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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정하게 실수하여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사람을 구하자

견정하게 실수하여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사람을 구하자

글/미국 조지아 대법제자

[정견망 2012년 7월 15일]

존경하는 사부님,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샌프란시스코 대기원 본사에서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표할 제목은 “협조인이 견정하게 실수(實修)해야만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사람을 구할 수 있고, 비로소 직접 중생을 대면하는 대기원 그룹 중에서 더욱 큰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에 몇 개 방면으로 나누어 여러분과 제가 걸어온 심성 수련의 노정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1. 전업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투입

저는 1998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법을 얻었습니다. 5월 어느 날, 대법을 수련하던 한 과학자가 저의 집에 왔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그가 일부 무슨 높은 것을 이야기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의 느낌은 아주 좋았으며 무슨 장애가 없이 그렇게 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대해서도 모두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많이 법공부하고 많이 홍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999년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후 종래로 대법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법학습을 견지하고 견정하게 수련하면서 각종 방법을 다 강구하여 적극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대열로 들어갔습니다.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우리는 돈을 내서 속인의 신문에 파룬따파의 좋음과 파룬궁이 박해 받는 진상을 게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이른바 매체들이 중공사당의 압력을 받아 중공에 매수 당했고 따라서 우리의 광고를 게재해주는 것을 거절했으며 게다가 끊임없이 중공을 대신해 날조를 했습니다.

당시 매체 상황을 피부로 느낀 일부 수련생들이 독립적이고 감히 말을 할 수 있는 중문매체를 설립하여 기사를 충실히 보도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2000년 8월 “대기원시보” 와 “대기원뉴스 인터넷사이트”가 미국에서 정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대기원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속인회사에서 근무했는데 동시에 대기원 관련 전화도 받아야 했습니다. 2001년 초, 전력을 다하여 대기원 일을 잘하기 위해 높은 월급을 주는 컴퓨터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당시 전력을 다해 대법 일을 잘 하려는 마음이 매우 순정했고 생각도 매우 발랐는데, 별로 생각할 것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유일하게 많이 생각했던 점은 바로 어떻게 하면 제 아내가 모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 아내는 직업이 없었고, 아이도 막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또 홍법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유일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아내가 이 사실을 곧 알게 된 후 역시 제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제자가 오직 실속 있게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그 순정한 마음이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저는 아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기원의 시작부터대기원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줄곧 대기원에서 전업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수입은 모두 대기원의 광고영업에서부터 왔습니다. 대기원에서 저는 판면편집, 광고제작, 발행, 지역사회취재, 영업 및 관리를 했습니다.

2. 천하를 종횡하며 대법을 실증하다

우리 집은 애틀랜타에 있습니다. 2004년 뉴욕에 가서 법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뉴욕에 화인이 특히 많고 뉴욕 대기원도 강화할 것이 필요함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맨해튼 진상항목이 시작되기 반년 전에 뉴욕에 와서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가했습니다. 뉴욕의 생활조건은 애틀랜타 집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수련생들이 함께 살았는데 저는 객실에서 땅에 단지 침대시트 한 장을 깔고 잤습니다. 어떤 때는 쥐똥이 침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총체적으로 뉴욕에서 이렇게 시작해 5년 반을 했습니다.

2009년 애틀란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으며 또 그곳에서 정식으로 대기원 경영본부를 설립했습니다. 2010년 대기원 책임자의 배치에 협조해 저는 또 샌프란시스코 대기원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항만은 미국의 3대 화인 커뮤니티 중의 하나로 중공 강택민 집단이 미국으로 물러날 것을 대비해 장기적으로 만든 기지로 줄곧 사악의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2010년 10월 대기원은 본부를 샌프란시스코만에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에 막 도착했을 때 신문사경영에 심각한 손실을 입어 직원들의 사기가 아주 떨어져 있었습니다. 신문사에는 항상 단 2-3명이 사무실에 나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저는 현지 수련생들과 법에서 교류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우리 대부분 사람이 모두 외지에서 왔고 현지의 상황에 잘 익숙하지 않았기에 많은 상황에 대해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집착과 기대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또 많은 실망도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하나의 집착이 또 모두 폭로되어 나왔습니다. 속인마음이 수시로 올라왔는데 어찌하여 기타 수련생들은 주동적으로 도와주지 않는가 하는 일종의 정서가 생겼습니다.

