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가자
작자: 동진(同眞)
[정견망] 법을 막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매번 수련생이 자신이 법을 얻은 후의 신기한 체험을 말할 때면 매우 부러웠다. 어떤 때 자신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아무 일 없이 무사했다는 수련생이 하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난 왜 이런 일을 만나지 못할까? 만약 나도 교통사고를 만나 아무 일 없이 무사할 수 있다면 그건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고 또 다른 수련생에게 선전할 소재를 갖게 될 텐데.”
또 그 후에 매번 수련생이 죽음을 무릅쓰고 걸어 나와 법을 보위하고 수호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생각했다. “나도 감옥 생활을 겪을 수 있다면 감옥에서 견정불굴할 것으로 대법의 위대함을 더욱 실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에게도 이른 바 수련생에게 선전할 “밑천”이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변이된 관념의 선동은 나중에는 마침내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게 되어 자신에게 8년 감옥살이 하게 했는데 몹시 침통한 교훈이다.
감옥에서 나는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법을 얻어서부터 대법에 들어온 이래 법에서 이렇게 여러 해 걸어오면서 나의 사유는 줄곧 근본적으로 개변되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바라던”데로부터 “감옥살이를 바라는데” 이르기까지 본질상에서 모두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기 위해서였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평안무사 할 수 있었다는 경험은 대법의 위대함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뽐내고 자신을 선전할 수 있는 “밑천”으로 생각했다. 이른바 특수한 경험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이 수련생 앞에서 한 층 높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옥살이를 바라는”것은 자신이 능히 옥살이를 겪을 수 있으며 또 견정불굴하다고 생각했는데 뼛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실증하려는 것이 아닌가? 기점을 틀리게 세웠고 자신을 실증함을 대법 실증 위에 놓았으므로 사악이 틈탈 기회를 얻게 됐던 것이다. 구세력은 본래부터 자신을 법보다 중히 보고 개인 수련을 정법보다 중히 보는데, 사유가 구세력에게 부합됐으므로 구세력은 비로소 감히 잔인한 수단을 쓰게 된 것이다.
“그것이 당신을 박해하지만 사부마저도 무슨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꼬투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러한 생명을 보라. 이것이 당신의 제자인가? 이렇게 부족한데 그를 좀 혼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를 혼내주려 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아직도 그를 혼내주지 않는가!”(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자신에게는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과시심이 있는 외에도 또 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모두 직접 옥살이 화를 불러오는 근원이 됐다. 표면상으로는 대법의 위대함을 실증하고자 감옥살이를 바라고 교통사고를 바란 것 같지만 실은 뼛속으로는 자신을 실증하기 위해서였다. 구세력은 나 스스로 감옥살이 재난을 원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비로소 감히 그 당시 8년에 달하는 옥살이 박해를 배치했던 것이다.
법공부 강화를 통해 드디어 이런 변이 관념의 근원을 찾아내게 됐는데 근본상에서는 바로 하나의 “사(私)”자였다. 신(新)우주와 구(舊)우주 생명의 근본적 구별이란 바로 신우주 생명은 위타(爲他)한 것이고, 구우주 생명은 위사(爲私)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비록 구(舊) 우주 중에서 탈태해 나온 것이고 구(舊) 법리 중에서 걸어 나온 것이지만, 그러나 구 우주, 구 법리, 구(舊) 생명, 일체가 모두 당신을 끌어당기고 있다!”(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오직 정념으로 이런 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고 정법의 이치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갈 수 있다. 이 “사”를 인식하고 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하자 자신 앞에 펼쳐진 것은 대법의 성스러움과 위대함이었다. 진정으로 대법을 첫 자리에 놓고, 진정으로 자신을 법속에 용해시켰을 때 마음속에 솟아오른 것은 법에 대한 비할 바 없는 확고한 마음이었다.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거센 파도를 일 수 있는데 이는 물방울의 작용은 그 바다의 위력 속에서 체현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법속에 용해되며, 자신의 모든 것으로 대법을 실증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며, 비로소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할 수 있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1월 4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2/1/4/797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