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한 동수가 박해를 받아 경제적인 곤란이 나타났고 특히 돈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가령 변호사를 부르고 외출하거나 생활하는 등등). 나는 이를 알고 약간의 돈을 갖고 ‘눈 속에 땔감을 보낼(雪中送炭 역주: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생각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완곡한 말로 거절하면서 단호히 받으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수련인이니 스스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며 반복해서 나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그녀가 함부로 남의 돈을 받아 빚을 지려 하지 않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곤란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는 것에 대해 나는 몹시 탄복했다. 동수에게 ‘눈 속에 땔감을 보내려던’ 나의 생각은 여전히 ‘정(情)’이란 한 글자의 체현임을 반성했다. 과거 내가 몹시 바쁠 때 그녀가 나를 많이 도와준 적이 있지만 보답할 기회가 없었기에 지금 그녀가 이런 곤란에 처한 것을 보고 내가 보답할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분을 맺으려 했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반복적으로 그녀가 했던 “우리는 수련인이니 스스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그 말을 떠올렸고 자신과 그녀의 경지에 큰 차이가 남을 알았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관계를 유지하려면 ‘정분’이 중요한 한 방면이라 할 수 있다. 속인이라면 잘못이 없지만, 수련인이라면 ‘정분’은 최종적으로 닦아 없애야 하는 것으로 ‘자비(慈悲)’를 닦아내야 한다. 현실 중에서 경제적으로 동수를 돕는 것 역시 틀렸다고 할 순 없겠지만 경제적인 방면을 제외한 다른 방면 예를 들면, 어떻게 박해를 대할 것인지 교류하고 함께 법학습과 발정념을 하면서 관련 부문과 인원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거나 전화를 거는 등을 할 수 있다.
이 일은 또한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할 때 기점(基點)이 아주 중요함을 깨닫게 했다. 왜냐하면 법에는 표준이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법으로 가늠해서 법에 부합해서 해야 하며 법에 부합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또한 어떤 기점에 서서 하는가를 봐야 하는데 법의 기점에 서야 잘못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련인이 일을 하는 것이며 정분의 기점에 선다면 이는 속인이 일을 하는 것으로 수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아무리 분명히 말씀하셨다 해도 우리는 사람 속에서 수련하고 있기에 이 ‘정’은 어디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를 닦아내려면 정말로 엄숙하게 대해야 하며 시시각각 착실하고 착실하게 닦아야 한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3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