한번은 어느 수련생이 이야기하기를, 당신들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은 모두 집이 없지만 우리 현지 수련생은 집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어떻게 당신들처럼 전업으로 대법 일을 할 수 있는가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지 수련생들은 가정이 있고 직장일을 해야 하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협조인으로서 마땅히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했으며 단지 영업실적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일부 곤란을 좀 더 많이 해결해줘야 했고 더 많이 법에서 교류해야 했습니다. 이래야만 수련생들도 비로소 더욱 훌륭히 대법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수련에 있어 사실 협조인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은 것으로 비단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팀의 기타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공동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자신의 심태가 바르게 조절되니 문제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습니다.

우리는 또 이곳 신문사 직원들이 수련에서 비교적 느슨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매주 법학습에 참가하는 사람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동적으로 현지 불학회에 협조해 여러 사람들을 조직해 법공부와 교류를 진행했습니다. 오직 법에서 제고되어 올라와야만 매 한명의 대기원일에 참여하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실수(實修)의 상태에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샌프란시스코 대기원신문사가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때이며 비로소 진상을 알리는 이 신문으로 하여금 샌프란시스코만의 천가만호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명확한 목표가 생긴 후, 곳곳에서 법을 스승으로 삼는 수련환경이 신문사 내에서 차츰차츰 형성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의 수련생들은 샌프란시스코 대기원시보가 지역사회에서 새롭게 활약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고 전업적으로 샌프란시스코 대기원 일에 참여하려는 수련생들이 세계 각지에서 너도나도 모여들었습니다. 신문내용도 풍부해졌고 두께도 증가되었습니다. 처음 30여 면으로부터 현재 80여 면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원래의 적자경영에서 현재는 매달 모두 새로운 경영성적을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3.협조 중에서 착실히 수련하다

사존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설령 당신이 대법제자의 일을 한다 해도, 천상에는 텔레비전방송국이 없고 신(神)에게는 신문도 없다. 이것은 모두 속인사회의 형식이다. 만약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않고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세상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

대기원이 창립된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줄곧 영업부문에서 일을 했습니다. 대기원이 어려운 시각에 부딪쳤을 때, 저는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광고경영의 부족을 강조하면서 눈에 띠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문제였고 기타 부문과 모순이 생김으로 하여 영업부문과 기타 부문사이에 다툼이 생기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소난트 회의를 6시간까지 길게 하기도 했습니다. 끝이 없는 논쟁과정 중에서 수련인의 기본적인 상태는 전혀 없었고 머리속에는 완전히 속인의 생각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대기원회의에서 설법을 하신 후, 우리 경영부문과 편집부문은 앉아서 함께 법에서 소통하고 서로에 대한이해를 깊이 하며 법에서 문제를 보면서 상대방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대기원은 하나의 정체로서 오직 각 부문이 협조에 있어서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부문 간의 간격도 점점 없어졌고 대기원의 경영상황은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서로 협력하는 데에서 마음속으로 불만이고 격동되어 화를 내는데, 그때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이 어떤 상태이며 출발점이 어떤 사람 마음인지 돌아보기 어렵다. 다수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는 것, 이 두 가지 마음의 반응이 가장 강렬한 것이다.”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

매번 이 한 단락 법을 읽을 때마다 감수가 모두 매우 큽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 여기기에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러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자연적으로 자신을 실증하지 법을 실증하는 것이 되지 않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항상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으로 하여 일찍 대법일에 손실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더 정진하자”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매 한 항목의 주요 책임자, 제1책임자, 그는 바로 그 항목의 대표이다. 각지 불학회의 제1책임자를 포함해, 그가 바로 이 일의 대표이다. 그가 한 것에 대해, 그가 요구한 일에 대해, 그가 내린 결정에 대해, 무조건 집행하라, (열렬한 박수) 지금부터 시작이다. 무조건 집행하라.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는가?”

