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8/1/18/505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