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명나라 정덕(正德 1506-1521년) 연간에 조영정(趙永貞)이란 청년이 있었다. 그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박식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용한 점술가가 그의 명을 봐준 적이 있는데 전에 그가 겪었던 큰일들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주 정확히 맞췄다. 조영정은 앞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고 싶어 점술가에게 미래를 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술가가 정중히 말했다. “자네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금생에는 33세에 장원에 급제할 것일세. 이후에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 복은 무량할 것일세. 경거망동하지 말고 신중하게.” 조영정은 듣고서 매우 기뻤으며 우쭐거리지 않았다.
나중에 과거에 응시한 조영정은 향시(鄕試)와 회시(會試)를 통과하고 마지막 남은 전시(殿試)에 참가했다. 시험을 치른 후 초초하게 장원급제 소식이 발표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발표 후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과거에 낙방하고 만 것이다. 그는 그 점술가의 말이 틀렸다고 화를 냈고 또 그가 자신을 속여 돈을 갈취했다며 불평했다.
그날 밤 조용정이 전전반측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문창제군(文昌帝君 도교에서 시험을 관장한다고 알려진 신)의 사당에 가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려 자기의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했다. 이상하게도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 후에 그는 달콤하게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조영정은 꿈에서 문창제군을 똑똑히 보았다. 문창제군은 보좌에 앉아 신성한 얼굴을 하고 엄숙한 어조로 조영정을 야단쳤다.
“정말 애석하구나! 너는 본래 올해 시험에 장원급제해 공명을 이루고 조상을 빛내야 했다. 하지만 네가 과거 시녀의 나체를 엿본 적이 있고 음란한 말로 이웃집 여자를 놀렸기 때문에 하늘이 진노하여 공명록에서 제거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잘못을 고쳐 더욱 잘하도록 하라.”
조영정이 변론했다.
“제가 비록 삿된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간음을 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엄하게 징벌하십니까?”
문창제군이 정색하며 말했다.
“너는 육체로 관계를 맺어야만 죄가 된다고 보느냐? 무릇 음심(淫心)이 들끓고 악의가 끊이지 않으며 허튼 생각이 들면 비록 육체적인 행위가 없어도 마음과 눈이 나쁜 것을 생각하고 본다면 역시 사음(邪淫)이다. 그래서 공명이 동시에 사라졌다. 하물며 너는 희롱하며 어깨를 치고 소매를 끌지 않았느냐? 게다가 희롱할 때 무슨 마음이었느냐? 또한 교언영색(巧言令色 역주: 남에게잘보이려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하지 않았느냐? 아직 깨닫지 못하는가?”
조영정은 이 말을 듣고 진땀을 흘렸다. 손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고 얼굴에는 수치심이 가득했다. 그는 얼른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사죄했다. 그는 통곡하며 소원을 세웠다. “제군께서 위에서 살펴보고 계시니 저는 오늘부터 절대 색을 보지 않을 것이며 망령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방종한다면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묻힌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문창제군은 이를 보고 말했다.
“너는 이미 진심으로 회개했구나. 만일 다시 세상에서 널리 사음을 경계하면 음덕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리 할 수 있다면 네 공명이 회복될 것이다. 장차 자손이 번창하고 대대로 복을 누릴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편 붓으로 영정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지금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기 바란다.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면 선(善)이 막대한 것이다! 꼭 기억하거라!”
영정은 갑자기 꿈에서 깼다. 뒷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꿈에서 본 것이 칼로 새긴 듯이 역력히 눈에 나타나서 감히 가벼이 할수 없었다. 이때부터 그는 부지런히 근신하고 음란한 것을 모두 끊었다. 규율에 엄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또 줄곧 사음을 제거하는 고전이나 사례를 퍼뜨리는데 애를 많이 쓰고 음덕을 쌓았다. 이리하여 그의 마음은 점차 순결하고 선량해졌으며 도덕도 점차 고상해졌다.
시간이 흘러 순식간에 영정은 26세가 되었다. 이번에도 그는 과거에 응시했다. 그동안 선을 쌓은 덕이 있었는지 세 차례의 시험이 끝나자 마침내 장원 급제를 했다. 이때부터 그는 문창제군의 경고를 더욱 가슴에 품고 선행에 더 노력을 기울였다. 음행을 경계하는 서적을 발간하고 세인들에게 널리 전파했다. 이렇게 책을 발행한 지 4년 후 그는 시랑(侍郞 역주: 각 부서의 차관)으로 승진했고 또 “번목백(藩牧伯 지방장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말로 복덕이 후대에 이어져 끊이지 않고 효자가 많이 나왔다. 그의 자손들은 모두 덕과 재능을 겸비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복덕과 영화가 집안에 늘 함께 했다.
선과 악 일념에 대한 보응은 이렇듯 확실하다. 그래서 선인들은 수신양성(藩牧伯)을 중시하고 성정을 잘 기르는 동시에 덕을 쌓고 선행을 하여 자신과 자손이 복을 얻었다.
http://www.zhengjian.org/2015/04/07/144562.善惡一念-報應迥異.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