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동부 대법제자
【정견망】
다른 공간에서 인간세상을 보면 당연히 일목요연(一目瞭然)할 것이며, 구우주의 그런 고층생명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정법이란 이렇게 큰일에서, 세간의 미혹 속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들과 비교해 구세력은 미혹이 적거나 또는 없는 미시적인 경계 중에 있어 당연히 아주 청성하고 분명한 생명이어야 하지만 오히려 깨닫지 못함이 아주 분명하다. 구세력이 안배한 모종형식이 정법을 돕는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저애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생명은 대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생명이 변이된 것을 제외하고 여기서는 다른 각도에서 구세력의 국한성(局限性)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개인의 수련인식이니 단지 참고로만 제공한다.
인간세상은 우주 중에서 가장 미혹된 곳이라 할 수 있지만 상대적인 장점이 하나 있다. 다시 말해 이곳의 생명이 가장 어리석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하에서 일단 본성을 각성(覺醒)하기만 하면 곧 가장 편리하며 또한 최대한도로 자기 고유의 인식을 내려놓고 법에 동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생명은 근본상에서 법속에서 다시 주조(重鑄)되어 신우주의 호법신이 될 수 있다.
법속에서 우리가 알다시피, 구우주(舊宇宙) 속의 생명이 만장한 우주의 연화(演化) 과정 중에서 감수한 것은 개체나 또는 부분의 성주괴멸 법칙의 표현으로, 각층에서 자신보다 더 높은 층에 대한 인식은 역시 미혹이며 층층 위로 올라갈수록 가장 근본적인 미혹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혹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근본대법은 우주 안의 생명이 알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법과 생명 사이의 층층 미혹은 근본적인 미혹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정상적인 질서를 수호하는 보장이자 생명상태의 안정과 층층 우주번영의 보장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정법의 안배가 있기 전 과거의 우주에서는 보편적인 생명이 층차를 돌파하고 승화하는 이런 수련과 유사한 일이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생명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법에 동화되어 근본적으로 신우주와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지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며 한편의 공백일 것이다.
그러다 정법이 도래했을 때 일체를 제약하고 육성한 우주 근본대법이 막후에서 무대 앞으로 나타났다. 개인적인 인식으로, 사존께서 인간세상에서 우주대법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우주의 근본대법은 우주 중에서 그에 의해 육성된 일체 생명들과 한데로 뒤섞였다. 이때 모든 것은 법에서 보자면 모두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으로, 엄격히 말하자면 이때의 우주는 이미 우주라고 부를 수 없으며 이때의 생명도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실제적으로 높고 낮은 구분이 없으며 오직 각자(各自) 자신이 존재하는 미혹 상태의 차이만 존재하면서 우주대법의 동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체 생명형식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그런 존재형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생존과 멸망의 선택기에 처해 있고 모종의 과도상태 내지는 불안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법에 동화할 수 있다면 곧 구도되며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곧 도태된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구우주가 종래로 인지하지 못했던 이런 과도기에 생명의 선택은 흡사 일종의 깨달음이나 일종의 믿음 내지는 일종의 이해와 인정처럼 표현된다. 하지만 구세력은 오히려 이런 실질적이고 큰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승인하지 못하며 안 된다고 말하는데 사실 틀려도 크게 틀린 것이다.
미혹 속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자면 바로 깨달음(悟)이며, 진수(眞修)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볼 수 있는가 없는가는 모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모르는 것이 없던 세계 속의 그런 생명, 특히 소위 정법의 안배에 참여한 그런 생명에게는 고험이 오히려 더 커진다. 모르는 것이 전혀 없고 불가능한 게 전혀 없는데 습관이 되었는데 지금은 저등한 생명처럼 그렇게 깨달아야 하고, 자신의 지혜와 인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정법에 대한 자신의 근본적인 인식의 오류를 바꿔야하는데, 확실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면 구세력이 어찌 쉽게 태도를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신우주가 어떤 모습인지는 아직 과도기에 처한 이런 생명형식에게 있어 그가 제아무리 높을지라도 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정법(正法)에서 말하는 신구(新舊) 개념은 물체의 신구개념이 아니며 마치 고통 속에서 업을 덕으로 전화하는 것과 같다. 업이 소훼되기 전에 자신이 전화된 덕이 어떤 모습인지 보려 한다면 분명 불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인 인식으로 구우주와 정법은 엄격히 구분되며, 정법과 신우주 역시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다. 그 속의 이런 미혹은 양쪽 생명 모두에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다.
하물며 정법 중에서는 일체가 다 재조합되고 있으며, 생명이 완전한 생명체든 아니면 미시적인 원소든 막론하고, 솔직히 말해 모두 다시 조합되어 재생되는 원료에 불과하다. 정말로 이를 안다면 구세력이 어찌 감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정법을 통제하려 했겠는가?
요약하자면 구세력의 총명이 도리어 총명에 의해 오도되었고 자신의 관성적 사유에 쉽사리 저애되어 정법을 구우주를 수리해서 완벽하게 수선하는 수단으로 간주했는데 아마도 구세력의 한 무리가 여기에서 미혹되었거나 여기에서 오도되어 정법과의 관계를 바로 잡지 못했을 것이다. 실로 슬프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체회(體會)는 법에서 말씀하신 “누가 깨달으면 누가 얻는다(誰悟誰得)”는 것은 보아하니 단지 대법 수련인에게만 말씀하신게 아니라 전체 우주 중의 일체 생명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2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