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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형식을 소중히 하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형식을 소중히 하자

작자: 핀란드 대법제자

【정견망 2009년 11월 27일】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 대학생일 때 장춘에서 대법수련을 시작했다. 그때 나에 대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은 매일 단체 법공부 연공에 참가해 동수들의 수련 체험을 듣는 것이었다. 일단 그 학습장에 들어서면 나는 매 대법 제자의 언행이 매우 바른 것을 느꼈고 나 자신의 부족을 능히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대법제자들이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환경을 매우 소중히 했다. 단체법학습과 연공은 끊어진 적이 없었다.

1999년 박해이후 중국 대륙의 단체 환경은 파괴되었다. 박해 초기에 나는 북경에 가려고 하다가 학교에 통제당해 마침내 구류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온 후에도 한동안 정학 당했다. 그때 나는 마땅히 북경에 가야함을 알았는데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외재적 압력이 커서 내 개인 수련은 마난을 돌파할 수 없었다.

바로 졸업하기 전 사부님의 자비로 나는 몇 명의 젊은 동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방을 얻었다. 그 기간에 우리는 매일 방과 후 함께 단체 법공부 연공을 하며 공동 정진하여 우리가 박해 중에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을 정도였다. 나의 심성은 다시 한 번 단체 환경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고되어 올라왔다. 2000년 7월 나는 혼자 북경 천안문 광장에 두 번 가서 연공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두 번 다 그 자리에서 석방되었다. 나는 당시 마음이 매우 순정했으므로 사악은 어떤 구실로도 나를 박해할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처음 태국에 갔을 때 동수들이 단체 연공과 법공부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중국대륙에서 나온 몇 명 동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단체 환경에서의 모순을 보고 다시는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고 줄곧 이 환경을 원망했다. 결과적으로 내 심성은 갈수록 뒤떨어졌고 마침내 동수들과의 모순은 내가 넘을 수 없는 관이 되어 버렸다.

2007년 어느 날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사부님, 저는 정말 정진하고 싶습니다. 동수들과의 모순을 벗어나고 싶으니 저를 도와 동수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결과 이틀도 안 되어 대만의 동수가 태국에 왔다. 공원에서 두 번 교류하여 마음에 맺힌 것을 다 풀었다. 대만 동수는 나와 동수간의 모순을 결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수련생 간의 피차간의 인연을 말했고 당초 함께 약속하여 조사정법 하기로 하세하여 비로소 이런 만고의 기연을 얻었음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마음속에 무엇을 버리지 못했을 때 우리는 사부님이 우리를 제도하기가 쉽지 않음을 생각해보고 우리가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때 우리 마음속은 또 무슨 버리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말은 나의 마음속에 맺힌 것을 다 풀어버렸다.

나는 재차 단체 연공환경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각종 각양의 모순이 있었고 때로는 다른 동수는 이런 저런 결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안으로 찾았을 때 나는 정말 이런 모순의 고험 중에서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 예를 들면 늘 동수를 돕는데 보답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반대로 내가 도운 동수가 나더러 좋지 않은 말을 들을 때 나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 기분 나빠하는 것의 배후에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과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무사무아(無私無我)가 아니며 진정한 자비가 아니었다.

내가 이런 모순이 나에 대한 일종 고험에 이며 나의 집착을 버리는 것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을 때 나와 모순이 있던 동수 역시 변한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수련이 정말 현묘함을 체험했고 동수와의 모든 관은 이미 넘어갔으며 마치 우리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속인과의 모순 중에 우리의 일반적인 정황에서 정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연공인임을 생각하여 일반인과 견식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수로부터 온 모순을 대해서는 항상 당신은 연공인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이 대법제자의 간의 수련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우리를 제고시키는데 쓴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나의 관을 넘긴 이 후 그때 나는 사부님을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매 대법제자들은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설사 우리에게 아직 의식하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고 사람 마음을 버리는 과정 중에 모순이 있으며, 우리가 이 단체 환경이 좋다고 여기거나 나쁘다고 여길지라도 우리는 그를 떠날 수 없다. 이 일체는 자신에게 수련하라고 준 것이며 이 환경은 우리의 한 몫의 책임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핀란드에 오게 되었다. 태국에서 수련과정을 겪은 후 여기에서 일체를 잘 하려면 우리 단체 환경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모든 단체 법공부와 연공, 교류에 참석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서방사회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여 나는 어떻게 서양인들과 소통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우리는 필경 대법을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아닌가. 나는 우리가 단체 수련하는 환경에서 나와 서양인 동수 사이에 이런 문화적 생소한 감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서양동수들과의 소통이 매우 좋았다.

