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동북 대법제자 미자(微子)
[정견망] 사부님 설법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를 보고 자신의 최근 상태를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1997년 11월에 법을 얻었다. 그 때 나에게는 “전법륜” 과 “정진요지” 외에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경문이 얼마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얼마간의 경문을 차라리 베껴서 책으로 묶으면 읽는데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과외 시간을 이용해 아주 진지하게 베끼기 시작했다, 약 9시 경에 내가 한 단락을 다 베끼고 아래 단락을 베끼려고 보고 있을 때, 사부님 법상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건 빛으로 구성된 광채가 비할 바 없는 신으로서 가사를 입고 연꽃 위에 앉으셨는데 신체 주위는 오색찬란한 빛이 감돌고 있었으며 광채가 생생하고 위덕이 겸비했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눈 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더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진실하고 진실하게 사부님을 보았음을 알게 됐다. 나는 묵묵히 책상에 엎드렸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생각을 사부님을 보던 그 순간으로 멈추어 보려 했다. 그건 실로 너무도 위대하고 너무도 성스러워 인간의 그 어떤 언어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아름다움, 장엄함과 신성함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전법륜”을 베끼기 시작했다. 막 베끼기 시작했을 때는 나는 아주 진지했지만 그래도 글자를 빼놓거나 부호가 틀릴 때가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로 베끼기 시작했을 때엔 한 번 베낀 것이 먼저 번 베낀 것보다 나은 감을 느꼈다. 1999년 7.20 전에 나는 “전법륜”을 네 번 베꼈는데 매 한 번 베끼고 나면 법에 대해 모두 새로운 이해가 있게 되어 그야말로 수확이 가득했다. 한 번은 내가 손에 사부님께서 국외에서 하신 설법을 들고 낮은 소리로 읽고 있을 때, 자신의 몸이 텅텅 비고 오직 자신의 약간의 사유만 남아 자신이 법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99년 7.20 이후, 정법형세가 앞으로 추진함에 따라 아무리 해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음을 느끼게 됐고, 늘 사악의 참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부님께서 나의 부친처럼 여겨졌으며, 감옥에서 모진 고통을 겪고 있는 대법 수련생은 나의 혈육처럼 여겨졌다. 내가 이런 것을 보고 있는 한 어찌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진상 알리기를 중점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을 지나오면서 자신도 법공부를 한다고 여겼지만 많은 때는 입으로 법을 읽고, 눈으로는 대법 책을 읽지만 사상은 딴 데 가 있었고, 법공부가 마음에 닿게 하지 않았으며 형식에 흘렀을 뿐이다.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기타의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마땅히 제고해야 할 때건만, 오히려 사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비단 제고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또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당신들로 말하면, 대법제자라, 최후로 갈수록 마땅히 자신의 길을 잘 걸어야 하며,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일을 한 무더기 해놓고, 되돌아보면, 모두 사람의 마음으로 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한 것이지, 오히려 정념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대법제자의 위덕이 그 속에 없다. 다른 말로 바꿔 한다면, 신의 눈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을 얼버무려 한 것이고, 위덕이 아니며, 수련도 아니다. 비록 했지만 말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것은 헛되게 한 것이 아닌가? 반드시 법공부를 잘해야 하며, 그것은 당신들이 귀위(歸位)하는 근본 보장이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은 이 몇 년 동안 대법 중에서 제고가 아주 적은데 참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죄송스럽다.
내 주변 수련생들을 보면서, 특히 일부 노인 수련생에게 많게 적게 일부 문제가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나의 인식을 좀 말해보려 한다.
1. 법공부가 마음에 닿지 못하고 형식에 흐른다.
가장 뚜렷한 한 가지 현상으로는 날마다 단체 법공부 할 때, 한 강을 다 공부하면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가려고 하고 마음이 법공부에 있지 않으며, 바쁘게 가서 속인의 일을 하려 한다. 흔히 보건대 아주 많이 공부한 것 같지만 마음에 닿지 못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여 많은 때 일하는 것을 보면 속인과도 같은데 이렇고 서야 어찌 진정한 수련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때 누가 좀 교류를 해보자고 제기하면 흔히 몇 사람만 거기에서 자신의 감수를 말할 뿐, 많은 수련생은 자신의 내심에서 어떻게 부족함을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슨 할 말이 없으며, 또는 자신은 엄청 잘하고 있으니 무슨 할 말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형세가 긴장해 지기만 하면 집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단체로 법공부 할 때면 속인이 흥미를 느끼는 화제를 꺼내는데 누가 지적해 주면 또 아주 싫어한다.
