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북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7년 중국에서 법을 얻었고 3년 전에 외국으로 나왔다. 어쨌든 노(老)수련생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다년간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내 수련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신이 사부님 및 대법과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추수감사절을 맞아 자신의 체험을 써내니 이를 여러분들이 거울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일찍이 제아무리 높은 층차에서 내원했든, 사람 속에서는 온몸에 업력이 가득하고 고해(苦海)에 깊이 빠진 생명에 불과하며, 만약 사존(師尊)의 자비하신 고도(苦度)가 없었다면 직면할 것은 오직 도태뿐이다.
북미로 건너온 후 한 젊은 동수가 수련이 아주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어려서 법을 얻었고 비록 줄곧 사부님과 대법의 보호 하에 있었다고 말했지만 분명 고생도 겪고 관(關)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내게 든 생각은 ‘어려움을 말하자면 속인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어디 있는가?’였다.
나는 어릴 때 늘 악몽을 꾸곤 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 복수하려고 했다. 내가 집안에 있으면 그는 바깥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악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 두려운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성장하면서 더는 이런 꿈을 꾸지 않게 되었고 점점 망각되었다. 법을 얻은 후 비록 정진하진 못했지만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기에 때로는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다 2013년 어느 날, 한번은 한 건물의 현관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맨 위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료를 배포하려고 생각했다. 막 2층까지 왔는데 어떤 사람이 황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고 올라갔는데 막 맨 위층인 6층에 왔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쫓아왔다. 보니 중년남자였는데 원래 6층에 사는 주민이었다.
당시 나는 두려움이 아주 심했고 6층이라 더 올라갈 곳도 없어서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가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악의(惡意)가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순간 그에게 자료를 주면서 진상을 알릴 것인가 고민하다가 두려움 때문에 피하기로 선택했다. 내가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하자 누구를 찾아왔느냐면서 캐물었다. 거짓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댄 후에야 몸을 돌려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에는 나를 보내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마치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문득 생각해보니 그는 어릴 때 내가 꿈에서 봤던 그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두려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 나의 명백한 일면은 그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며 그가 빚을 받으러 온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처럼 수련 중에서 나타나는 모든 관과 난은 모두 자신이 지은 업 때문에 초래된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이미 아주 많고 많은 업을 없애주셨다. 때문에 비록 자신이 정념이 부족하고 잘하지 못했음에도 결국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내가 한 동수에게 이 경험을 들려주자 그는 진심으로 이렇게 감탄했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지 않았다 해도 전생의 그 채권자가 당신을 찾지 못했을까요? 그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지 않았다면 자료를 배포할 때 위험에 처하는 이런 형식으로 나타나지 않고 아마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을 텐데 그때가 되면 얼마를 빚졌으면 빚 진만큼 갚아야 합니다. 그럼 수련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죽는 것이 참혹하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였을 겁니다.”
나는 일찍이 안일을 구하는 마음에 이끌려 시간에 집착했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속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마음속에 쉽게 발견하지 못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있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만약 그 사람을 상대했을 때, 내게 착실한 수련 기초가 있었고 법에서 생겨난 정념(正念)이 있어서 선념(善念)을 품고 그에게 진상자료를 주면서 진상을 알렸더라면 일찍이 내가 지은 업력을 없앨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풀어내고 심성을 더 제고하며 수련 중의 위덕(威德)을 수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사존의 고심한 배치였지만, 나는 사존의 이런 고심한 배치를 얼마나 많이 잃었는지 모른다. 그러고도 오히려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면서 늘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거나 또는 속인과 비교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나는 누구인가? 지구 위에서 나는 단지 한 알의 모래처럼 작디작은 한 속인에 불과할 뿐이며, 지구는 심지어 우주의 티끌 속 티끌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사 내 생명 본원의 경계(境界)와 그 경계 전체 천체대궁(天體大穹)과 비교하더라도 여전히 단지 티끌 속의 티끌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사부님의 구도가 없었더라면 내가 직면할 것은 여전히 오지 훼멸뿐이다.
비할 바 없이 위대하신 창세주(創世主)께서는 나처럼 이렇게 미미하고 하찮은 생명을 지옥에서 건져 올려 깨끗이 씻어주고 또 그렇게 소중하고 위대한 일체를 주셨음에도 나는 왜 여전히 가장 숭경(崇慶)하고 가장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사부님을 대하고 대법을 대하지 못하며 대법이 창조한 일체를 대하지 못하는가? 내가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은 모두 대법이 창조한 것이니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동물과 식물마저도 대법이 창조한 것이니 선의로 대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대법이 창조한 것이고 더욱이 창세주의 친인(親人)이니 공경하게 대해야 한다. 그가 좋지 않은 것에 아무리 많이 오염되었든 세간에서의 표현이 어떠하든 막론한다.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생명이 어찌 세간에 발을 붙일 수 있고 또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일찍이 과시심, 환희심, 질투심, 원한심(怨恨心) 등 자아에 집착하는 각종 마음들은 모두 구우주(舊宇宙)의 생명이 자신을 높이는 오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신과 사부님 및 대법과의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하고 겸손하고 감사할 줄 몰라서 생긴 것이다.
거대한 감당으로 시간을 연장해주시고 나로 하여금 점점 이런 것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이를 통해 내가 잘못을 고치고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비할 바 없는 감사를 드린다. 나는 또 여러분들이 나의 교훈을 받아들여 정법 최후시각에 빨리 자신을 바로잡고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1925