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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정 중의 신기한 몇 가지

작자/ 중국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지 24주년이 다가온다. 제자는 수련과정 중에 겪은 몇 가지 일을 써 내어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리고 대법의 신기를 견증하고자 한다.

1. 포륜 시 팔이 무거운 것을 못 느끼다

1997년 내가 법을 얻은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소업이 매우 심했다. 증상은 배가 아픈 것이었는데 간격이 짧을 때는 십여 분마다 설사를 했다. 그때 나는 병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양약을 먹지 않고 근무했는데 아무런 일도 없었다. 이때 연공장 보도원이 사람들에게 모일에 시내 보도소에서 조직하는 단체 연공과 홍법 활동에 참가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참가하고 싶었다. 그날이 되자 아직 배가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연공 홍법에 참가하자 배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더욱이 2장공법 포륜을 할 때 두 팔이 가볍게 날아갈듯이 조금도 무게가 없는 느낌이었고 팔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2. 따뜻한 흐름이 등 뒤에 퍼지다

2000년 북경에 법을 실증하러 가다가 중도에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사악은 나에게 수련을 포기 시키고 동수를 팔아먹도록 하기 위해 철의자에 앉혔다(혹형의 일종) 초겨울 동북 지역에 차가운 방에 난방도 없고 솜옷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데 전신이 다 얼었고 찬기운은 가슴을 압박해왔으며 온몸이 추워 벌벌 떨었다. 이때 나는 《/span>홍음《/span>무존이 생각났다. 그래서 한번씩 이어서 외웠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잠시 후 허리부분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등 뒤로 퍼져갔다. 그러자 한기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그 때 나는 정말 사부님의 보호를 절감했다. 몇 년 후가 되어도 그때를 생각하기만 하면 여전히 눈물이 글썽인다. 나는 사부님의 《/span>홍음2>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이 있도다를 깊이 깨달았다.

 

3. 오직 사부님만 내가 어디에 플래카드를 펼칠 지 아신다

 

200112월 초 나는 세 번째 북경에 법실증하러 들어갔다. 나와 다른 한명의 동수가 각자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밤에 북경으로 가는 기차에서 동수는 딱딱한 의자에서 잠시 잠을 잤다. 때어난 후 말했다. “언니 꿈을 꾸었어.” “무슨 꿈?” “꿈에 우리 둘이 북경에 갔는데 천안문 금수교 위에서 플래카드를 펼쳤어.”

 

출발 전에 나는 생각했다. 북경에 도착하면 천안문 대문의 금수교 가장 높은 곳에 플래카드를 펼쳐야지. 그러나 아직 동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 생각을 사부님께서 아신 것이다. 나는 매우 격동되었다. 과연 다음날 우리 둘은 사부님의 가지에 줄곧 정념을 가지고 예정된 지점에 진선인세 글자의 플래카드를 순조롭게 펼쳤고 머리 위 높이 들고 온몸의 힘을 다해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 미친 듯한 박해가 가장 사악한 시기에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법실증을 소원을 실현한 것이다.

 

4. 악경이 허탕을 치다

 

2006년 어느 날 나는 어쩐 지 집에 머물기 싫어 밖에 나가고 싶었다. 원래는 하려는 집안일도 하지 않고 급히 문을 나섰다. 동수 집에 가서 자료를 가지고 또 한참 앉았다가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지 몇십 여 분 후 이웃에서 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집에 없었을 때 공안들이 나를 잡으러 왔으니 피하라는 것이다. 그 때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제 때에 집을 떠났고 사악의 박해를 해체한 것이었다.

 

법을 얻은 지 근 20년이 되지만 뒤돌아보면 지난 일이 눈앞에 역력하다. 중국 대륙이란 이렇게 험악한 환경에서 오직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가 있었기에 오늘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오직 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사부님과 중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또한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다.

 

 

문장위치: http://www.zhengjian.org/2016/05/11/152757.html

 

3. 오직 사부님만 내가 어디에 플래카드를 펼칠 지 아신다

2001년 12월 초 나는 세 번째 북경에 법실증하러 들어갔다. 나와 다른 한명의 동수가 각자 플래카드를 준비했다. 밤에 북경으로 가는 기차에서 동수는 딱딱한 의자에서 잠시 잠을 잤다. 때어난 후 말했다. “언니 꿈을 꾸었어.” “무슨 꿈?” “꿈에 우리 둘이 북경에 갔는데 천안문 금수교 위에서 플래카드를 펼쳤어.”

출발 전에 나는 생각했다. 북경에 도착하면 천안문 대문의 금수교 가장 높은 곳에 플래카드를 펼쳐야지. 그러나 아직 동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 생각을 사부님께서 아신 것이다. 나는 매우 격동되었다. 과연 다음날 우리 둘은 사부님의 가지에 줄곧 정념을 가지고 예정된 지점에 “진선인” 세 글자의 플래카드를 순조롭게 펼쳤고 머리 위 높이 들고 온몸의 힘을 다해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 미친 듯한 박해가 가장 사악한 시기에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법실증을 소원을 실현한 것이다.

4. 악경이 허탕을 치다

2006년 어느 날 나는 어쩐 지 집에 머물기 싫어 밖에 나가고 싶었다. 원래는 하려는 집안일도 하지 않고 급히 문을 나섰다. 동수 집에 가서 자료를 가지고 또 한참 앉았다가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지 몇십 여 분 후 이웃에서 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집에 없었을 때 공안들이 나를 잡으러 왔으니 피하라는 것이다. 그 때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제 때에 집을 떠났고 사악의 박해를 해체한 것이었다.

법을 얻은 지 근 20년이 되지만 뒤돌아보면 지난 일이 눈앞에 역력하다. 중국 대륙이란 이렇게 험악한 환경에서 오직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가 있었기에 오늘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오직 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사부님과 중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고 또한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다.

문장위치: http://www.zhengjian.org/2016/05/11/1527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