여기에서 나는 수련생 사이에 서로 교류하여 제고한 한 가지 일을 말해 보려 한다. 한 번은 나와 수련생이 각자 최근의 수련상태를 교류하게 됐는데 나는 그녀의 수련 상태에 대해 나의 인식을 좀 말했다. 조금 지나자 나는 그녀의 얼굴빛이 처음의 검은 색으로부터 하얘지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둘은 함께 앉아서 또 12시 발정념을 했고 이어서 그녀가 감옥에 있었던 상황을 얘기했다. 나는 또 최근에 내가 대법을 실증한 방면에서 한 일부 일에 대해 말했는데 나중에 와서 그녀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나는 그녀에게 거울을 보라고 했더니 그녀도 이런 현상을 승인했다. 이후에 나는 법에서 깨닫게 됐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건 그녀가 “일부 사악한 요소”를 폭로했기 때문에 사부님의 가지 하에 이런 물질은 우리 둘의 마당에서 많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가 평소에 단체 법공부 할 때 교류 토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2. 법공부가 마음에 닿지 않으면 머리가 흐리멍덩하여 일종 상태를 형성하게 되며 수련인에게 있어야 할 상태를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유럽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이야기하기를, 참으로 이상하다. 내가 책을 볼 적에 한번 다 보고 나니 같지 않으며 다시 두 번째로 이 책을 보니 전체가 또 같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이 첫 번에 다 보고 난 뒤에 많은 문제가 있다. 왜 이럴까? 왜 저럴까? 그러나 당신이 두 번째로 볼 적에 당신은 모든 문제가 모두 해결되며 모두 당신에게 해답해 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새로운 문제를 제출할 수 있는데 수련은 승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시 제출한 문제는 첫 번에 책을 보아서 생각된 문제와 얻은 답안 문제보다 높다. 당신이 세 번째로 볼 때에 당신은 당신이 두 번째에서 제출하고자 한 문제,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세 번째에서 모두 당신에게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보노라면 끊임없이 이러할 것이다. 지금 책을 봄에 있어서 백 번도 넘게 본 사람이 무척 많다. 그는 이 한 부의 법을 놓지 못하게 됐는데, 그는 볼수록 그 속의 것이 더욱 많고 내포가 더욱 크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만약 배후 그 공간의 불(佛)·도(道)·신(神)이 당신이 마땅히 제고해야 할 때임을 보았을 적에 그는 자연히 당신으로 하여금 그 한 경지 중에 존재하는 이치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은 갑자기 이 한 구절 말의 또 하나의 내포를 알게 됨을 느낄 것이다.”
예전에 “전법륜”의 “주화입마” 그 한 절을 학습할 때, 이 단락 법은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이라 여기고 열심히 배우지 않았다. 이후에 내가 이 한 단락의 법을 외울 때 나의 어떤 상태는 어쩌면 “주화입마”의 것과 똑같을까 하고 여겼다.
“정신병은 바로 사람의 主意識(주이스)가 너무 약한 것이다. 어느 정도로 약한가? 마치 그 사람이 늘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정신병자의 主元神(주왠선)은 바로 이러하다. 그는 이 신체를 상관하려 하지 않고 그 자신은 늘 얼떨떨하며 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때면 副意識(푸이스), 외래 정보가 곧 그를 교란한다. 각개 공간 층차가 그렇게 많은데 각종 정보가 모두 그를 교란한다. 더군다나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이 전생에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 있고 또한 채권자가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인 즉 우리가 돌파할 수 없게 했다. 즉, 각종 일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법공부 할 때 머리 밖에 한 층의 껍질이 씌워진 감을 느꼈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이후에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을 배울 때 이런 부의식, 외래 정보가 나를 교란하는 것임을 알게 됐는데 그 원인은 나의 주의식이 그리 강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었다. 표현되는 것으로는 사업 중에서 두뇌가 그다지 청성하지 못해 많은 때에는 소홀하여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곤 했다. 진상을 할 때 양식에 따라 하기를 즐기고 장기적으로 하다 보니 습관으로 되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 보기에는 간단한 일 같았지만 도리어 오랫동안 법에서 제고함이 매우 적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많은 때에 배후의 관념이 나의 감각 기관과 사지를 지시하여 임무를 완수하게 했을 뿐 주의식이 아주 청성하게 자신을 주재하지 못했는데 얼마나 얼떨떨한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후천적으로 양성된 일종 애호 중의 습관과 집착인 것으로, 느낌을 추구하고 있는데, 단지 요만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자신이 이렇게 했다는 생각을 하니 그야말로 무서웠다. 오랫동안 형성된 이런 사유습관은 일종의 물질을 형성했는데 끈쩍끈쩍한 물건이 우리의 바깥에 덮여 있어 우리가 돌파할 수 없게 했다.