이런 단체 환경 중에 나 역시 자신의 매우 부족함을 보았다. 매번 법공부 후 교류에서 나는 서양인들은 중국사람들처럼 내려가서 따로 작은 회의를 갖지 않으며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앉아 있음을 보았다. 나는 서양 수련생이 줄곧 우리 이 방면의 부족함을 참아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서양 수련생들이 매 하나의 건의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역시 나로 하여금 법을 공부하는데 겸허해야 함을 알게 하였고 내가 흔히 동수들과 모순이 있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또 매우 열정적으로 동수를 돕는 마음이 있는데 때로는 동수는 나의 방법을 좀 싫어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가? 이전에 나는 늘 “내가 당신을 위해 잘해주는데 당신은 왜 이런가?”라고 생각했다. 단체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서양인들이 일하는 방식과 심태를 보고 나의 집착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더욱 간단히 말하면 과시심이며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며 다른 사람의 위에 있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때 나는 수련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다. 단체 환경 중에서 우리 자신의 수련상태는 다른 동수에게 영향을 주며 우리 자신의 수련이 잘되면 잘 하지 못한 동수는 자기의 부족을 볼 수 있다. 나는 서양인 동수의 몸에서 자신의 부족을 볼 수 있었다. 이 한 단락의 마찰을 겪은 후 나는 함께 단체 법공부 하는 것이 중국 수련생이던 서양수련생이던 우리가 협조하는 중에 한 몫의 묵계를 증가시킴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단체 학습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이해를 증진하고 더 잘 협조하며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며 법을 실증할 때 비로소 정체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임을 깨달았다.

더 많은 수련생들이 핀란드에 옴에 따라 5월부터 8월 사이에 우리는 매일 단체 연공을 했다. 시간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였다. 장소는 헬싱키 기차역 부근의 공원.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연공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8월 이후 우리는 언어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 야외연공을 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언니와 함께 매일 녹음기와 플래카드를 가지고 갔다. 매일 무슨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몇 가지 일을 겪으며 단체 연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느 날 3시 경 집을 나서기 전에 비가 내려 나는 갈까 말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만일 내가 안 가면 녹음기와 플래카드가 없으니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역시 가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기차가 헬싱키 역에 정차했을 때 비가 멈추었다.

그날 연공이 끝날 무렵 독일의 젊은이가 공을 배우려 하여 내가 그에게 2장 공법을 가르칠 때에 머리를 들어보니 그의 표정이 마치 우리가 가부좌하여 입정할 때와 같이 그는 이미 입정에 들어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좀 천천히 해요. 이건 너무 좋아요.” 헤어질 때 그는 격동하여 내 손을 잡으며 대법을 얻은 그 기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했다. 이 독일 젊은이가 대법을 얻었을 때 마치 우리가 처음 법을 얻을 때의 그런 신성함과 미묘한 느낌이었다.

또 한번은 내가 언니를 따라 한낮에 집으로 돌아갈 때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 오후 세 시에 우리는 모두 잠이 들었다. 그런데 3시에 내 휴대폰이 자동적으로 울려 우리는 얼른 연공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 알람을 설정하지 않았다.

지금 정법 노정을 갈수록 빨라진다. 매 동수는 모두 시간이 나는 듯이 지나감을 느끼는데 많은 동수들이 정법의 일을 많이 짊어지고 있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단체 법공부와 연공, 교류하라고 요구하신 것을 나는 많은 동수들이 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어떤 수련생이 사부님께 물었다.

“제자: 저희 매체를 하는 사람들은 단체 법공부를 할 필요가 있지만, 인원이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 단체 법공부를 하는 것이 적합합니까?

사부: 이는 당신들이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하기를, 대법제자가 어디에 있든지 막론하고, 전 세계의 어느 한 구석에서 매체를 하는 수련생을 포함해, 모두 현지 불학회를 이탈하지 말고, 가장 좋기는 현지의 연공장을 이탈하지 말고, 모두 현지의 대법제자와 함께 법공부해야 한다.”

나는 오늘 우리가 어느 민족으로 왔든지 그건 모두 일찍이 우리가 역사 중에서 발원한 것이며 그 민족은 모두 우리의 책임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이 남겨주신 수련형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은 정말 하나의 형식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 매 지역 대법제자들에게 능히 공동정진하고 정체제고하며 서로 배합하여 우리가 역사의 사명을 완성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나의 깨달음이다. 동수들이 함께 힘쓰기를 희망한다. 수련의 길에서 공동정진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9년 유럽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발언고)

발표시간 : 2009년 11월 27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1/27/628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