나는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알아들었는가? 아니었습니다. 대기원이 시작될 때부터 저는 제1책임자와 함께 일하고 수련해왔습니다. 자연적으로 관계가 아주 밀접했습니다. 대법 일을 하는 중에 시간이 오래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은 대기원 일에 대해 매우 충성하고 제1책임자에 대해 아주 협조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을 때 책임자는 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완곡하게 일부 말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저는 마음이 매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매우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속으로”나는 줄곧 당신을 이렇게 좋게 대하는데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진실하게 대하지 않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저는 법공부를 강화하고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말할 때 저는 대기원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지 속인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며, 저는 또 책임자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구원되는 것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 돌아오면 일부 일이 눈에 거슬리고 주동적으로 제1책임자를 수련하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을 수련해줄 때 자신의 수련상태는 뒤죽박죽이고 게다가 신체상에서 사악에게 틈타게 됨을 발견했습니다. 2012년 2월의 어느 날, 저는 갑자기 눈이 불편했는데 자신이 일에 너무 노력해 체력적으로 소모가 너무나 커서 조성된 것인가 하고 여겼습니다. 후에 발견하기를, 눈이 마르고 뜰 수가 없어 늘 감아야 했고 입도 삐뚤어지고 얼굴도 삐뚤어졌으며 게다가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저는 이것은 사악이 저를 교란하고 대법일을 교란하는 것임을 알고 강도 높은 발정념을 했습니다. 한번 발정념하게 되면 한 시간씩 했고 또 법공부도 강화했지만 갈수록 엄중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인데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만나지? 앞으로 집의 수입은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수련생들도 “당신은 협조인이고 줄곧 아주 정진하고 수련도 괜찮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지금 이 모양인가?”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인의 각종 마음이 모두 다 튀어나왔습니다. 이때 비록 발정념을 하기도 하지만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나의 상황은 모두 책임자가 나에게 조성해 준 것이다. 그는 내가 마치 늙은 황소마냥 일해줄 것만을 바랄 줄 알지 수련상에서 아주 적게 나를 도와준다”라는 생각이었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습니다.

비록 이 관을 그렇게 잘 넘기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비틀거리며 걸어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저는 신사신법의 엄숙성에 대해 청성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사신법은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진정으로 마난에 부딪쳤을 때 법의 요구에 따라 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 이점에 대해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장 똑똑했습니다. 또 자신과 기타 수련생간의 차이도 보았습니다. 이후 저는 정말로 결심을 내리고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의 엄숙함과 저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이 중대하기에 반드시 실수해야만 비로소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고 더 많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그 후의 일중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제1협조인을 잘 협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일종의 책임과 사명

대기원에서는 제한된 수입으로 말미암아 경영 협조인 역시 자신이 스스로 한편으로는 광고영업을 하면서 한편으로 협조를 해야 했으며, 동시에 또 주관 및 기타 부문책임자와 함께 경영기획 및 전략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한 방면으로는 제 자신이 광고에 투입하는 시간이 좀 적어지게 되고 다른 방면으로는 광고를 하는 중에 기타 영업직원들과 시장을 놓고 충돌이 있게 됩니다. 이 방면의 교훈 또한 매우 많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협조할 줄 몰라 심성마찰 혹은 기타 곤란에 부딪칠 경우 수련의 기회로 삼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 생각이 막힐 때면 협조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염두가 생겼습니다.

마음속으로 “나 혼자 광고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수입도 높을 텐데” 하며 이익의 마음이 튀어나왔습니다. 협조인 일을 하면서 마음에 거슬리는 일에 부딪칠 때면 어떤 때는 심리적으로 편안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몇 마디 칭찬해줄 때면 비교적 기뻐집니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 (정진요지 – 수련자는 자연히 그 중에 있다 (修者自在其中)) 사실, 후에 천천히 발견했는데 관리한다는 것은 사람을 관할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인데 사람을 구하는 일종의 책임과 사명이었습니다. 법에서 제고되어 올라온 후, 더욱 주동적으로 다른 팀원을 도울 수 있게 되었고 명리지심을 담담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팀 인원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모두들 더욱 훌륭히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길 수 있게 되었으며 업무상에서도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집을 떠나 생활하는 저에게 있어 다른 하나의 고험은 바로 가정에 대한 정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상태가 좋을 때는 일체가 모두 아주 좋았으나 수련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각종 타격과 사람의 마음이 부딪치는 일을 만나면 “왜 다른 사람은 집을 떠나지 않고도 수련할 수 있는데 하필 나는 왜 집을 떠나 수련해야 하는가?”하면서 정이 움직이게 됩니다. 한번은 아내가 저와 교류하며 말하기를, 그녀가 장기적으로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있어 무더운 여름에 혼자서 정원에서 풀을 벤 적이 있는데 같은 주택단지에 사는 외국인이 아내에게 싱글맘이 아닌가 물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일체는 모두 자신이 정말로 정진실수(精進實修)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대한 고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악의 박해를 당하여 돌아갈 집이 없고 온갖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었는데 나는 미국에서 자유롭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며 조사정법을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정도 점차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모두 수련을 하는데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게 더 많이 법공부를 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며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더 많이 노력하고 속인의 자식 정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도록 깨우쳐줍니다.