내 신변 일부 수련생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더욱이 일부 노인 수련생들은 연세가 많고, 형성된 관념과 습관은 짧은 시간에 버릴 수 없어 좋지 못한 것들의 교란을 더욱 쉽게 받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많은 때에 법공부를 묵독하기 즐긴다. 입과 눈은 글을 따라가지만 읽은 것이 무엇인지 지나간 후에는 모른다. 이렇게 되어 하나의 관념의 생겼는데. 여러 사람이 모두 이렇게 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이렇게 읽는다는 것이다. 몇 십 번을 읽어도 법리상에서 진일보의 승화를 얻지 못했다. 오래되면 일종 습관이 형성되고 이로부터 법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수련이란 무엇인가를 말해 보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연공인(煉功人)을 두고 말하면 사람의 의념이 사람의 공능을 지휘해 일을 하나; 한 속인으로 말하면 의념이 사람의 사지・감각기관을 지휘해 일을 하는데, 마치 한 공장의 생산 사무실, 공장장 사무실에서 지령을 내리고 구체적인 각개 직능부문마다 제각기 할 일을 하는 것과도 같다. 마치 부대의 지휘부서와 같이, 사령부에서 명령을 내리고 전체 부대를 지휘해 임무를 완성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전법륜”)
이렇게 오래 되면 속인이 임무 완성 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의념이 입을 지휘하고 눈으로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고, 열심히 법공부하여 깨닫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심성 상에서 제고하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시시각각 모두 법으로 자신을 요구한다면, 다른 사람과 모순이 생겼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수련생 가운데서 제 3자가 문제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할지라도 이 일이 만약 자신에게서 생겼다면, 대법의 요구에 따라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훌륭한 것이다.
2011년 션윈 공연에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람 구하기 정말로 무겁네!(救你實在沉) 사람 구하기 정말로 무겁네! 사람 구하기 정말로 무겁네!” 이는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우리에 대한 부름이며 경고다! 우리는 반드시 착실하게 법공부 가운데서 제고해야 한다! 진정으로 법공부를 하여 법을 얻어야 하고 수련인다워야만 억만년 되는 사부님 자비한 구도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법공부할 때 법공부하는 한 편 자신의 언행을 대조해 보고, 부족함을 찾아내 고친다. 물론 어떤 때 집착심을 단숨에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하나의 과정, 한 동안의 시간을 거처야만 되는데 이는 바로 법과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정도를 고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벽곡” 그 한 절에서처럼 처음 보기에는 도가에서 수련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벽곡해야 하고 우리 대법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수련생들이 불법적으로 감옥에 납치당해 갔을 때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일종의 벽곡과 비슷한 상태에 처했다. 만약 우리가 두뇌 속에 사부님께서 “벽곡”에서 말씀하신 법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틀림없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예를 든다면, “또 한 가지 정황이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사법(邪法)을 연마(練)한다고 한다. 무엇이 자신도 모르게 사법을 연마하는 것인가? 즉 사람이 모르는 정황 하에서 사법을 연마함이다. 이런 일은 아주 보편적이며 그야말로 너무나도 많다. 바로 내가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연공(練功)함에 사상이 바르지 않은데, 당신은 그가 거기에서 참장을 하는 것을 보라. 지쳐서 손을 떨고 다리도 후들후들 떤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한가하지 않은데, 그는 생각한다: 물가가 오르려 하는데, 나는 좀 사야겠다. 연공(練)이 끝나면 나는 바로 가서 사야겠다.”(“전법륜”)
어떤 수련생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는 다른 문파 중의 현상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우리 수련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나 자신은 깨달았다. 우리 생활 중의 매 일분일초마다 모두 일종의 수련 상태에 처해 있다. 당신이 법공부, 연공할 때만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진상을 알리는 것도 수련이고 당신이 자식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집안일을 할 때도 수련이 아니란 말인가? 역시 수련인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 모두가 “진선인”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곳곳마다 일마다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 수련 중에 있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도 중에 있다”에서 말씀하셨다.
“마음에 두지 아니하거니 세상과 다툴 것 없노라
보고도 보지 못한 듯하니 미혹되지 않노라
듣고도 듣지 못한 듯하니 마음이 어지럽지 않노라
먹고도 맛을 모르는 듯하니 입맛의 집착을 떼노라
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 늘 도 속에 있노라
조용하나 생각하지 않나니 현묘함을 알 수 있노라”
2011년 8월 23일 정견주간에 “어떻게 법공부를 잘 할 것인가(怎樣才能學好法)”하는 문장이 실렸는데 읽고 나서 나는 깊은 계발을 받았다. 많은 문제를 심입되게 얘기해 지금의 내 법공부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많은 때에 대법 일을 적지 않게 했지만 법공부는 마음에 닿지 않았고, 자신의 경지가 제고되지 못했으며, 법리에서 진일보 승화를 얻지 못했다. 몇 년 동안이나 속인이 속인의 일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그르치는 것과 무슨 구별이 없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예전에 불평이 자자하던 질투심과 색욕심을 정법이 진일보 추진됨에 따라 일부분을 버리게 됐다. 하지만 뒤이어 과시심이 또 팽창하기 시작해 일정한 정도에서 자아적인 마음이 여전히 무척 강대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수련생에게 강요하기 좋아하고, 어떤 때는 사상 속에 만약 내가 사악한 곳에 간다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사부님 요구대로 하지 않아 구세력이 배치한 울타리 속에 빠졌다. 이런 마음은 모두 수련인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대법에 대조하니 이런 마음이 무서운 것임을 보아냈다. 앞으로 나는 법공부를 강화해 진정 자신이 주의식이 주관하게 하고, 법을 배워 법을 얻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의 길에서 착실하게 걸어가겠다.
발표시간 : 2011년 9월 3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9/3/770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