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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있는 동수들을 깨우쳐 주다

글 / 문선(文善)

[정견망 2003년 10월 7일] 명혜 편집부 문장 <<엄숙한 가르침>>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일부 사람들은 사부가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더러 모두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이 말씀하셔서 인민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밝히기를, 사부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일단 말한다면, 그들이 더는 자각적인 본인의 정념(正念)에서 우러나온 행위가 아니다. 답안이 나오면 시험은 결속되는 것이다. 나와서 법을 실증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역시 영원히 기회를 잃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경문 <<건의(建议)>>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로지 대법속에서 좋은 점만 얻으려 하고 있고 도리여 대법을 위하여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사람은 신의 눈으로 본다면 이러한 사람은 가장 좋지 못한 생명이다. 게다가 이 법은 우주의 근본이다. 지금까지 걸어 나오지 못한 그러한 사람들은 이번 마의 난이 지나간 후 곧 도태될 것이다. ”

나는 <<엄숙한 가르침>>과 경문 <<건의>>의 학습을 통하여, 사부님께서는 지금도 사람중에서 걸어나오지 못한 동수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무엇때문에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을 우리가 만나게 되고, 무엇때문에 우리가 그들과 접촉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며, 아마 그들이 우리와 무슨 인연 관계가 있거나, 혹은 전생에 친구일지도 모르며, 혹은 기타 다른 내포가 있을지도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응당 그들 속인의 일면을 도와주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의 우리는 사부님의 동문 제자로서 우리가 수련 중에서 곤난에 부딛쳤을 때, 사부님께서는 넘어진 우리들를 여러번 붙잡아 주셨으며, 동수들은 한번 또 한번 우리를 도와 주었다. 사부님과 동수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 주지못할 그 어떠한 이유도 없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동적으로 그들에게 전화를 걸며,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 교류하여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며, 그들로 하여금 법공부에 많이 참석하기를 고무 격려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기만 한다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려있으므로(修在自已,功在师父)”, 사부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주실수 있다. 단, 천상 변화에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안 되므로 우리는 주동적으로 가서 해야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동수들을 구원하여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깨어나라(清醒)>>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늘 이야기 하였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티끌만치도 자신이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이야기 한 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끔 할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사업 중의 어투, 착한마음, 게다가 도리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될 수 없다!”

사실 동수를 돕은 과정은, 역시 자기를 수련하는 과정이며, 돕는 중에서 자기의 집착심이 드러나기에 그것을 즉시로 버려야 한다.

관심과 정신적인 위로는 사람 일면에서 표현되는 선이지만, 우리 수련자의 선은 속인보다 한층 높은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동수지간에 동수의 집착을 보았을 때,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집착을, 마치 자기의 집착을 본것 마냥 말하는 이것은, 수련인의 선한 표현이다. 동수가 사악의 교란을 받아 관을 넘기지 못할 때, 동수가 유형 혹은 무형의 사악의 박해를 받을 때, 우리 동수지간에 서로 도와주면서 정념을 발하여야 하며, 동수를 도움에 있어서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여야 한다.

질책하거나 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말로 하여 동수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뒤에서 의론하지 말아야 한다.

강박적으로 상대방을 설복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동수에게 나쁜 생각과 정보를 가하지 말아야한다. 예를 든다면, 그들은 걸어 나올 수 있을까? 그들은 나의 말을 듣을까? 등등, 동수를 돕지는 않으면서, 먼저 나쁜 생각부터 가한다. 우리의 말은 모두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동수에게 장애를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수를 고무 격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심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동수가 법을 얻은 후,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홍음>>중 <<태산에 올라(登泰山)>>에 나오는 “허공에 머무르면 제도받기 어려워라.”라는 구절처럼 여러면에서 교란을 받는다고 하자. 이때, 우리 동수들은 그를 부축해야 하며, 그로 하여금 마난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법을 실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진상을 알려, 정법의 노정을 따라 잡게 해야한다.

이것은 제일 큰 선이며,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응당해야할 일이다. 동수를 도와주는 것이, 표면으로 볼 때면 법공부 시간을 좀 지체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사실 여기에는 하나의 마음이 존재하고있다. 그것은 곧 사심(私心)이며,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실 한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만약 매 개인이 모두 동수를 도와 집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면, 모두들 협조하여 함께 진상을 알린다면, 그 보다 더 큰 힘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얼마나 많은 체계의 중생들을 구원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의 다음 말씀을 잘 기억하자.

“자비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며,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지 해서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므로 ……”(《在2003년 워싱턴 DC 법회에서의 설법》)

내가 보기에 어떤 동수는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매우 자비심이 있지만, 그러나 동수에 대하여서는 반대로 매우 냉정하다. 중생을 구도하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부님께서 법에서 이미 명백하게 말씀하셨기에 모두들 주동적으로 가서 하지만, 동수를 도와 주는것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진선인을 수련하기 때문에, 응당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하나의 정체로 형성되어 공동정진할 수 있다.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이 인식하였다. 우리가 도리를 명백하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개인 수련의 엄중성을 더 한층 인식하게 해야하며, 그들의 전변에 집착하지 않으며, 우리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무형의 장애를 조성하지 않으며, 반대로 우리의 자비가 그들에게 인식할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만 동수들이 재빨리 제고될수 있다.

발표시간; 2003년 10월 7일
분장분류: 정법수련>수련체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0/7/239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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