5. 시기를 틀어쥐고 진상을 알려 신문사의 비약을 실현하자

2012년 2월 충칭사건이 발생한 후, 천상이 변화되고 있고 대기원은 사악을 폭로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중에서 주동적이고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이에 상응해 대기원의 경영도 하면 할수록 더 좋아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주간신문은 40여 페이지에서 88페이지로 증가되었고 게다가 몇 개 신문사 중에서 우리가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으며 사악한 중공의 통제 하에 그것을 대변하는 매체를 멀리 초월했습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독자든 아니면 상가든 모두 우리에 대해 괄목상대하며 또 이전에 그러한 매체에서 광고를 실었던 고객들도 주동적으로 우리 매체에 광고를 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일찍이 한 사악의 매체에 20몇 년간 광고를 게재한 한 상가는 주동적으로 우리와 2분의 1면 전면 칼라로 일년 계약을 체결했고, 일찍이 신화사에서 일한 적 있는 사람은 우리의 영업직원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세인들은 각성하고 있으며 천상은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단락 시간에 사악의 통제를 받은 악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였는데 중공을 대변하는 매체 싱다오일보는 이 일을 갖고 가짜뉴스를 제작해 세인을 독해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 수련생들은 주동적으로 차이나타운 및 싱다오신문사에 가서 진상을 알렸고 어떤 수련생은 중공영사관에 가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대기원시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사악한 매체-싱다오일보의 날조뉴스사건을 폭로하는 중에서 큰 지면을 할당하여 중공 앞잡이가 폭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습격한 사실진상을 보도했는데 신속히 증거를 확보하고 진실한 사진을 게재하여 날조매체를 여지없이 반박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만의 화인들로 하여금 피하던 데로부터 얼굴을 맞대고 사악한 매체를 폭로하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탄복하게 하였습니다. 대기원의 신속한 보도 역시 샌프란시스코만 화인들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관점을 개변시켰습니다. 우리가 싱다오일보가 대기원시보의 진상보도 앞에서 힘껏 맞붙어 싸울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을 보았을 때 샌프란시스코만의 수련생들은 모두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師徒恩])를 체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현지 불학회에 긴밀히 협조하여 각자 맡은 바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영업직원은 정력을 집중해 영업 업무 중에서 진상을 알려 상가를 우리 매체로 이끌어 왔습니다. 이 수개월 동안 대기원 전체 직원의 수련상태는 빠른 속도로 제고되었고 우리의 영업매출도 신속히 증가되었습니다. 사장이 제정한 6월 한달 40만 달러 계약목표를 3주가 지나도록 우리는 겨우 15만 달러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팀 정체적으로 법에서 교류를 하였습니다.

한 수련생이 “사부님께서는 “희망이 없을 때일수록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자, 다른 한 수련생이 “우리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감으로 충만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한주에 2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40만 달러 목표인데 단지 35만 달러만을 완성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련생들은 또 법에서 교류했습니다. 우리는 일제히 “정해진 목표는 마음대로 변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언급하기를, 사실 또 두개의 큰 광고가 거의 계약성사되다 말았는데 합치면 마침 40만 달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일부 수련생들이 40만 목표에 대해 느슨해져 조성된 것이었습니다.

대법의 위력은 대기원의 수련환경을 갈수록 순정하게 했으며 대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지혜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올 연말 전에 샌프란시스코 현지의 사악한 매체를 철저히 격패시켜 더욱 많은 중생으로 하여금 구원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건이 되는 수련생들과 함께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사람을 구하기를 희망합니다.

이상은 개인 수련의 깨달음이니, 합당하지 않은 곳은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발표시간: 2012년 7월 1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